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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20031201. 하늘 끝, 땅 끝, 한 점 신선의 섬

by PrintStudio86 2017. 7. 10.

20031201. 하늘 끝, 땅 끝, 한 점 신선의 섬

제 85회 백제기행-경남 남해. 문화저널 2003년 12월


아직 바다는 보이지 않고, 나는 그저 무심한 눈짓으로 강줄기만 더듬고 있었지요. 창밖으로 말없이 스치는 섬진강은, 어느 시인이 노래한 서정과는 또 다르게 굳이 보랏빛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한번 지나온 길은 결코 뒤돌아보는 일 없는 강물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남겨 두고 온 세상의 뒷일이야 어쨌거나 미련 없다는 투로 하나씩 둘씩 머릿속에서 지워가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바다를 향해 떠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강물이 지나온 저 어디쯤이 세상의 시작이었다면 바다는 종종 모든 것들의 끝이 되곤 하지요.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마음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주 오래된 옛날, 내가 세상에 흔적조차 없던 때부터, 그렇게 흐르고 또 흐르며 남쪽 바다를 향해 짐을 꾸리는 바람에, 그러니까 아무런 인연이나 은밀한 약속 같은 것 없이도 세상 모든 사람들의 바닷길 동무가 되어주는 바람에 강물은 너무도 익숙하게 우리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강물은 한 번 더 바다를 향해 길을 터주고 있었지요. 그러고 보면 바다는 이미 예정된 결론이었습니다. 그 때 말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사실 아무 때라도 괜찮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거기 있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나는 아마도 남해라는 이름의 섬보다는, 비단을 펼쳐놓은 것처럼 아름다울 것이 틀림없는 금산보다는, 그저 망망한 바다를 보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강물과 바다가 마주치는 바로 그 곳을 몸 달아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바다는, 뭍과 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이쪽 노량과 저쪽 노량을 떼어놓은 채 은근하게 찰싹대면서도 나를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강물의 끝이 어디고 바다의 시작이 어딘가를 알아채기에는 내 삶의 부족하기만 한 내력이 따라주질 않았습니다. 떠날 때부터 이른 봄날처럼 나른한 느낌마저 전해주던 날씨 탓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어디 대고 원망할 수도 없는, 아마도 내 깊은 곳에서 저 혼자 스멀거리던 문명인의 초라한 욕심 같은 것이었겠지요. 그랬을 겁니다. 거대하게 휘어져 걸린 남해대교를 건너고, 아직도 다 이르지 못한 강물의 끝자락으로만 느껴지는 노량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는 또 한 번 육지를 지워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낯선 호기심으로 뒤돌아서면서, 분명 남해 땅을 밟고 서 있으면서도 나는 바다에 떠 있노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이순신과 전쟁과, 불화살과 깃발과 북받치는 호령과, 오직 둥둥거리는 북소리로만 넘쳐났을 정유년 노량바다의 기억에 아직도 붙잡혀 있는 저 거북선보다는, 박정희가 심어 놓았다는 충렬사 뒷마당의 히말라야시다보다는, 강진만 어디쯤을 에돌아 통통거리는 고깃배처럼, 저 생긴 대로 흩뿌려져 점점이 박혀 있는 섬들처럼 나 역시 바다에 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잠시 동안은, 살다가 한번쯤은 그렇게 바다에 몸을 맡기고 흐르는 것도 괜찮지 싶습니다.


어쨌든, 남해 이야기를 좀 더 보태야겠습니다. 남해의 밤은 불빛 한 점 없이 어둡기만 했지요. 밤바다는 엄두도 낼 수 없었고,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루루 몰려 간 횟집에서 소주 몇 잔으로 남해의 초야를 넘길 도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해를 넘기고 금산에 오르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바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 노량마을 앞을 흐르던 것도 바다임이 틀림없습니다. 전날 저녁 무렵 어둑한 솔숲 길을 따라 걷다가-이 곳은, 연인들이 속삭이며 걷기에 좋겠더군요. 기회가 닿는다면 제 안사람과 한번 다정하게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음포 기슭에 올라앉은 첨망대에서 바라본, 저 멀리 육지의 휘황한 불빛을 배경으로 가라앉아 있던 것도 분명 바다였습니다. 그래도, 내 그리움에 비하면 양에 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면 금산의 기기한 바위들이 자기네 앞터를 더욱 바다답게 꾸미고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구요. 그러고 보면 조금 숨이 차긴 했지만 금산에 오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요. 이름 부르기에도, 어느 한 때를 추억하기에도 그냥 남해보다는 남해 금산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한 단어처럼 느껴지는 남해 금산이 이런 모양이라는 것을 새삼 되새겼습니다. 사실 이만한 산 하나쯤이야 육지 땅 어디엔들 또 없을까 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마는, 원효가 기도하였다는 의자바위가 아직 또아리를 풀지 않은 채 버티고 있고, 이성계가 기도하여 그 산의 정기를 내려 받아 대업을 이루었다는 말을 듣고 보면, 어느 날엔가는 동틀 무렵 보리암에 들어 불타오르는 여명을 바라보아 감탄을 쏟아 내리라는 생각을 해 보자면, 그저 생김생김이 심상치만은 않은 듯 다시 돌아보게도 합니다.


