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519. [문화시평] 미술, 공공적 의제화하기
새전북신문 2003 05 19
며칠 전 서울에 계시는 선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미술인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위한 모임(가칭 미술인회의)을 추진중이며,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미술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논의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그러니까 제반 예술 정책의 검토, 비판, 제안을 위시하여 바람직한 공공미술제도의 정착-의 노력, 미술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연구와 실천, 국공립미술관 개선방향, 미술인 복지 및 창작 환경의 개선 등의 실천과제들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창립 준비위원으로 참여해 주었으면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이 보다 훨씬 더 오래 전, 전주에서 활동하는 어느 선배는 위에서 언급된 내용들과 거의 같은 맥락의 것들을 제시하며 역시 마찬가지로 실천적인 미술인 모임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겠냐고 역설한 바 있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앞의 것은 전국적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고 뒤에 말한 것은 짐작하다시피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지역 미술판을 고려한 제안이라는 정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두 가지 제안에 모두 동의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뜻이 있다. 서울에서건 전주에서건 미술계의 변화와 공공적 개혁을 위한 조직적이고 실천적인 개입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몇몇 인자들의 뒷풀이 얘기로나, 몇 개 글의 산발적 사용을 통해서 제안되고 충고되는 것들이 언제 한번 제대로 먹혀든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그 동안 문화(산업 또는 상품), 예술의 시대라는 미명아래 현란하게 차려진 수많은 잔칫상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미술은 여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공공의 영역으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적 한번 없이 개인의 사변적 지점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 동안 민미협이라든지 문화연대 등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것들이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도 일부 미술인 단체들이 토론과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좀더 치밀하고 좀더 조직적인 발언의 창구를 통해 제도 정책의 제안과 개입, 미술교육과 미술언론을 위시한 공공적 의제의 개발이라는 당면한 과제들을 미술인 스스로의 가슴에 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지역만 해도 미술에 관련된 첨예한 의제들은 산적해 있고, 반면에 이를 소통시켜 투명한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올만한 모종의 노력과 권력(!)은 연약하기만 하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모 미술잡지의 발행인 칼럼을 짧게 인용하며, 동시에 이 글을 읽게 될 미술계 식구들에게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미술계를 만들"기 위한 실천적인 미술인 모임은 어떤 형태를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해 주시기를 바란다.
"우선 시급한 개혁의 초점은 미술제도·정책·교육·언론 등 공공영역이다. 여기까지는 동조자가 많은 것 같다. 문제는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아 줄 것인가?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미술 개혁 주체의 폭과 참여의 외연을 크게 넓힐 수는 없을까? 계급장을 마다하는 백의종군의 개혁 동참자는 없을까? 단체보다는 개인, 강자보다는 약자의 목소리를 좀더 반영할 수는 없을까? 안으로부터의 개혁, 밑으로부터의 개혁, 수평적인 개혁의 방법은 없을까? 모든 미술계의 개혁 드라이브를 민주적 합리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정신적 실천적 연대의 장을 기대하는 것은 이상일까? 여전히 숙제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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