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무엇에 대하여 ‘말’하는 몇 가지 방법
by artwood 2006/08/07 11:20 필부를꿈꾼적없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박정용은 개발독재로 얼룩진 한국 근대사의 단면을 또렷하게 ‘말’하고 있다. 지금 시절에 와서야 사용할 일도 별반 없는, 오래된 것임이 분명하지만 마찬가지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바로 그런 것들, 애국가가 그렇고 국민체조가 그렇다. 어린 시절 구구단을 외우는 일이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한 일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 기호들을 익숙하게 알고, 그 기호들이 의미하는 바와 관습을 알고 있으며, 그 중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약호들을 알고 있다! 심지어 내밀한 연애편지마저도.
그렇게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작가의 부스스한 얼굴이 더듬거리며 묻는다.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요?” 일단 ‘말’하고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사실 ‘말’하는 입(입술, 입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박정용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문자 또는 발화된 소리로서가 아니라 입술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그려 낸 모습으로 드러내 보여주지만 ‘말’은, 입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아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언제나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머리모양, 안경, 옷, 표정, 자세, 몸짓 등 우리에 관한 많은 것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혹은 ‘말’을 하고 있다(즉 그런 것들에 민감한 사람들이나 기호와 기표들에 주의 깊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내가 또는 우리들 중 누군가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정말 궁금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일까? 또는 ‘말’해지고 있는 주요 문장들이 비록 지금은 낡고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이행구조 속에서 어느 순간, 억압적 권력의 통제장치로 기능했음을 정말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일까? 아직 채 점등이 되지 않았을 것 같은 형광등(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그 표면에 늘어 선 맹인용 점자마저도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려 한다. 촉각을 기반으로 제작된 기호체계가 시각언어로 교체되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그것이 설령 언어와 문자와 손짓, 입술 모양 등으로 다양하게 변조되어 유포되고 있다 한들, 여전히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무엇으로 지금, 여기에 남아 작용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일까?
박정용이 제기한 하나의 방법은 낭독(朗讀)이다. 동시에 질문이지만, 일정한 간격(즉, 규칙과 관습)으로 배열된 입을 통해 수신자 역시 발신자와 같은 행위를 무수히 반복해야 한다는 뜻에서 그것은 바깥을 향한 것이기보다는 우리들 내부를 향한 다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반의 회화가 어떤 종류의 이야기체narrative를 구성하기 위한 사건들의 연쇄-명시적 의미(manifest meaning)에 한발 더 치중한다고 할 때, 그의 화면은 의미를 발생시키는 기호와 기호 사이의 관계-망에 관한 함축적 의미(latent meaning) 찾기로 빠져나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요?” 식의 드라마틱한 수작에 굳이 답을 궁리하여 ‘말’해야 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생각해 볼 가치조차 없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는 화면 그 자체의 구성을 책임지기 위한 개념적 구호에 대한 이해, 그리하여 기표의 소유를 통한 기의의 획득, 기호와 기호가 작동하고 결합하는 방식, 구체화된 행위(의 결과)로서의 텍스트 전반에 관한 질의응답-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기본 관심은 언제나 의미가 어떻게 발생되고 전달되는가 하는 것이다. 대체 의미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20060816- 서신갤러리. 박정용개인전 <되새기다>에 붙임
'News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60901-내 맘대로 보는 2인전-김회경[품] (0) | 2017.07.25 |
---|---|
20060825-이주리개인전-존재와의 대화, 묵시적 상상의 매혹들 (0) | 2017.07.25 |
20060601-민선4기에 바란다(전북일보) (0) | 2017.07.25 |
20060419_지역 문화예술진흥의 새로운 단계를 위한 허브네트워크 (0) | 2017.07.25 |
20060412-전라북도 문화예술정책의 다음 단계를 위하여(참여자치포럼) (0) | 2017.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