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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20101013-문화재단논평(품지수록용)

by PrintStudio86 2017. 7. 25.

전북문화재단에 관한 몇 가지 시각들-에 관한 허망한 논평1)

20101013 유대수/(사)문화연구창 대표



전북 문화예술(계) 및 문화예술지원체계의 누적된 경과와 현재 상황, 성과와 한계에 대한 실체적이고 명확한 이해 없이 ‘전북문화재단’이 어떤 모양이면 좋고(또는 나쁘고)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고(또는 하지 않았으면 하고) 식의 말을 하기는 매우(당연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5년여를 반복해 온 전북문화재단 담론에 연관된 적지 않은 수의 말과 글, 설립 준비에 관련한 모든(또는 웬만한) 요소와 인자들이 앞의 내용을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정리해내었으리라는 점을 전제삼아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전북문화재단은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이래 지금 현재까지도 설립 준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전북문화재단 설립 논의의 경과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2006. 5. 전북 문화예술계 36개 단체가 협력, 개발한 ‘지역문화정책공약’을 도시군 단체장 후보에 전달 (‘조속한 지역문화예술위원회 설립’의 경우, 당시 김완주 도지사 당선자의 공약에 ‘임기 내 문화예술위원회 설립’으로 반영됨)

- 2006. 09. <지역문화예술위원회 설립 및 문화예술기금 지원사업 효율적 운영을 위한 TFT> 구성

- 2006. 11. <전라북도 문화예술기금 지원사업 운영제도 개선방안 연구> 수행 완료

- 2007. 07. <전라북도문화예술위원회 설립 및 운영방안 연구> 수행 완료

- 2009. 04. ‘위원회’가 아닌 ‘재단’ 구조로 설립하자는 견해의 대두로 전북대학교 다문화연구소가 <전북문화재단 설립운영 기본계획 수립 및 예비타당성 연구>를 수행, 동년 6월 보고서 제출

- 2009. 10. 전라북도의회에서 조례제정안 심의, 통과 (2010년도 문화재단 설립 준비예산으로 5억원 책정)

- 2010. 04. 6.2 지방선거 이후 절차를 밟아 10월 경 출범 예정

- 2010. 07. 신임 전북도의회 문화관광건설위원회가 설립 필요성과 시기 등에 이견을 제시하면서 도 집행부 및 민간과 논쟁 유발

- 2010. 09. 28 전북도의회 문화관광건설위원회 주관으로 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공청회 실시


물론 위 연도별 기록 이외에도 관ㆍ민에 걸쳐 무수한 포럼과 ‘공청’의 장이 있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지나간 5년의 시간이 아까운 건 둘째치더라도 민간 단위의 고심 어린 정책 제안과 공약 반영, 두 번의 연구 보고서 제출, 조례 제정과 예산 확보 등을 거쳤음에도 작금의 생뚱맞은 찬반 논쟁과 권력 논쟁은 부끄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다는 생각 지울 수 없다. 짐작컨대 소통을 위한 폭의 마련과 좀 더 세밀한, 준비된 출발을 위한 깊이의 요구가 이런 현상을 만든 것이겠지 하고 넘겨짚어 보지만 그럴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준비자와 수혜자, 거간자와 담론장 사이에 불필요한 의심과 정치적인 선점의 유혹이 만발하고 또 중첩될 뿐이라고 느껴진다. 이러한 눈치보기와 밀고 당기기의 결과값이 결국 ‘지금, 여기’, 우리의 현재라면 누구 말마따나 “민간 단위의 역량이 아직 모자란다”는 충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우리2)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지난 4월과 5월에 걸쳐 (사)문화연구창이 개최한 ‘인문예창-릴레이포럼’의 두 번째 순서로 ‘전북문화재단 운영전략과 실천과제’에 대해 설전을 벌인 바 있다. 선거 이전이었고, 신임 도의회의 개입(!)이 있기 전이었다. 설립(또는 설립방식)에 대한 찬반의 입장이 분명한 두 개의 발언을 옮겨 본다.


