대안공간의 가능성을 위한 몇 개의 대화
유대수(사)문화연구창 대표)
○ 대안공간의 뜻 : Alternative + Space
alternative [ɔːltəˊːrnətiv, æl-] [US] [ɔːl-] [UK]
n. [보통 the ~] 둘 중에서의 선택, 양자택일
달리 취할 길, 다른 방도, 대안
a.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할, 양자택일의
대신의 an alternative plan 대안
【문법】 선택적인;【논리】 〈명제가〉 선언(選言)적인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alternative·ly ad. 양자택일로
○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1)
- 내용의 측면에서 기존의 경직된 주류 예술에 맞서서 실험적인 양식과 진보적인 내용을 전달한다. 대안공간은 1960년대 서구의 신사회운동과 역사를 공유한다. 신사회운동은 산업사회에서 후기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에 발생했다. 이 운동의 성과는 무엇보다 기존의 권위적 사회에 맞선 개인의 발견이며, 성정체성ㆍ인종ㆍ다문화·지역과 같은 지금까지 억압됐던 사회범주의 들춤이다.
- 이러한 신사회운동은 프랑스를 혁명의 깃발로 흔들었던 68혁명과 미국의 반문화운동을 사례로 제시할 수 있겠다.
- ‘대안공간’은 그렇게 탄생하여, 은폐되고 억압됐던 소수적 범주와 다양한 가치를 들추어내며 실험적 형식을 적극 발굴·지원하는 발전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냈던 것이다.
- 한국 역시 대안공간은 사회변화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에서 대안공간은 90년대 후반에 동시다발로 출현했다. 이 시기는 대략 87년 시민혁명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때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등 전체 부문에서 전근대적 잔재를 일소하고 민주주의를 적극 실천했다. IMF 사태 때문에 잠시 주춤했지만, 전체 사회변화의 흐름이 거꾸로 돌아가진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미술계는 여전히 기존의 권위적 질서를 청산하지 못한 채 그들만의 폐쇄된 영역을 보전하고 있었다. 내용의 측면에서 정체가 모호한 모더니즘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었다면, 구조의 측면에서도 합리적 제도와 발굴체계를 건설하지는 못했다.
- 이러한 상황에 따라, 대안공간의 두 번째 특징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구조의 측면에서 대안공간은 주류 상업갤러리와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상업갤러리가 제도권 권력과 맞잡고 주류의 양식을 그대로 수용하며 기성작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곳이라면, 대안공간은 제도권 바깥에서 형성된 신진작가와 실험적 작품을 지원하는 곳이다. 한 마디로 권력과 제도와 자본의 울타리 바깥에서 새로운‘예술엔진’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 현재 대안공간은 저마다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안공간을 대표하는 1세대 공간인〈대안공간 루프〉(이하〈루프〉)는 지금까지 소규모 공간에서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기능을 버리고, 대규모 공간으로 이전하여 ‘동아시아 허브’를 목표로 삼고 있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이하〈사루비아 다방〉)은 여전하지만, 〈대안공간 풀〉(이하〈풀〉)은 인사동 시대를 마감하고 ‘미술판’에서 동떨어진 구기동으로 이전했다. 어떤 공간은 장소만 바꾸었고, 어떤 공간은 프로그램의 성격을 바꾸었다.
-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적어도 한 시대가 마감되고 있다는 징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대안공간이 현재 일정한 궤도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이것은 나름의 역사를 형성했으며, 초기와 달라진 현실에 맞게 진화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 하지만, 반드시 자의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주류의 상업갤러리가 대안공간이 하던 신진작가 발굴 기능을 일부 흡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일이다. 대안공간이 미술계에 기여한 공헌이 역으로 대안공간을 옥죄는 부메랑으로 날아온 셈이기 때문이다. 상업갤러리가 대안공간과 똑같은 목표를 갖고서 발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신진작가 발굴이라는 기능을 대안공간이 독점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 또한, ‘대안공간’이란 이름을 걸고서 활동하는 공간들이 양적으로 늘었다. 양적인 확대가 질적인 다양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발전이겠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일정한 영향력을 확보한 대안공간을 마치 브랜드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상황은 모호해지고 있다.
