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25. [문화시평] 민예총 유감
새전북신문 030825
지난주에 바로 이 지면을 통해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을 창립하기로' 하였다는 사실을 꽤 자세하게 설명하셨더군요. '지난 2000년 5월 ‘전북문화개혁회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북지역 민족문화예술인 연대모임이 그 닻을 올린 바'있음으로부터 '발전적 해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새로운 전북지역 민족문화예술인 연대모임 창립에 대한 폭넓은 의견교환'의 내용까지도 말입니다.
제 눈에는 그것이 어떤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 낼 일인지 또는 어떤 색깔의 발언/담론의 지점에 안착할 것인지 등등의 고민에 미처 다다르기에 앞서 매우 친절한, 뜬금없는, 이를테면 '민예총 찾아오시는 길'을 안내 받은 셈입니다.
어느 모임의 총회장에서나 있을 법한 '경과보고' 형태의 논지를 접하면서, 사실 그 글 자체-너무나 마땅하다는 듯 태연하게 '문화비평'란에 실린-를 두고 굳이 잘한 일인가 아닌가를 따지고 드는 정력 소모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따지듯 나누어야만 할 얘기가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경과보고를 하기 이전의 어떤 상태에 관련한 것일 겁니다. 그러고 보면 이 글은 일종의 질문인 셈입니다. 그것도 오직 지난주의 글쓴이만을 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되돌아올 것이 뻔한 질문이지요.
우선 한 가지는 바로 '새로운(형태)'이라는 단어에 대한 혐의입니다. 위에서 제가 따옴표로 인용한 두 개의 문구 중에서 거의 완벽하게 닮아있는 단어의 나열이 눈에 띄실 겁니다. '새로운(형태의) 전북지역 민족문화예술인 연대모임'이 그것이지요. 지루하고, 한없이 맥 빠지는 담론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간의 '경과'를 제법 가까운 발치에서 보아온 사람으로서 더욱 그러합니다.
저로서야 위 두 개의 문구에 여전히 담겨 있는, '지역'과 '예술'과 '연대' 등등이 지시하는 원칙적 함의를 무시하고 싶지도 않으며 동시에 무분별하게 동의하고 싶지도 않은 게 분명합니다만, 도대체 '새로운' 어떤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 장치이며 성과이겠습니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대답하지 않은 것들 중의 한 문제입니다. 또는 그 동안의 '민족운동' 또는 '문화운동'에 앞 뒤 없이 정진한 결과 얻어낸 내공의 대단한 압축기술을 통하여 세련되게 뭉개고 넘어간 '오만과 편견'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삼 년 전의 새로움과 삼 년 후의 새로움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적어도 지금껏 어떤 종류의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과 '예술'과 '연대'의 담론에 접근하였는지, 그 경과는 혹시 아십니까? 그야말로 변화된 시대상황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하며 미시적인 접근이라는 여과장치, 전제조건 없는 발기와 창립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못난 역사의 되풀이일지도 모를 일이지요.
며칠 전, 민예총 미술분과 준비위원의 제안이라는 성격으로 일각의 미술인들이 모인 적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연대모임'의 대의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말 그대로 각 주체의 각이한 이념의 지평과, 현실인식과, 이해와 요구들, 물리적 조건, 기타 등등에 관련한 많은 것들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내남없이 따지고, 손질하여 재조립하는 담화의 광장이 전제되지 않았으므로 당장의 참여는 곤란하다는 것이 참여자들의 주된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저는 조금 느리더라도 두터운, 약간 포괄적이더라도 진지한, 그리고 동시에 우리 자신을 에워싼 제도 권력에 대한 미망과 고집스럽고 딱딱한 아우라를 걷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최선이라는 말이었다고 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지난주 글의 끝자락 멘트를 흉내내면서 이 글을 닫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어쨌든 발기의 장소건 창립의 장소건 다시 뵈올 날 있겠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질문도 해보도록 노력하지요.
민예총이라는 민족문화예술인 모임의 그 동안의 활동에 대해 주관주의적이거나 지나치게 도식적인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마땅히 경계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20여 년간 활동해온 민예총의 활동성과와 그 터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전북민예총이 순조롭게 창립되어 민족정체성과 지역성의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여 전북의 민족예술, 나아가 우리나라 민족예술을 눈부시게 꽃피워 가는 큰 나무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News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31016. 골방에서 꿈을 꾸다 (0) | 2017.07.10 |
---|---|
20030922. [문화비평] 두 번째 질문-새로운 연대, 예술, 지역 (0) | 2017.07.10 |
[리뷰]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허무의 무게-유대수 목판화전 (0) | 2017.07.10 |
20030630. [문화시평] 이미지와 공간의 네트워크를 위하여 (0) | 2017.07.10 |
20030519. [문화시평] 미술, 공공적 의제화하기 (0) | 2017.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