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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20061205[도시인류학]-지역미술과지역정체성-유대수

by PrintStudio86 2017. 7. 25.

지역미술의 구성과 재생산 - 전북 화단(畵壇)을 중심으로

연 구 자 : 유대수(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문화인류학 전공)


Ⅰ.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Ⅱ. 선행연구 검토

Ⅲ. 연구내용

Ⅳ. 연구방법 및 현지조사계획

Ⅴ. 연구의 의의

Ⅵ. 참고문헌


[주요 개념 및 용어]

중심/주변, 지역/지방, 화단/화풍, 순수미술, 근대화, 지역성


한국의 미술관은 외부의 온갖 기대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마지막으로 몰려드는 곳이다. 복잡한 이해가 뒤얽혀 있는 미술관은 지끈거리는 우리 현실의 겉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래서 전문적인 판단이 왕왕 실체가 없는 명분에 의해 무시되거나 훼손되기도 한다. 기획전과 소장품 구입을 둘러싸고 지역의 이기적인 요구들이 민원과 진정의 형식으로 느닷없이 표출되기도 한다. 구보씨는 답답하다. 진보적 기획이나 의지를 갖고 시작한 일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미술관이 고착된 지역성을 넘어선 위상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지역 미술의 탈(脫)주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러한 이기적 이해와 비합리적 요구들은 하나의 문화적 환경으로서 미술관의 입지를 뿌리부터 흔드는 현실적인 장애 요인들이다. <학예연구사 구보氏의 하루, 이동석, 1999>


4항, 지역미술관으로서 전북작가 발굴과 작고작가 재조명전 등을 통해 전북 미술인들에게도 자긍심을 주어야한다! 일정부분 지역미술관으로 당연히 해야 할 사항들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에서 인증 되지 않았다고 해서 미술관에서 전시하게 할 수 없다는 관장의 마인드는, 우리로서는 용납 할 수 없음을 상기시킵니다. 중앙에서의 인증이라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이야기일까요? 중앙에 인증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리 지역 미술관인데도 인정할 수 없다는 관장의 태도는 우리 지역작가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언행이며 지역미술을 밖으로 알리는 역할에 고민해야할 수장으로선 해선 안 될 행동입니다. 이 지역에서 중앙미술이나 공모전에 관여하지 않고 묵묵히 작업해 오는 작가들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또한 작품을 그러한 잣대를 가지고 본다는 것은 미술을 모른다는 스스로의 인정이며, 중앙 편중된 사고로 지역미술인들을 무시하는 태도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장 3차 재임용 반대 서명운동 안내문에 실린 7개 요구사항 중 하나, 2008>


그것이 퇴락하고 변방화 되어지는 이 지역 미술 발전을 위한 도립미술관의 운영 대원칙이다. 도내의 역량 있고 참신하나 생계를 위하여 꿈을 접어야 하는 수많은 청년 작가의 눈을 바라본 일이 있는가? 그들을 위해 최소한의 장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해본일이 있는가? (중략)지난 4년간의 전북 도립미술관은 과연 도민을 위해 지역 미술인을 위해 이러한 대원칙에 충실하였던가? <도지사에게 바란다, 전북도청 홈페이지, 2008-03-21>



Ⅰ. 문제제기 및 연구의 목적

이 연구는 ‘지역미술’은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지역미술은 말 그대로 ‘지역’과 ‘미술’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개념이다. 여기서 지역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 일반의 기형적 근대화와 경제 중심적 성장과정 속에 내포된 도시중심주의, 곧 수도 서울에 대비되거나 참조되는 의미로서의 다른 곳, 즉 주류(적 태도)의 외부2)를 뜻한다. 사실 예술 창작활동의 한 형태로서 미술 내부적으로는 지역미술이나 중앙미술과 같은 식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에 다름 아니며 별반 효력이 없는 무가치한 호명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지역미술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중앙 집중 현상과 주류에의 편입 욕구에 관련하여 풍부한 인력과 물자, 첨단 기능과 구조3)가 몰려 있어 국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선도적인 활동과 축적 기반이 갖춰져 있는 서울과 대조하고자 하는 일시적 구분법으로의 필요성에 있다.(근거?)