새기는 의미야 각자 다르겠지만, 서해를 바라보며 솟아있는 강화의 마니산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 곳을 올랐을 때도, 나는 비슷하게 닮은 느낌을 가졌었습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앉은 산은, 저기 먼 바다의 꿈을 말없이 응시하는 산은, 움푹 질푹하니 속살까지 다 내어주며 어우러진 삶의 연들을 끝내 놓아 보내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 주리라는 느낌말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다시 찾아올 때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금산 줄기가 흘러내려 오목하게 지어낸 상주의 모래밭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지난 한 때를 떠올렸습니다.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말씀 드렸듯이, 남해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지요. 그 때는, 남해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해수욕장에 왔을 따름이었겠지만, 그래도 무려 이십 년만의 만남입니다. 그 때는, 술에 취해 바다를 그저 평평하게만 바라보았지요. 내 뒤에 산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산을 오를 줄도 몰랐을 때입니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제법 어른스러운 겉내를 풍기며 산을 오른답시고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립니다만, 산을 모르고 바다를 그리워 하기는 종내 마찬가지입니다. 그제나 지금이나 세상일에 어리숙하고 못난 것만은 어찌할 도리 없는 천성인가 합니다.


혹여 보리암에 올라 보셨던가요? 글쎄요.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의 하나라는 보리암은 그다지 기도할 수 있는 곳 같지 않았습니다. 그 좁은 절벽 귀퉁이에 또 하나의 불사를 이루겠다는 조감도와 커피 자판기만이 가장 눈에 띄더군요. 신라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세웠다는 삼층탑은 미처 보지 못하였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대는 바람에 자동차로 꽉 막힌 출근길 네거리 같다는 인상만 받고 말았습니다. 물론 나조차도 그 행렬에 끼어들고야 만 씁쓸함 때문에 두말 못할 처지이긴 합니다만, 가만히 숨 고르며 내다보아야 할 자리의 아름다움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는 인간들의 그악함이 못내 서운하기만 하였습니다.


바다 이야기를 하려다가 너무 엇질러 갔나 봅니다. 사실, 금산만이 아니라도 남해에 대해 들려 드려야 할 얘깃거리는 아직도 많습니다. 해변가 마을 어귀를 단단히 지키고 서 있던 집채만 한 왕후박나무하며,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한다는 물건마을의 방조어부림-해변가를 줄지어 선 나무들보다는 마을이 더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이 살기 때문이겠지요. '물건'이라는 마을 이름조차 예쁘지 않습니까?-, 창선교 아래 물살 센 지족해협 곳곳에 참나무를 박아 만들었다는 원시 죽방렴의 연원과 쓰임새 등등이 그것들이지요.


한반도 둘레에서 네 번째로 크다는 섬, 남해는 단지 남쪽 바다를 부르는 이름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디나 그렇듯이 여기도 사람이 살지요. 사람 사는 곳에 사연 없고 인연 없던 적 있겠습니까. 남해가 품고 살아온 것은, 육십여 개를 헤아리는 자식 같은 섬들만은 아닐 것입니다. 남해는 서포 김만중의 글을 낳아주고, 수많은 유배자들의 회한을 달래주던 땅이었습니다. 가파른 절벽조차도 다듬고 쌓아내어 밭을 일구는 모습에서도 알아챌 수 있듯이, 여전히 바다를 목숨삼고 땅을 생명삼아 밥 지어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기도 합니다. 남해 섬 해변을 에돌아 난 도로를 하루 종일 달리며 스치는 바다마을들도 한결 같이 포근하고 정겹기만 합니다. 그 중 남해에서 가장 큰 항구마을이라는 미조항을 먼발치에 두고 다가가는 물미도로는 가슴 왼편으로 흐르며 따라붙는 은색 바다와 드문한 섬들의 정경으로 더욱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바라보아야 할 바다는 많은 줄 압니다. 겨우 한나절을 떠나와 건들거리며 내려다 본 남해바다가 내 그리움의 전부가 아닌 줄도 알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육지의 먼지 묻은 욕심들 잠시 접어둔 채로 멀리 도망쳐 온 나에게 잠시잠깐 인연 맺도록 허락해 준 바다와 산과 마을들에게 감사하기만 합니다. 맞대면하고 인사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 사연 많은 땅을 연연히 지켜내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나는 이제 육지로, 떠나오기 전의 그 자리로 돌아와 있습니다만, 바다는, 아직도 먼 듯 가까운 듯 내 가슴 어림께를 휘돌고 있어요. 남쪽 바다 그 삶의 은은한 향기 잊지 않고 있다 보면, 언젠가 한번은 또 바다를 향해 떠날 날이 있을 줄 믿겠습니다. 나는 아직도 바다를 다 보지 못하였음이 틀림없으니까요. 당신과, 또 그이들 모두 이 겨울 내내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추신

남해 가는 길에 동행했던 아이들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그런 여행길에 익숙한 몸짓들이 감탄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아이다움을 잊지 않고 뛰어 노는 해맑음이 또 부럽기도 했지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없게 만드는 불필요한 규칙들을 만들어 내는 일일 따름이라고 새삼 도리질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바다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내 수고하셨던 버스 기사님에게도,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우리와 동행하며 남해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들려주시려고 애쓰신 정의연님에게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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