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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20060901-내 맘대로 보는 2인전-김회경[품]

by PrintStudio86 2017. 7. 25.

내 맘대로 보는 지용출/유대수 2인전 “樹, 浮遊”

김회경 / 문화공간 ‘紙談’ 기획실장

문화예술현장 「품」, 0609



요즘은 단골 술집인 ‘새벽강’에나 가야 유대수를 만날 수 있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 몸을 건들대는데도 이상하게 눈빛은 평소보다 더 날카로워져 있다. 껄끄러운 일에 총대도 시원하게 잘 매고, 잠깐 잠깐 무대연출도 하며, 소규모이긴 하지만 영화제에도 손을 댔던가?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작가보다는 ‘문화인’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그다.


몇 년 전 눈이 펄펄 내리던 날, 지용출의 금구 싸리재 작업실에서 석탄난로를 피워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는 기억을 못 하지만, 운동권 출신 특유의 ‘골방 냄새’가 여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투사적인 이미지는 아니지만, 삶에서 ‘고집’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목판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만도 그렇다. 그는 그때에도 나무에 천착해 있었다.


여기까지가 두 사람에 대한 엉성한 나의 단상이다. 순진하고 이상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예술가적 삶’이 있다, 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작품이 작가의 삶을 표상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에 나는 좀 민감한 편이다. 지-유, 두 사람 모두 적당히 마주치며 사는 나로서, 이 짧은 단상이나마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로 써 먹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지-유, 두 사람이 5월 11일부터 31일까지 문화공간 ‘지담’에서 기획초대전을 열었다. 왜 둘이 열었느냐, 별 큰 의미는 없고 그냥 둘이 친해서다. 싸리재와 전주를 배회하는 두 남자, 둘의 작품은 길 위에서 길을 찾는 이야기다.


樹-나무.

지용출은 여전히 변치 않는 담백한 칼맛을 보여주고 있다. 먼 거리에서 응시하듯 바라본 거목들, 그 거구가 화폭 가득 들어차 있는데 드러내 뽐낼 것도 없고, 굳이 숨길 것도 없다는 투 같다. 꼭 젊은 날의 무성한 욕망을 다 떨쳐낸 듯 관조적이다. 모노톤의 절제된 색감이나 목판의 결을 그대로 살린 뒷배경에서 정통 목판화의 전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지용출은 나무(목판)에 나무를 새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했으니, 피망이나 파프리카도 좀 볶아 먹을 법 한데, 그는 여태 고추장에 고추만 찍어먹는다.


물론, 고추장에 꽈리고추도 찍어먹긴 하나보다. 가끔 마늘이나 곤충도 새기곤 하는데,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것 같다.(그렇게 해석할 만한 몇 가지 정황을 알고 있음. 지면이 짧아 생략하기로 함) 그는 확실히 나무에 나무를 파고, 고추장에 고추장 찍어먹는 걸 최고로 좋아한다.


내 보기에 지용출은 변화가 더딘 사람이다. 쌍팔년도 식의 진지한 농담을 하고, 저항미술/민중미술의 기수였던 정통 목판화를 하며, 전주에 정착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리기 시작한 나무를 지금까지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변해 가는 세상이어서 눈알이 소용돌이치는데, 변화를 즐기지 않는 지용출은, 고집스레 나무만 파는 그의 작업은, 요즘 세상에 충분한 미덕이다. 다 좋은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가끔 사람을 나무 보듯 물끄러미 쳐다본다는 것. 일종의 직업병이려나?


浮遊-부유.

판화가 유대수는 판화가 아닌, 디지털 카메라로 실험을 했다. 사람들도 깜짝 놀랐고, 나는 ‘지담’의 기획실장으로서 ‘지담’이 마루타냐고 따졌지만 그는 삐죽삐죽 웃기만 했다. 목판이나 디지털이나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디지털은 델리트 키 하나 달랑 누르면 그뿐이지만, 목판은 버리면 다 돈이다. 지용출이 그를 “거저 먹냐?” 식으로 좀 얄밉게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그런데 노출과 셔터스피드를 ‘장악’하지 않고서는 저런 이미지를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나 보다. 훔-, 혹시 어찌 어찌 얻게 된 ‘유레카’는 아닐까? 아니다-. 유대수가 밤마다 카메라 하나 들고 전주 시내를 부유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짜르르 했었다. 목격했다는 사람도 많다.


사실 나는 그의 실험을 반기는 쪽이다. 무엇보다 그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끊임없이 담금질해 가고 있다는 걸 알겠기에 그렇다. 짓뭉개지고 왜곡된 사진 속에는 치열한 현실을 살면서도 정처 없이 떠도는 현대인들의 소외와 고독이 있다. 단골 술집 ‘새벽강’에서 비트적거리며 걷던 그가 정처 없이 부유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언제 그렇게 마음을 얹어놓았던 걸까. 나는 그것은 사람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었을 거라고, 멋대로 해석해 버렸다. 처음엔 모르긴 몰라도 술 한 잔 하고 찍은 사진이 아닐까, 의혹을 품었던 게 사실이지만, 사람에 대한 연민이 없다면, 마음이 뜨겁지 않다면 총대 매는 짓이나 낯선 매체를 들고 거리를 부유할 생각 따위는 안 했을 것이다.


* 리뷰는 대부분 그렇게 쓰길래 두 분께 반말을 좀 했다. ‘시적 허용’이란 것도 있으니, 용서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