지역미술의 존재와 근거에 관련된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지역미술이 있으려면 중앙미술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중앙의 존재는 명백하다4)고 할 수 있으므로 결국 지역미술의 존재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또 그것은 미술 표현 양식상의 차이라든가, 시장규모 및 유통구조의 차원 등에서도 별도의 논의가 얼마든지 가능하며, 나아가 세계적 범위에서의 중심 또는 주류적 현상들과 비교함으로써 지역과 지역의 미술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별 고민 없이 호명해 오던 지역미술이라는 개념은 우선 지리적ㆍ행정적 구획에 따른 물리적이고 계량적인 차원의 미술 기반과 그 내용물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앞서 말한 중앙, 곧 서울에서 이뤄지는 미술에의 대조로서, 막연하게나마 그것이 그 지역만의 풍토와 문화적 속성을 반영한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어떤 정체성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연상을 하게 만든다.5) 연구자는 개인적으로 미술 영역 내부에 지역미술이라는 별도의 특수한 개념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지만 문화적 풍토나 지리적 환경, 사회정치적 지점에서 야기되는 ‘지역성’의 의미는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 식의, 지역미술 그 자체 또는 지역미술이라는 명명의 존재는 곧 미술 고유의 내재적 가치와 창작방법에 관련된 문제를 포함하여 미술시장 또는 화단의 형성 나아가 그 미술(들)이 생산되고 소비되며 쌓이는 공간, 곧 지역의 독자적인 경험과 스타일6)을 드러내기 마련이며 공간-지역의 역사적, 지리적, 경제적, 문화적 경험들을 또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이러한 지역미술의 현재에 대하여 그것은 그 지역 또는 도시의 어떤 부분과 연관되어 규정되며 영향을 주고받고, 미술 내부적 연망을 구축하며 사회적 구성과 분화를 지속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겨날 수 있다. 즉 미술 내적인 문맥에서나 미술생산자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전체 사회 영역의 작동구조 속에서 다시금 미술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 점은 미술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지역, 곧 미술을 통한 지역성의 발현이라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미 갖춰진 지역적 조건이 그 지역 내의 미술에 어떻게 개입하고 반영되는가의 문제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간의 미술 담론 또는 지역미술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실제로는 미술 그 자체나 작품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열악한 화단 풍토나 예술행정, 특히 지역에서 흔히 드러나는 인맥, 학맥 등으로 연유하는 지역주의의 부조리한 문제와 소위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으로서의 소외감 등 미술 외적인 조건들에 대한 말들이 더 많이 있어 왔다. 사실 이 점은 말 그대로 ‘지역’의 ‘미술’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더 꼬이게 만드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미술이 미술로서의 어떤 문제제기나 가치실현이라는 본연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삶의 조건과 풍토 그리고 개체적으로는 그를 통한 자기 삶과 예술이 관계된 생존의 영역까지 고려해야 된다면 이상의 문제들이 그저 쉽게 간과해도 괜찮은 영역은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왜 그런 것들이 논의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출발점과 핵심이 회피됨으로서 정작 근본적인 미술 문제의 해결지점은 끊임없이 유보되거나 상실되어 왔다는 것만큼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미술 또는 지역미술을 말하고자 할 때, 우선 먼저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답하고 그 다음 지역적 조건이나 미술생산의 환경을 말하는 것이 순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7)


그러나 이 자리에서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식의 광범위하고 다양 다기한 예술ㆍ철학적 배경과 담론에 관련된 모든 것을 말하기는 어려우며 이 글의 기본 목표도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지역미술의 실제적 현상을 전제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문화적 조건과 그 지역 내에서 미술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역과 미술에 대한 인식 정도를 살펴봄으로써 1)지역미술이 그만의 독자적인 성격과 실천방법을 어떻게 형성해 왔는가에 집중하여 논의하고, 2)지역미술의 사회적 구성과 분화가 그 지역의 독자적 정체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반대로 그 지역이 가지는 다양한 환경과 사회적 조건이 지역 내 거주 및 활동 미술가와 미술 생산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재생산하는가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역미술이라는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활용되며 유포, 전승(?)되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그것은 곧 지역미술의 근거에 대한 확인은 물론 존재 형태와 성격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Ⅱ. 선행연구 검토

