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811. [문화비평] 전시, 보여주는 것과 보여 지는 것
새전북신문 2002.08.11
미술전시라는 것이 문화적 소통을 위한 하나의 장치이고, 그 맥락에서 작동하기를 바라며, 그런 의미에서 일정한 예술적 방향과 합의된 목표를 스스로 가질 수밖에 없다면, 그런 식의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고 발언한다는 일은 무척 까다롭고 위험한 작업이 될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전시 기획자 또는 참여자)이 위치한 ‘지점과 상황’에 대한 충분한 숙지와 더불어 세밀한 기획과 적절한 연출이 수반되어야 함은 당연한 과제가 된다. 그러한 ‘태도와 자세’의 요구가 미술을 문화적으로 숨쉬게 할 것이며, 창작의 고된 성취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견 이런 교과서적인 섬세함에 대한 강요(!)가 버겁고 난감하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사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창작 기반의 불안정함이나 우리 미술의 가난한 현실에 관련한, 어느 미술비평의 자리에서건 우아하고 순수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의 덜 떨어진 교양을 탓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가끔은 그러한 당연한 과제에 익숙하지 못한,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적당히 비껴가는 미술생산자 자신이 난감함을 구축하는 데 주요한 공헌을 하게 되며 미술을 버겁게 만드는 일에 대한 일차적이고 최종적인 책임이 있음도 사실이다.
지점과 상황의 조건들은 가능한 외면하고 자세와 태도의 문제는 과도한 자의식 속에서 충분히 자신만만하다. 우리는 많은 전시들을 그렇게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모두의 문화로 변환되지 못한 채 오히려 자괴의 상처로 남아 켜켜이 쌓이며 반복되기 십상이다.
시민, 독자들이 어느 정도나 지켜보았을지 의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이루어진 몇 개의 전시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기야 언제는 어땠느냐는 식으로 시니컬하게 뒤돌아서면 그만일 수도 있겠으나, 미술생산자 스스로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에 가려진 보여 지는 것들에 대한 소통의 요구에 대해 짐짓 제삼자인 척 물러서는 행태에 대해서는 막상 동의하기 힘들다.
역설적으로 그 순수하게 맑은 예술적 심미안에 그저 고요하게 다가서지 못하고 딱딱한 제도의 언어를 들이대며 무리하게 읽어내고자 하는 것 또한 별로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미술은, 무언가를 드러내고 보여주는 일임과 동시에 그렇게 보여 지는 것들에 대한 쌍방향의 소통이며 읽어 내기이고 문화적으로 사용되어져야 할 무엇이라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코드화 된 몇 개의 단독물들이 한정된 지시공간에 늘어서 있거나, 대중들의 눈에 쉽게 발견되는(발견될 수밖에 없도록 강요된) 어떤 곳에 물건들(!)을 그저 던져 놓았다고 해서 전시의 의미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인스톨레이션과 퍼포먼스가 그리 쉽게 완성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이런 점은 미술생산자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통 없는 행위는 오늘도 계속된다.
남한에서, 그것도 지방에서 미술을 행위하고 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짐작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의 이면에서 미술적 욕구의, 아니 문화적 소통의 욕구의 강렬함이 끊이지 않는 것은 단지 생산자만의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사는 우리 모두가 보기와 느끼기와 읽기를 경험하고자 하는 일임은 분명하다.
혼잣말로 중언부언하는 미술생산자를 기다리는 대중은 없다.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이건 어때?”라거나, “너와 얘기하고 싶어”라고 말을 건네주는 미술이, 미술전시가 필요하다. 지난 몇 개의 전시에서 나만이 그런 속삭임을 전해 듣지 못했다면 그건 순전히 본인의 우둔함 때문이다.
어느 전시장에서는 “작가들, 어디로 튈 것인가?”라는 대화의 장이 열린다고, 또 어디서는 “미술시장과 미술 대중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질 예정이라 하고, 이들을 통과하는 도중에 어느 지점으로부턴가는 우리 동네의 막막한 미술적 현상들을 좀 더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할 소금물 한 줌 건지고 싶다. 그리고 속삭임은 계속될 것이다. 가끔은 무겁고 가끔은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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