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존재와의 대화, 묵시적 상상의 매혹들
by artwood 2006/08/15 11:57 필부를꿈꾼적없다
<침묵/244*122cm/캔버스에 유화>
존재의 정체를 바라보는 일은 힘겹다. 너무나 쉽게 말해지는, 환영과 허위의 세계를 살아가는 슬픔의 무게를 말해야 하는 일, 자기를 잃어버린 영혼의 상처를 고백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로 힘겹기 그지없다. 그리고 기억의 침묵.
이를테면 이주리의 침묵은 만연한 현실의 괴성怪聲에 눈 감은 정념情念이다. 모든 감각이 모든 보이는 것들의 유혹을 차단하고자 하는 내밀한 의지다. 역설적으로, 간단없이 떠오르고 스며드는 삶의 실체에 대한 외면과 적대가 아니라 오히려 서늘한 응시, 고요한 발화發話, 그렇게 가라앉아 좀 더 깊은 은유와 좀 더 넓은 사유를 예비하는 하나의 무위無爲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침묵/145.5*112.1cm/캔버스에 유화>
현실, 민감한 절망으로 비유된 손-목표 없는 무중력의 상념들은 자신에 대한 고통과 연민에 다름 아니다. 더불어 무념無念하고 무상無想하게 물러앉은 여백은 세이렌Seiren의 노래 또는 달의 뒷면, 우리가 직접 보거나 들을 수 없는 인간-존재의 역사와 기억 저편을 상상하게 한다. 묵시적인 상상의 매혹들, 그렇게 미루어 짐작한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작가 자신의 위치 변화에 있다. 익명의 벌거벗음이 조악한 현실의 고통을 직설로 드러내던 이전의 대응적 시점에 비한다면 지금 이주리의 눈은 존재의 저편, 세계의 바깥으로 한참 벗어나 일체一切를 조망眺望하려 하고 있다. 곧 시선의 내부로 돌아가 “나비가 될지, 주검으로 남을지 모르는” 자신 스스로를 내려다보는 것, 그 막연한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다.
<침묵/162.2*130.3cm/캔버스에 유화>
여전히 문제는 사람-삶이지만 이때의 삶은 체계적 배열의 강요를 가로지르는, 무절제한 타인의 눈길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적 현실 따위의 번민 같은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소요하고자 하는 그런 삶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삶-을 바라보는 눈은 이미 관조자의 그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 뜻에서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체제, 사물들을 가르는 분절선, 기호들의 체계, 제도가 부여하는 자리, 그리고 가치의 습득, 분류의 범주들, 곧 자신의 정체를 틀 짓는 많은 것들로부터 부양浮揚하기 위한 ‘다른’ 인식-의 간격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확실히 말은 손(짓)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 횡포가 아니다. 돌아누운 육신, 감겨진 눈조차도 이미 세계를 향한 확고한 발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은 감출 수 없는 시간의 진실을 말한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 우리는 여기에 있다.
이주리개인전/20060825-0831/전북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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