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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20030105. [문화비평] 건물, 작품, 그리고 사람들

by PrintStudio86 2017. 7. 10.

20030105. [문화비평] 건물, 작품, 그리고 사람들

새전북신문 2003.01.05


밀레니엄의 세 번째 해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남다른 감회를 준다. 변화의 시기라는 게 사실 연말, 연초에만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이맘때면 항시 조금이라도 무엇인가가 달라지기를 바라고, 희망과 꿈과 약속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몇 달간 미술에 관련된 얘기들을 적지 않게 흘려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돌아보면 또 그게 빈산의 메아리인 듯 허탈하기도 하다. 새로움이란 것이, 적어도 미술에서는 그리 낯선 언어는 아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해석,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접근하고 노력하는 일이 미술적 사고의 임무라고 믿는 탓이다. 그럼에도 말이나 글과는 달리 지금, 여기의 미술에서 변화해 보려는 어떤 움직임이나 노력들을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변화는, 전시회가 개최되는 숫자나 관람객들의 수, 작품의 판매 규모 같은 것들로만 따져질 성질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새로운 어떤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이전과는 다르게 변해 보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이유나 근거들이 단순히 미술 종사자들에게만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해 본다.


예술적 또는 문화적 성과를 축적하고 나누어 갖는 일이라는 게 어디 창작자 개인의 소임에만 달려 있겠는가.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튼실한 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문화적 향기의 공유라는 꿈은 사상누각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기업이나 개인의 사적 차원에서 운영되는 미술활동도 포함되는 얘기다.


모악산 자락에 그 터를 잡은 도립미술관이 조만간 완공될 것이다. 문화예술회관 전시실과 몇 개의 갤러리, 상업화랑 외에는 제대로 된 미술공간을 가져본 적 없는 우리로서는 무척 큰 기대를 가질 만도 하다.


이러한 공간이 이제서야, 겨우 한 곳밖에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몇 평의 방이 생긴다는 일로서만이 아닌, 미술관의 연구, 교육 기능이나 지역미술사의 라이브러리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의 확장이라는 의미만으로도 그 기대감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못미더운 구석이 여러 곳에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공간은, 일정한 물리적 구획만을, 몇 개의 방으로 쪼개진 콘크리트 더미만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종류의 공공 공간은, 긴밀한 사회적 맥락화 속에서라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뜻에서, 소장하고 관리하며 연구되어야 할 작품들에 관련된 얘기들이 선행되어야 함이 당연하고, 기획되고 운영되어야 할 프로그램들과, 그 모든 것들을 통과하며 흐름을 잡아가는 사람에 관련한 얘기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럼에도 지난 일 년여를 지나며 우리는 미술관에 관련된 아무런 설명도 접할 수가 없었고, 무엇이 준비되고 무엇이 관리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암중모색이었을 따름이다.


어쨌든 건물은 지어져 가고, 완공은 코앞으로 닥칠 것이다. 본지에서 이미 다른 분의 글을 통해 누차 강조된 얘기지만, 그저 육중하기만 한 하드웨어만이 중요한 게 결코 아니다.


채워져야 할 소프트웨어와 운영되어야 할 프로그램들, 기획되고 관리되어야 할 콘텐츠웨어들까지, 아니 더 더욱 중요하게 고민되어야 할 사람의 문제까지, 모든 것들이 종합된 대화가 필요하며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개관을 두어 달 앞둔 시점에 가서야 작품수집이니 관장 선임이니 하며 끙끙댈 일이 아니라면, 우격다짐으로 대충 빈 공간들 채워 넣고 보자는 식으로 할 일이 아니라면, 미술가들에게 여유로운 창작과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진정으로 도민들에게 질 높은 예술의 향기를 나누어주고 싶어 하는 일이라면, 지금 당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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