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22. [문화비평] 두 번째 질문-새로운 연대, 예술, 지역
새전북신문 2003.09.22
지면이 좁아 길게 말하지 못함을 이해 바랍니다. 결국 지역의 '새로운' 민족문화예술인들의 집합적 연대의 틀이 만들어지고도 한참을, 우리는 별다른 소통의 결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로서야 내부의 논의를 엿들어 볼 기회도 근거도 없으므로, 그래서 어떤 종류의 예술생산/실천 또는 비평에 관련한, 이를테면 '미술과 미술 내적인 문화에 대한 문맥의 확보와 담론의 형성에 주력함으로써 현실의 제도미술문화를 개혁할 정책들을 생산하는 지점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와 같은 방식의 대화가 오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의 여전한 관심은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형식의 문제보다는 그것을 '왜 하느냐? 왜 했느냐?'하는 질문항에 매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민족예술'과 '문화운동'은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필이면 현 시기에' 말이지요. 또는 지역 문화 문맥의 재론과 탐색, 해석과 구축에 따르는 내/외부적 동인과 작동 기제들의 효율적 결합 가능성에 관련한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번에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민예총이라는 민족문화예술인 모임의 그 동안의 활동에 대해 주관주의적이거나 지나치게 도식적인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마땅히 경계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자신의 가슴에 스스로 날려야 할 화살이 비껴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실 저의 명제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새로운' 문화예술인 연대의 틀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발상으로부터, 과정으로부터, 실천으로부터 이미 '새로운' 어떤 것이어야 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출생의 밑바닥에서부터 정말로 새롭지 않을 바에야 소위 예술 생산과 실천의 장에서 '새로운'이라는 머리말은 관례적인 허구에 불과합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예술생산과 실천이, 문화비평과 담론의 형성이, 말하자면 그런 것들에 대한 각 주체들의 요구와 열망이, 언제는 '새롭지 않은' 태도를 보인 적 있던가요? 턱없이 새로운 척 '똥폼'잡는 것들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럼 어디 너부터 '새로운' 어떤 것을 내놔봐라 하고 돌려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저에게도 정해진 답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로부터 아무런 조건 없이 투명한, 즐거운 예술문화의 생산과 소비를 위한, 교차토론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몇 가지 짚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은 아시다시피 '지역', '예술/문화', '연대'에 관한 것들입니다. 더불어 이 세 영역의 인식 태도에 관한 토론의 전제조건으로서 '새로운'이라는 말은 항시 깔려 있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물론 세 영역이 어차피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물고 있는 형편이긴 합니다만, "지금, 여기서 (새로운) 예술/문화는 (어디서 어디까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우선적으로 성립할 듯 합니다. 지역을 사고하고 연대를 꿈꾸는 우리로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내/외부적 선결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야 지역도, 연대도 감히 나아갈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하여 '내부가 좀 더 섬세해지고 외부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갖게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역예술이나 제도문화의 환경을 개선하는 실제적인 대안이나 정책을 마련하는 틀로 작동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애초에 원하는 바가 이런 것 아니었습니까?
'새로운 문화예술의 생산/실천 연대'는 '새로운 문화사업의 프로모션 집적체'가 될 수 없습니다. 현실정치의 편의적 발상으로, 전혀 새로울 수 없는 형식과 구조의 리모델링을 통해 생성 가능한 진보적 예술문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관방처럼 곱게 나열된 제 문파의 껍데기 무늬와 차기 예산확보를 위한 사업계획서 한 장 달랑 들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
주 ; 2003. 11. 02 일자 새전북신문 [문화비평]란에 위 글을 요약, 정리하고 다음 내용을 덧붙여 올렸다.
세상이 온통 시끄럽습니다. 돈 놓고 돈 먹는 정치판의 뒤집어지는 악취와 좌충우돌이야 한 두 번 당해보는 꼴이 아니어서 그런지 별 관심도 가지 않습니다만, 결단코 ‘국익’ 을 위하여 전쟁에 참여해야겠다고 우겨대는 국방부 송여인의 눈빛을 떠올리자면 부아가 치밀다 못해 오싹한 소름이 다 돋아납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생존의 사수를 위한 몇 분 노동자들의 장엄한 희생 앞에서도 이 나라 자본과 권력은 냉소적인 비아냥을 던지다 못해 파괴적이기까지 한 형편입니다.
이런 마당에 무슨 예술이 어떻니 문화가 저떻니 주절대야 하는 일이란 가슴 답답하고 허탈해지기 십상인 일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 돌아가는 꼴의 그 비이성적 작태들을 어느 위치에선가는 적시하고 발언하며 표현해줘야만 하는 작업들이 이성을 가진 자들의 소임이라 한다면 그 또한 소중한 문화 예술적 ‘코드’ 화이자 담론의 맥락화겠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지역’ 은 한가하기 이를 데 없어 보입니다.
기왕의 많은 문화예술단체들이-물론 ‘중앙’ 에 위치한-성명을 내고, 예술적 행동들을 드러내고 있는 마당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 내부에 떠올려야 할 이름과 풀어야 할 과제들이 눈앞에 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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