- 물론, 입주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는〈쌈지 스페이스〉(이하〈쌈지〉), 다양한 신진작가 발굴이라는 기본 프로그램에 충실한〈아트스페이스 휴〉, 큐레이터와 작가를 잇는 신선한 가교체계를 구성한〈브레인 팩토리〉, 지역공동체와 밀착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스톤 앤 워터〉등등, 1세대 공간을 좇아서 나름의 전략을 갖고서 활동하는 건강한 후발 대안공간도 존재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대안공간들은 느슨한 협의체를 벗어나 사단법인 대안공간네트워크를 조직하여, 달라진 현실에 발맞춰 대응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 대안공간의 규정
- 규정이란 일종의 한계를 긋는 일이다. 당연히 대상이 멈춰서 있어야, 금을 그을 수 있다. ‘대안공간’은 그래서 규정부터 문제적이다. (나중에 자세히 지적하겠지만) ‘대안’은 언제나 역사적 현실에 따라서 바뀌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대안공간의 몇 가지 규정은 존재한다.
- 예를 들어, 대안공간을 ‘비영리전시공간 Nonprofit Art Space’으로 간주하는 규정을 보자. 어떻게 보면, 이 규정은 나무랄 것이 없어 보인다. 상업갤러리처럼 작품을 구매·판매하지 않으며, 미술관처럼 작품을 수집·보존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 하지만 부족하다. 이것은 기껏해야 최소한의 준거점이지, 대안공간을 ‘충분하게’ 설명하진 못한다. 단순히 대안공간의 형식적 지위만 일러줄 따름이다. (예를들어,‘ (사)대안공간네트워크’는 정관에서 대안공간을 ‘비영리전시공간’으로 규정한다. 또한, 협의체의 사업으로 다음을 들고 있다. 전시작가 지원프로그램, 학술사업, 지역문화 진흥, 대안공간 정책연구, 국제교류, 미술 유통구조 확대. 규정과 사업만 본다면, ‘대안공간’을 달리 규정하는‘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 현실적 문제도 뒤따른다. 실제로 비영리공간이라고 한정했을 경우, 예상치 못한 공간도 대안공간에 포함될 공산도 크기 때문이다. 형식만 본다면, 미술관도 비영리공간이고, 공공성에 준하는 활동도 많이 한다. 역으로, 상업활동을 하는 공간이되, 대안공간에 준하는 활동을 벌이는 곳도 충분히 있을 만하다. 게다가, 미술계에 포착되진 않지만,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상업과 순수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활동을, 그런 활동을 생산하는 단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 그렇다면, 내용의 측면으로 넘어가서, ‘비주류 예술활동’으로 대안공간을 정의하면 어떨까. 이러한 규정은 일정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대안공간의 뿌리는 1960년대 서구의 ‘신사회운동’이다. 이 운동은 무엇보다 ‘개인’을 발견했고, 성정체성ㆍ인종ㆍ다문화ㆍ지역과 같은, 지금까지 억압됐던 사회범주를 들춰냈다. 이것은 또한 기존의 견고한 이데올로기들에 구멍을 내면서, 영역 사이를 갈랐던 벽들을 무너트렸다. 사회의 문화, 문화의 정치, 정치의 경제 등등, 구분된 영역을 서로 간에 가로지르며, 새로운 쟁점과 운동을 일으켰다. 미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 미술은 미술만으로 규정돼야 하는가, 작품은 창백한 하얀 입방체에만 놓여야 하는가 등등, 미술과 비미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새롭게 경계간 활동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에 익숙한 공동체 밀착형 활동도 나타났고, 미술과 다른 예술과 협력해 혼합장르 활동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보면,‘ 비주류예술활동’만큼 대안공간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 하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로 작용한다. 우선, 역사적 배경과 내용적 의미가 초월적으로 관철되는 비주류 예술활동을 상상할 수 있을까. 즉 그때의 비주류 예술활동이 오늘날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닐까. 새로운 변주가 당연히 필요한 것이 아닐까.