- 시설과 사업과 여러 가지 것들을 총괄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이 되면 옥상옥이 되고 권력화가 돼서 위험하다 이런 얘기들을 하시는데, 저는 그 부분이 아주 키포인트라고 생각을 합니다. 권력이 없이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중략) 결국 자꾸 분할당하면서 끌려가는 방식으로는 결코 이 문화예술 분야의 독립적 권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민간의 역량을 가급적이면 총괄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를, 선의의 컨트롤 타워를 빨리 세워서 그 쪽으로 역량을 집중하는 게 옳다 이런 생각을 좀 합니다. 권력화라고 하는 것을 자꾸 나쁜 쪽으로만 얘기를 하게 되면 뭐 끝도 없겠죠.


- 최근 만들어지고 있는 지역 문화재단들은 대부분 먼저 만들어진 문화재단의 사례를 바탕으로 그 성과에 대한 정확한 검토 없이 그 형식이나 내용을 그대로 베끼는 데 열중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 문화재단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은 혹여 우리가 이상적인 지역 문화재단의 모델에 함몰된 나머지 지역문화예술 환경 - 지역문화예술과 지역정치의 관계, 지역문화예술계의 민주적 운영 능력미숙, 문화재단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잘못된 설계, 지역문화예술계의 세력분포 등 -의 현실적인 조건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지 염려되기 때문이다.


찬성이든 반대든, 또는 빨리든 천천히든 여전히 핵심 논란은 ‘권력’이다. 집중화, 옥상옥, 정치적 개입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시설 위탁으로 인한 문화다양성 훼손, 민간집단의 능력 부족, 시군 소외, 행정과의 업무 중복 등을 들어 재단 설립 및 역할 부여에 문제가 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집중화(또는 옥상옥)는 골고루 나눠져 있던 작은 힘(기능과 역할)들이 한 군데로 모인다는 것을 전제로, 그럴 경우 통제하기 어려운 ‘강력한 힘’이 될 것이므로 우려스럽다는 입장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독재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힘의 구조가 등장할 경우 뭔가 대단히 불편해질 거라는 자동연상이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무엇이 불편해질까? 좋게 말하면 단위 목표별 분리 운영ㆍ관리의 효율성과 일관된 전략 차원의 통합 운영ㆍ관리의 적정성에 대한 대립적 검토라고 할 수 있다. 나쁘게 말하면 그나마 유지하던 작은 힘들이 강력한 힘에 복속(!)되면서 자기 성취와 이익 실현의 장이 사라지거나 좁아질 것을 염려하는 반발이라 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후자의 입장, 그것이 불편하다는 것이겠지 미루어 짐작한다. 그렇다면 작은 힘들이 골고루 나눠져 있는 지금 이대로가 편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행정조직의 국ㆍ과ㆍ계 단위 부서가 가지고 있는 것도 현재하는 권력(의 집중화)이므로, 거기서 나눠주는 작은 힘들에 만족하며 늘 하던 방식, 늘 하던 일이나 하고 사는 게 편한 ‘문화예술지원체계’라고 판단한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게 뻔하므로, 결국 전자의 경우로 지속적인 담론장을 기획하는 게 향후 문화예술계가 책임져야 할 지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권력의 성격과 방향이지 권력 그 자체는 아니다.


지난 9월 16일, 광주문화재단 설립준비단이 마련한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발제를 맡은 인천문화재단 허은광 문화진흥실장의 글 <광주문화재단, 무엇을 할 것인가> 중에 눈에 띈 언급이 있어 여기 소개한다.


