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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20060915-최춘근개인전-소리로 한 판, 구성지게 놀아보는 조각

by PrintStudio86 2017. 7. 25.

[전시서문]소리로 한 판, 구성지게 놀아보는 조각 

by artwood 2006/09/04 11:58 필부를꿈꾼적없다 

유대수/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기획자


<어사출두, 2006>



미술이 판소리를 만나는 게 분명 처음은 아니다. 판소리 다섯바탕을(정확하게는 그 줄거리만을)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친숙하게 만들어준 색색의 동화책을 생각해 보면, 이제 와서 판소리 한 대목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게 무슨 별 일이 되겠는가 싶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멀리는 민화에서도 그 자유로운 상상력의 필치를 찾을 수 있겠고, 또 해방기 판소리 독본에 얹혀진 삽화도 떠올릴 수 있다. 말하자면 흥부에게 보은하는 제비와 놀부의 욕심 많은 얼굴을 우리는 익히 ‘본’ 적이 있으며, 가슴 아픈 심청의 사연과 성춘향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보았고,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게 전부는 아니다.


그 동안 판소리가 이끌어 내는 예술적 상상력의 한 판 흥을 문학이 다시 읽어내고, 춤과 연극으로 재해석하고, 무수히 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어 왔다는 점에 비교하자면 정작 미술이 온전하게 이에 집중하였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판소리 다섯바탕 중 춘향전 완판을 주제로 삼아 70여 점에 이르는 연작으로 시각화해 낸 최춘근의 이번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실 5~6시간여에 이른다는 판소리 완창의 길이 때문에라도 관련 전문가 아닌 다음에야 그 한편을 온전히 감상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물론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야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터), 그 장대한 이야기 구조를 조형해 낸 노력과 결과로서의 이 파노라마는 결코 가벼이 볼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오리정 이별대목, 2006>



최춘근의 작업 세계를 지탱하는 요소인 풍자와 해학은 지금 여기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의 품성과 평상시 삶의 모습이 그러하듯, 마치 소리꾼이 내뱉는 걸쭉한 입담처럼 이야기의 뼈대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거칠고 투박하지만 박장대소, 감칠맛 나는 ‘아니리’를 모든 형상에 고스란히 옮겨놓는다. 또 흙빛 테라코타의 질감이 유연하면서도 소박한 민중적 심성으로 전화되어 눈길을 붙든다. 형태는 한껏 과장되고, 비례의 상식을 벗어나 제 마음대로 굵어지거나 가늘어진다. 사실 그의 작품 전반에서 정밀한 세부묘사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당히 뭉툭하고, 자유롭게 흘러내리는 몸짓과 드러날 듯 생략해버린 표정만으로도 더 깊은 미감과 상상의 여백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이런 특성이야말로 그만의 작업이 갖는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춘향, 모진 고문을 당하다, 2006>



또한 그의 조각(테라코타)은 낱낱으로도 이미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작품과 작품이 연결되면서 전체와 부분이 순환하는 하나의 극적 구조를 연출하기도 한다. 판소리-춘향전이라는 원전에 충실하고자 하는 일반의 기대를 배려함이거나 회화 구조와는 또 다른 조각적 특성에 기인한 것일 수 있겠지만, 우연찮게도 이 점은 어느 대목이든 개별로 잘라내어도 한 판이 되어 주고 전체를 묶어도 한 판이 되는 소리판 특유의 연결구조와 닮아 있다. 그리하여 인물과 인물, 상황과 상황의 배치와 연결은 일종의 무대를 닮는다. 미장센, 말하자면 월매의 어깨춤에서만이 아닌 공간 전체로부터 운율이 퍼져 나오고, 차라리 춘향의 사랑타령에서만이 아닌 전시 전체로부터 풍악이 울려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변학도 생일잔치에 끼어드는 몽룡, 2006>



이미 살펴야 할 대상의 설정과 자기만의 조형적 해석으로도 충분히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한발 더 나아가 현실의 세태, 오늘을 사는 법에 관련한 조롱과 비평의 장치까지 곳곳에 마련해 놓고 있다. 말 그대로 고전을 통해 현재를 되새기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고전에의 익숙함만큼이나 지금의 불가피한 현실도 우리 몸과 사고를 옥죄고 또 그 틀에 익숙해지기를 강요한다. 여전히 변함없는 권력의 우격다짐과 자본의 뻔뻔함이, 어질더질한 민중들의 삶과 일상이,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풍자와 해학의 조응이 비록 플라스틱처럼 반질거리지 않는다 해도, 느릿하지만 진중하게 세상을 챙기고 다독이는 일에 게으르지 않은 그의 발길이 의미를 갖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최춘근전, 2006 09 15, 전북예술회관

......

<작가 최춘근, 2006>


<몽룡과 춘향이 사랑타령하고 노는 대목, 2006>


<글 짓는 이몽룡, 2006>


<어사출두에 놀라 머리 처박는 수령들, 2006>


<어사 몽룡과 춘향 기쁘게 만나는 대목,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