- 솔직히 오늘날 대안공간이 직면한 현실은, 대안공간이 형성된 1960년대는 물론이요, 한국의 대안공간이 출현한 1990년대와도 판이하다.(이영욱 2000) 또한, ‘비주류’는 개념 자체가 헐겁다. ‘주류’의 의미가 ‘지배’인지 ‘결정’인지, 지배의 주체가 권력인지 자본인지 등등, 속내를 파고들수록 웅크린 논란이 상당하며, 더구나 주류가 아닌 ‘부정’인 까닭에 이 개념에 포괄될 외연은 더욱 커진다.
- 이것을 폭넓게 봐서 ‘제도 바깥’ 정도로 이해해도,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왜냐하면 제도와 관계없는 활동뿐만 아니라, 제도에 저항하는 활동까지 포함될 공산이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제도 안에서 개혁하는 정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제도 넘어서 나아가는 것이라면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이것은 대안공간의 역사의 문제와도, 대안공간의 지역의 문제와도, 충돌하기도 동조하기도 한다.
- 대안공간을 규정할 때, 방금 지적한 ‘지역’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 ‘대안공간 일반’이 존재할 수 있을까. 대안공간의 탄생이 비록 서구의 신사회운동에서 젖줄을 댔다고 해서, 그것만이 대안공간 전부를 설명하는 것일까. 그런 식으로 대안공간 일반을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대안공간을 형성시킨 근거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단순히 이론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지역마다 다른 식으로 나타나는 ‘오늘날’의 대안공간이 바로 실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대안공간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일정한 제도로 자리매김 됐고, 중국과 일본의 경우 유럽과 달리 자본과 권력과 유연한 관계를 맺었으며, 인도네시아의 경우 예술가의 자율성 확보가 중요한 문제였고, 동유럽과 중동의 경우 예술가의 활동자체가 대안적일 수밖에 없었다.(백지숙 2002)
- 그러면 한국은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 것일까. 한국의 대안공간은 10년 안팎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짧지만, 이룩한 변화는 녹녹치 않았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성공을 거둔 만큼,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일정한 기능상실 같은 문제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의 위기가 문제였다. 현재 급속도로 압축성장한 한국사회가 겪는 것처럼, 한국의 대안공간도 신속하게 늙어갔기 때문이다. 즉 제도화됐다는 것이다. (사)대안공간네트워크와〈인사미술공간〉의 탄생은 기존의 대안공간이 제도로 진입하는 신호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좋다 나쁘다 식으로 재단해선 곤란하겠다. 어쩌면 지역의 문제는 역사의 문제와 동시에 사유해야 하는지 모른다. 베오그라드의 예술과 라스베가스의 예술은 시간과 공간 모두에서 첨예하게 충돌한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저마다의 ‘지금ㆍ여기’의 문제일 것이다.
- 그러면, 문제를 바꿔서, 제도로 확립된 대안공간은 대안공간으로 볼 수 있을까. 이것 또한 매우 현실적 문제로서, 현재 한국의 대안공간들이 맞닥뜨린 상황이다. 이것은 단순히 역사의 문제도, 규모의 문제도, 활동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요, 그것이 사용되는 방식과 겨냥되는 방향의 문제다. “광기에 사로잡힌 조직은 없다. 조직 자체가 광기다.” 니체의 급진적 주장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르게 생각할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제도의 존재는 문명과 함께 하며, 문제는 언제나 권력의 벡터였다.