지역 혹은 지역미술이라는 말이 대두되기 시작한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이는 지방자치제의 출현과 함께 각 지역 단위를 독립적이고 차별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제공된 측면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일방적인 세계화, 국제화 담론에 맞서는 민족적, 국지적 문화정체성을 견지하고자 하는 태도들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지역미술 담론에만 국한하여 보더라도 이러한 이해와 접근방식은 일견 타당하고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보여 진다.8)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지역성의 구분과 강조가 그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지역 현장으로부터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경향을 드러내게 되는 경우에 있다. 바꿔 말하면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지속이라는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의 자생적 예술 생존권의 확보와 확대 차원의 접근이 역설적으로 외부의 틈입을 일체 허락지 않으려는 완고한 보수적 입장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영향력을 유지시키고자 집단 내부적 연망을 더욱 공고히 하는 폐쇄적 권력게임으로 변질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변화, 세계를 바라보는 관습적 시각의 배제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고자 하는 예술 생산의 기본적 의미9)를 한참 벗어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지역미술은 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내부 완결적 입장만을 고집하게 되고, 이렇게 반복되어 쌓이는 지역미술 담론은 결과적으로 지역을 끊임없이 중앙과 대비시키는 종속적 구도에 위치시키게 만든다. 이러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구조가 유지되는 현실에서는 미술-에 대한 이해가 이미 철저히 중심-주변의 방식으로 위계화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온갖 아류들, 소위 ‘지방작가’들이 생겨난다. 이들의 임무는 불가피하게 중앙의 미술과 그 문화를 복제하는 것이 된다. 이길 수 없는 게임에서 이기지 못한 이들이 또 다시 대중들에 대해 또 다른 위계를 형성하여 아류적으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외부에서의 수혈을 제외하고는 끊임없는 정체와 동어반복이 특징인 지역미술과 그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미술 분야에서의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양극화 역시 무시하기 힘든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 뉴욕 타임즈의 미술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휴스(Robert Hughes)는 ‘문화적 비굴성(cultural cringe)'이라는 표현을 빌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작가로서 인정받는 것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뉴욕과 같은 세계미술의 중심지만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해바라기 근성을 꼬집은 적이 있는데, 우리의 경우에도 서울로만 작가와 관람객들이 집중하는 현상이나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보다는 외국 미술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이러한 개념과 연결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다.10)


실상 이러한 구조는 그러나 지방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 역시 이러한 위계적인 구조에서 본다면 또 다른 변방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서구 중심의 미술문화 체계의 변방인 서울의 기존 미술계가 급격히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음을 목격한 바 있다. 이는 국제적 변방미술인 서울의 미술이 또 다른 중심의 변화에 따라 재편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아류성이야말로 우리의 근ㆍ현대 미술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자국의 문화, 지역현실, 자신의 현실이 주변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한 그 현실은 주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들이 스스로를 주변적으로 인식하는 한, 그리고 우리들이 이 지역에서의 삶을 끊임없이 결핍된 삶으로 인식하는 한 그 탈출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바로 이곳의 현실을 생동하는 현실, 모든 억압과 새로운 가능성이 다른 어떤 곳과 마찬가지로 작동하는 장소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를 주변적으로 인식하는 그 자체는 이미 중심/주변의 도식이 만들어낸 효과이자 결과일 뿐이다. ‘지역’의 고통은 스스로를 중심의 주변으로 그 위계체제 내의 하위 위치에 속한 무엇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지만 다름 아닌 이곳에서 다름 아닌 유일한 삶이 이루어진다는 인식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곳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어떤 특수한 삶의 가능성과 동시에 미술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다면 사태는 어느 정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11)


