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 Column

20030216. [문화비평] 문화권력을 나누기

by PrintStudio86 2017. 7. 10.

20030216. [문화비평] 문화권력을 나누기

새전북신문 2003.02.16


적어도 내가 사는 '지방'에서는, 요즈음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지방분권에 관한 논의들이 자못 심각하다.


그 복잡다단한 속내를 미주알 고주알 알아채고 있기에는 내공이 한참 모자라는데다가 내 전공 밖의 일이려니 하고 별 관심이 없던 중에, 이 참에 아예 '문화분권'도 필요하리라는 대목에서는 어찌 귀가 솔깃하여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소위 문화라는 것도 서울로, 서울로만 몰려있구나 싶었다. 사람 많고 돈 많은 곳이다 보니, 공공 인프라는 말할 것도 없고 민간에서 운영되는 것들만 해도 대한민국 어디에 견줄 수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서울은 볼 것 많고 누릴 것 많아서 좋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정작 궁금해진 것은, 서울에 대한 막연한 소외감이나 질투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라, 과연 문화라는 것은 나누어질 수 있는 권력/권한인가 하는 것이었다.


추상적인 문화'적' 담론 말고도, 이를테면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 문화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서울정부는 전북/전주정부에 비해 대한민국정부로부터 얼마나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가 따위의 질문 아닌 질문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짐작컨대 그 논의는 아마도 문화와 관련된 정책이나 지원/집행체계, 공공 인프라 같은 것들의 분권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당연히 강조하고 요구해야할 것들임이 분명하겠지 하는 긍정의 의미에서, 삶의 제 양태로부터 예술 표현의 다기한 방식까지를 아우르는 의미로써의 문화는 어디서 어디까지가 권력일까 또는 어떻게 분권/이양될 수 있는가 따위의 하릴없는 상상을 지우려던 차에, 문화분권에서 문화를 미술로 바꾸어 놓고 보니 또 마음이 달라진다.


미술분권. 적어도 내가 아는 미술동네에서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도의 차원에서 보자면, 우선 눈앞의 도립미술관만 해도 재정과 인력확보에 허덕이고, 모 용역 결과에서 투자 대비 생산의 가치로 점수를 매기며 중단 또는 연기를 운운했던 판이다.


한편으로는 결국 오보였다고-제안일 뿐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는- 사과 기사를 내긴 했지만, 지난 1월 초순경 모 일간지에 실렸던 '예·체능 성적 내신서 뺀다'라는 보도는,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차기 정부의 문화정책을 예단하여 의심케 만드는 심각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미술동네에서 나누어 가질 권력이 있기나 한지 생각해 본다. 미술가들은, 이제 충분히 자본적이어서 심화, 집중된 자본이 널려있는 서울로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대학 입시까지, 소위 전업작가의 세계에서까지, 우리는 피카소와 로댕과 이중섭과 박수근을 동경하지만 그들을 보려면 별 수 없이 서울로 향해야만 한다.


시장은 여전히 척박하기만 하고 삶의 경험은 고답적이며 십여 년 전의 전시장과 오늘의 화랑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속에서 미술문화의 재생산/구축은, 생산자든 소비자든 간에 별다른 질/양적 변화를 갖지 못한다.


정보의 양은, 시골구석까지 제 아무리 인터넷이 통쾌하게 터진다고 해도, 시각 이미지 환경을 포함하여 현저하게 부족하기만 하다. 미술은 미술 자체만으로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도 혹여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적당한 분량의 돈과 적당한 무게의 건물과 적당한 내용의 법체계 정도이지 싶다.


말하자면 나머지 몫은 미술 종사자 내부의 문제로 돌아오며, 미술을 제외한 사회 전 분야의 권리 주장과 이해득실에 따르는 권력 분배의 양상에 매일 수밖에 없는 문제일 따름이다, 라고 두서없는 각설을 펼쳐놓고 보니 앞에서 지우려다 말았던 문화권력 나누기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금 도진다.


어쩌면, 문화와 분권이라는 말 사이에 산업이나 예산, 정책 따위의 단어가 생략되었으리라. 그런데, 정작 예산이나 정책, 집행권한 등을 나누어주면, 지방의 미술 또는 문화는 과연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