- 최근에 많은 사람이 지적한대로, ‘많은 쪽’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적은 쪽들’ 또한 권력을 행사한다. 다만, 많은 쪽의 운동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며, 그것의 구심운동에 곧잘 빨려 들어갈 뿐이다. 그럼에도, 적은 쪽들은 중심에 수렴되지 않고 오히려 편심하는 흐름들을 계속 개척해 낸다. 대안공간의 경우 명확히 적은 쪽들이었고, 그런 역할을 제법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사)대안공간네트워크를 설립한 것은 적은 쪽들의 편심운동을 버리고, 대신에 중심운동으로 선회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만 놓고서 좋다 나쁘다 간단하게 재단해선 곤란하다. (자의반 타의반) 충분히 그럴만한 역사적 근거가 있기도 하며, 솔직히 이러한 과정은 역사에서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며, 대안공간의 역사를 반복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는 곱씹어야 한다. 몸집이 커지면, 굼뜨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옛날처럼 소규모의 발 빠르고 실험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런 현상 자체는 한국의 달라진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한국 또한 각기 영역에서 빠르게 소화됐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실험과 혁신이 등장할 토대가 약화되고 있는 셈이다.
- 덧붙여 생각할 현상도 있다. 그것은〈인사미술공간〉의 탄생이다. 한국은 물론이요 대안공간의 역사에서 흥미롭고도 역설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간으로서, 다른 지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접 지원의 형식인 공적 기금과 성격이 다르다. 이것은〈인사미술공간〉의 활동 내용과 무관한 문제다. 이것은 비판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렇다는 것은 대안공간의 ‘대안성’을 확보할 토대의 문제이기 때문이고, 아니라는 것은 대안공간이 직면한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 그러면 대안공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다. 앞서 지적한 역사적 배경과 지역적 상황과 현실적 토대를 모두 고려한다면, 어떤 공간이 대안공간에 해당되겠는가. 경험적으로 수용하는 대안공간의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순수한 대안공간이 존재할까. 아니면 그런 기준에 한 두 가지 부합하는 경우를 모두 (그럼에도) 대안공간으로 봐야 할 것인가.
- 철학적 농담을 하자면, 대안공간은 ‘가족유사성’만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 측면에서 백지숙의 두 가지 지적은 새삼 곱씹을 만하다. 첫째 대안공간을 한 가지 규정으로 포괄할 수 없다는 것. 실제 한국만 생각해도 대안공간들을 두루 꿰뚫는 공통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쌈지〉와〈스페이스빔〉(이하〈빔〉)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내용의 측면에서 그들 사이에 공통점은 거의 없다. 있는 것이라곤, 앞서 지적한‘ 형식적 지위’ 밖에 없다. 둘째 ‘대안공간’의 의미를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선 ‘실천활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백지숙 2002) 역사성과 현실성의 두 가지 ‘상항’ 을 염두에 두고서, 그때마다 다양한 ‘대안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이야기겠다.
- 이것은 다양한 활동의 스펙트럼을 포괄하게 만들 것이다. 사실 이것은 잊혀진 예술의 기능을 되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곧 유토피아의 기능이다. 예술은 본래부터 ‘가상Schein’이다. 가짜이되 진짜를 앞당기는 ‘진실한 허위’다. ‘대안’이란 결국 아직 안 왔지만 와야 할 ‘무엇’의 새로운 이름이 아닐까. 대안공간이 기금과 시장에 발목 하나씩 붙잡혀 있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 애쓰고 있다. 그것이 되든 안 되든, 그것 자체가 가상을 진상으로 바꿔낼 힘을 형성시키는 것이리라.
○ 선택, 그리고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
- 누가, 왜 선택의 ‘결심’을 하는가; 열의와 근거의 문제
- 누구와 대화할 것인가; 명확한 진로와 초점의 문제
- 기존의 방식은 무엇인가; 훈육, 체험, 레퍼런스의 문제
- ‘다르다’는 것은 또 뭔가; 방법과 실천의 문제
- 그래서 남는 것은(얻는 것은) 무엇인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2)
- "물론 그 세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이전에 메고 다니던 뗏목을 내려놓아야 한다."
-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음악적 개성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방식이었다."
............
주1) 한국의 대안공간 실태연구, 이동연 외, (사)사회문화연구소/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7. 이하 같은 글.
주2)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고미숙, 휴머니스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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