Ⅲ. 연구내용

한국사회에서 지역의 문제를 말하려면 우선 중앙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지역미술의 경우 중앙미술, 나아가 근대화 과정에서의 서구미술의 유입과정까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우리 근ㆍ현대 미술의 태생적 연원과 발전과정 그리고 한계 속에서 우리 사회가 ‘미술’의 영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미술가(종종 예술가)들은 어떤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또 나아가 그러한 대중들의 선험적 이해와 제도적 배치라는 그물망 속에서 ‘미술가’ 자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가 하는 점 역시 논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이 점은 일제 식민지 경험은 물론 해방 이후 개발독재 시절을 거치며 거의 폭력적으로12) 이식된(훈육된) 문화론 또는 예술론에 기반한 상태에서의 미술제도의 활약이 미술생산자를 포함하여 미술대중13) 일반에 미친 교육적 효과와 재생산 구조를 섬세하게 들여다 볼 때에라야 정확한 의미로서의 한국 근ㆍ현대 미술, 중앙미술, 지역미술을 논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Ⅳ. 연구방법 및 현지조사계획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먼저 한국 근ㆍ현대미술의 태동과 발전과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이러한 한국미술의 정착과 발전 과정의 갈래 속에 자리하는 지역미술의 정체를 논하기 위해 지역미술의 구성 및 경향성 등을 역사적 시기에 맞춰 설명할 것이다. 이는 미술가 개인의 활동을 넘어 미술단체의 설립과 활동, 화랑과 전시활동의 역사, 도전14)과 같은 공모전의 역사, 각 대학교들의 미술학과 설립과 활동 내용들을 모두 포함한다. 또 지역 내에서 생산된 다양한 미술 활동의 결과물15)에 대해서도 그 주도적 형식과 소재, 다루어지는 주제들을 살펴봄으로써 지역만의 독자적이고 일관된 흐름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좀 더 구체적인 지역미술의 현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세분하여 접근할 것이다. 즉 미술가 집단의 구성 방식과 형태, 미술전시를 만드는 방식과 형태, 학연과 관련된 이해관계, 서울과 대비되는 지역담론과의 갈등 여부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지역 내부에서 그들만의 기득권과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상호 연망의 형성이나 세습적 권력의 유지 방식, 외지인16)에 대한 시선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미술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 살펴보아야만 할 것들로 지역의 역사지리적 환경과 사회문화적 환경도 포함될 것이다.


여기서 지역적 범주는 본 연구자가 주로 경험했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하게 될 것이며 특히 다른 분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술 활동의 대부분이 전주라는 도시에 집중하여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 이에 맞춰 연구 자료를 수집하고 논의를 풀어가고자 한다.


전북미술의 현재를 고찰하는 이 연구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역미술의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활용되며 또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북미술만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이 있으며, 그 특성의 유지를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연구를 위해 연구자는 지역 혹은 지역미술에 대한 이해도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된 대상자를 선별하고, 직접 인터뷰와 함께 설문조사를 병행하고자 한다.


- 전북 출생으로, 전북을 떠난 적 없이 미술활동을 지속한 사람

- 전북출생으로, 타 지역에서 미술활동을 하다가 돌아온 사람

- 타 지역에서 미술활동을 하다가 전북으로 유입된 사람

- 타 지역에서 미술활동을 지속하는 사람


모든 대상자는 연령별, 성별 분포를 감안할 것이며, 미술생산자 이외의 화랑 운영자, 평론가, 일반시민(미술소비자)의 경우도 일부 포함한다.


Ⅴ. 연구의 의의

지역미술을 말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의 측면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지역미술 역시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미술일반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점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실천 과정에 있어서 사회, 문화, 공간적 조건으로서의 지역성의 문제일 것이다. 즉 그것은 민주적 미술문화의 소통관계의 회복이라는 문제와 지역성의 문제를 어떻게 실현해 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역의 문제가 단지 주민등록상의 기록의 문제가 아닌 바에야, 제도와 미술과의 관계나 그 소통적 현실의 문제 또한 지역도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실천이 꼭 행동적인 발언으로만 현상하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무엇을 기반으로 어떤 발언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가 속한 삶의 문화적 문맥을 잘 밝히고 현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훌륭한 예술적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역미술이 미술실천적 지점에서 만나는 이 두 과제를 우리는 여하히 실현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고, 본 연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미 현대사회가 단일한 패러다임으로 작동하는 사회가 아닌 바에야 서구적 관점에서 서울도 하나의 변방이고 그 변방의 변방으로서의 지역미술의 주체가 중앙/지역, 중심/주변과 같은 문제에 매달려 자신을 소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점, 즉 자기 삶의 역사-사회, 문화적 맥락에 대한 실질적인 탐구와 자기가 속한 공간현실의 두 측면을 같이 보아내는데서 출발하는 것이 되어야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비제도적인 영역들 속에서(혹은 제도적 공간 내에서도) 효과적인 기획의 방식 등을 통해 실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17)