- 마지막으로 문화재단의 독립성 확보가 요구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정부로부터의 거절하기 어려운 다양한 주문이 있을 것이다. 또한 시의원을 비롯해 지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부터의 청탁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문화예술지원사업의 공모과정에서 말 못할 사연이 많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외부로부터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간혹 문화재단에서는 미처 검토하지 못했던 문화예술지원의 사각지대를 발견한다던가, 뜻밖의 실효성 높은 문화예술 정책을 제안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공정하고 투명한 문화예술지원 사업의 심의를 왜곡한다거나, 준비되지 않은 예산집행을 요구하는 행위들이다. 안타까운 지점은 이러한 요청의 대부분이 문화예술인들의 주문에 의해서 촉발된다는 사실이다. 간혹 문화재단의 기금만 조성되면 마치 문화재단의 독립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문화재단의 독립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기금조성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먼저 문화재단 스스로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일관성 있게 사업을 집행해야 한다. 더불어 시정부와 시의원, 그리고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문화재단의 주체적인 판단을 인정해 주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만이 문화예술인들도 청탁이나 압력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 하기 보다는 공정한 절차와 과정을 존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길게 인용했다. 깊게 공감한 탓이다. 특히 ‘이러한 요청의 대부분이 문화예술인들의 주문에 의해서 촉발된다는 사실’의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설립 이후뿐만 아니라 설립의 발의와 그 과정에도 적용될만한 지적이라 여긴다. 그렇다고 ‘모든’ 문화예술인들을 잠재적 혐의자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공의 지원체계를 만들거나 작동시킬 때 그 전반적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동시에 최선의 필요조건이 생산되는 일차 수혜자라는 점에서 다른 어느 단위보다도 투명, 원칙, 공정성 등등의 입장을 들이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 걸음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차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 외에도 다른 여러 지점에서 참조할만한 언급들이 많다. 어쨌든 이러한 발제문의 요지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것들이 지난 몇 년간 중앙정부, 지자체 할 것 없이 ‘문화예술지원체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의 자리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명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점들은 당연히 전제되는 ‘기본’으로서 제시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위와 같은 지적들이 아직도 현장에서는 안 지켜질 우려가 다분하거나 실제로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매번 강조에 강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무리 반복하고 강조해서 말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그런 내용들이 문화예술지원체계로서의 재단 설립 논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종종 더 나은 시도를 위한 새로운 설계와 접근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이상적 태도’라고 치부하곤 하는데 그 때의 현실이 바로 이 현실이 아닌가 싶다. 복잡한 정치적 연망, 집단이기, 대중추수의 태도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 말이다.


문제의 출발, 곧 문화예술지원체계를 행정중심-의존형이 아닌 민간중심-실천형으로 통합 실현해 보자는 취지의 재단 설립을 제안하고 설계해 가고 있는 와중에 세련된 방식으로 제지하거나 처단(!)되어야 할 사항들을 서둘러 끄집어내어 공포를 조장하고 본질을 왜곡할 필요는 없다. ‘우선 만들고 보자’라는 견해도 불안한 구석이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이야말로 매우 안쓰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의 제언으로, 9월 30일자 전북중앙신문 오피니언란에 실린 장걸(사)푸른문화 정책실장)의 글을 인용한다.


- 한 때 문화예술인들 사이에 전북문화재단의 설립이 초읽기에 들어갔으며, 민간과 관이 함께 전북의 문화예술을 고민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될 것이라는 큰 기대에 부푼 적이 있다. 그런데 ‘문화재단이 성공적으로 출발하고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 무엇이 필요하다’며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소위 전문가들은 설립에는 찬성하나 그 형식과 목적, 기능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으며, 그 와중에 ‘문화재단설립으로 파생되는 자리에 앉기 위해 줄을 선다.’는 등의 다소 불편한 소문들이 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결국 설립주체는 잠정적으로 그 시기를 연기하였다. (중략) 하지만 지금에 와서 어떤 과정을 연장해서 밟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제 거시적 논쟁은 그만하고 구체적인 행복플랜을 짜고 그것을 실행하자는 것이다. (중략)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준비를 잘하는 것으로 예방할 수도 있지만 실행을 통해 경험을 수정하는 것이다. 설사 실패하여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수행과정 속에서 행복한 고민을 안고 그것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것 또한 매우 소중한 것이다. 돌다리를 지나치게 두드리면 겁이 나서 건널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중략) 지역의 사람이, 지역의 토양에 의해 만들어진 정서와 열정으로 만드는 문화예술, 이것이 바로 문화재단이 해야 될 일이다. 선진적이라는 것에 함몰되어 우리가 만들었고 또, 만들 수 있는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단한 성공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작지만 행복한 고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할 것이다.


결론은 ‘잘 만들어야 한다’이다. 그런데 그 ‘잘’이라는 게 어렵다. 관과 민, 제도와 시스템, 돈, 사람, 목표와 비전 등등이 고루 ‘잘’ 섞이는 ‘또 다른 지점’이 생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사람의 문제는 곧 신뢰의 문제가 된다. 충분한 과학적 증빙 위에 제도가 구축될 수는 있겠지만 도전과 실험 없이 예술과 문화는 생성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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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 글은 지난 9월 16일, 광주문화재단 설립준비단과 광주광역시의회가 공동 주최한 설립준비 1차 토론회 <광주문화재단 비전과 과제>에 토론문으로 제출한 것을 전북문화재단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주2)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자 전라북도를 구성하는 체계 전체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