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30. [문화시평] 이미지와 공간의 네트워크를 위하여
새전북신문 030630
'지난 몇 주간 전주의 미술은 풍요로웠다.' 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사적인 반경 안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미술과 관련한 '담론'이 풍요로웠을 것이다. 그것이 우호적인 의미에서든 눈살 찌푸리는 배타적인 태도였든 간에 말이다.
한편으로는 몇 개의 굵직한 전시들이, 또 한편으로는 도립미술관을 비롯한 '공간'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토막난 채로 흘러 다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풍성해 보이는 담론들은 여전히 별다른 긴장감을 유발시키지 못하는, 맹숭하고 덤덤한, 김빠진 맥주같은 것일 따름이었다. 그런 풍성함에 대하여, 개개의 형태나 질의 문제를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미 정해진 담론의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음이 분명한 사람들의 몇 가지 태도들은 우리 미술 문화의 척박함에 대하여, 돌파와 대항의 역부족함에 관하여 충분히 지쳐 있고 자조적인 포기의 절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현상의 외피에 있지 않다. 시각 이미지와 관련하여 우리가 지적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은, 이를테면 앞서 말한 풍성해 보이는 이벤트의 형태와 성과 같은 것들에 있기보다는 이벤트가 열리는, 또는 열릴 수 있다고 보여지는 공간의 성격, 공간에 대한 설정의 범주, 포획의 정도를 따지는 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넓게는 '로컬리티'까지도 확장시켜 볼 수 있을 듯한 이 공간 설정의 문제는 좁게는 미술관, 박물관, 공원 등지로부터, 심지어는 교차로 어림의 세모난 경유지로부터도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그 자체의 성질만으로-단독적인 장르적 기법만으로 해결되어질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막연히 '미술'에 대한 관심만으로 접근하기는 힘들 것이 분명하다. 사실 미술은, 그 자체로 상당히 협소하고 비타협적인 독선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시각 이미지에 국한하여 얘기할 수 있는 몇 가지는, 지극히 사적이거나 또는 공공적이거나 간에 일정하게 기획된 배치로 사람들을 통제하며 예술활동을 상품으로서 소비하도록 고안된 공간들, 말하자면 이미 주어진 수동적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인 ‘자기표현’으로서의 문화예술이 가능해질, 관리되고 통제되지 않은 상황, 제도화된 곳이 아닌, 누구나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이러한 측면에서 바로 공공의 조립된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도시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은 특정하게 지시된, 한정적으로 위치 지워진 '장소'에 있다기보다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는 그 반대로 건너가고 넘어오는 움직임의 선상에 따라붙는, 얼마간은 비워진 채로 널려있는 배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공간들이 애당초 무슨 특별한 문화적인 배려로 고안된 것은 아니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역동적인 문화예술 생산과 소비의 장으로 쓰여질 수 있음에 주목하고 소통의 장치를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기억해 두자. 그런 맥락에서 공간의 설정이나 포획, 전용의 장소들에 대한 연구와 정책의 제안들, 다양한 이미지들의 프로그래밍과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또한 염두에 두자.
개인적인 욕심만큼이나 굳이 시각이미지에 한정된 대화의 결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시각은 몇몇 시설의 확보나 시, 공간을 적절히 메워주는 상습적 보따리 프로그램의 배치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유연한 문화공간의 생산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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