지역미술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이 연구는 결과적으로 지역미술의 실재와 현상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발판이 될 것이다. 또한 지역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읽어내는 일은 곧 지역미술의 또 다른 미래를 전망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사실 이미 선재하는 미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은 역사와 전통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지역미술은 이제 어떤 의미에서도 미리 규정된 좁은 의미의 지역미술이어서는 안되며 또 어떤 당위나 목표로서 추구하고 획득해내야 할 어떤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은 과거적 의미의 중심에 대비된 주변 지역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삶이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단위로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역미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기반하여 미술을 하는 것, 다른 미술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18)


Ⅵ. 참고문헌

이영욱 지역에서 살기, 지역에서 미술하기,

이영욱 지금 이곳에서의 아방가르드,

신석호 비평적 지역미술의 현상을 위하여,

하계훈 미술계, 힘과 경제논리에 예속되고 양분되다, 문화 양극화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문화예술, 2006. 2월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삐에르 부르디외, 최종철 옮김 《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새물결, 1979

박소영 《문화예술, 사유화된 공간에서 공공공간으로》, 스페이스앤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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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 연구에서 ‘미술’은 단지 제작된 작품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가와 그 미술가의 활동, 화단, 유통과 소비과정 및 그 관련 종사자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쓴다. 

주 2) 우리 사회에서 지역 또는 지방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지리적, 행정적인 구획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사회ㆍ경제ㆍ정치ㆍ문화 전 영역에 걸쳐 집중 투자되고 견인된 대도시 특히 서울에 비교하여 개발이 덜 된, 낙후와 소외 그리고 우수한 기능과 인력 등이 떠나고 남은 빈 자리라는 자조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지역 고유의 자생적이고 독자적인 존재 형태나 정체성을 생산ㆍ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단으로 중앙 또는 중심과 구분하여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에서 작위적으로 강조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주 3) 이 점은 특히 예술 활동에 있어 유통과 소비시장의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주 4) ‘중앙’의 존재와 역할, 기능 등의 문제는 별도 논의 및 참고자료 제시로 설명함.

주 5)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되어 작용한다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되고 순환하며 지역미술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한다.

주 6) 창작방법으로서의 ‘형식(미)’와는 다른 의미로 통해야 한다. 이를테면 색채, 소재 등의 선택에서의 관념적 태도라든가 방법 그 자체가 아닌 방법을 표현하는 데 따르는 확고한 자기정당성을 유지하는 태도 등을 말한다.

주 7) 신석호, 지역미술-발언을 위한 모색, 비평적 지역미술의 현상을 위하여, ?

주 8) 이 ‘지역중심’ 논의는 장소특정성과 관련하여 별도 설명 붙임

주 9) 이 설명이 예술 개념의 전부는 아니다. 역사적 시기와 장소에 따라, 주류적 태도와 경향에 따라 입장은 달라질 수 있다.

주 10) 하계훈, 미술계, 힘과 경제논리에 예속되고 양분되다, 문화 양극화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문화예술, 2006. 2월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 11) 이영욱, 지역에서 살기, 지역에서 미술하기, ?

주 12) 예술비평적 의미에서 사용되는 ‘폭력’에 대하여는 별도로 논의.

주 13) 미술을 소비하는, 경험하는 대중

주 14) 현행 전라북도미술대전, 관주도에서 민간(한국미술협회 전북지회) 주도로 치러지고 있다.

주 15) 작품, 전시, 평론 등 일체.

주 16) 문맥에 따라 외지인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연의 측면에서는 동문이 아닌 경우가 해당될 것이고, 단체를 기준으로 하면 해당 회원이 아닌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또는 소위 정규 미술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해당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전북에서 태어나 전북에서 미술대학을 마치고 전북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원주민’에 대비하여 전북 태생이 아니며, 외부에서 학교를 마친 후 전북에 유입되어 활동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주 17) 신석호, 지역미술-발언을 위한 모색, 비평적 지역미술의 현상을 위하여, ?

주 18) 위와 같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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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학기 석사학위논문 연구계획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