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07. [문화비평] 거리의 미술행위
새전북신문2002.07.07
이 동네에서 벌어지는 미술(행위)에 관련한 얘기를 써보자는 약속을 해 놓고 한동안 어디서부터 그 줄기를 더듬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 동안 이런 저런 전시들이 없어서도 아니고 화가들이 모두 어디로 휴가를 떠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문화예술축제들과, 축구열기에 들떠 온통 붉은 물결로 뒤덮인 애국(!)의 광장을 바라보며 지낸 6월의 폭풍 속에서, 과연 우리들 삶의 언저리에 미술이라는 게 어떻게 존재했을까, 그 존재는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 아닌 질문만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 게 사실이다.
기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미술이라는 것이 최첨단 인터랙티브 미디어 시대를 사는 현재적 삶의 구조 안에서 어떤 의미작용을 해줄 수 있느냐하는 식의 질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쪽에서는 취화선류의 오래된(!) 미술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한다. 향수에 취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다만 틀에 박힌 듯 일반화되고 박제화된 예술적 신화에 대한 기대가, 일상에 유포된 다양한 방식의 미술(행위)을 좀 더 자유롭게 읽어내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들 뿐이다.
나 역시 그러한 향수로부터 별반 자유롭지 못한 사람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지만, 광장을 뒤덮은 대규모 멀티스크린과 붉은 악마들의 모습을 보며 광주비엔날레 뺨치는 설치미술과 퍼포먼스를 떠올리고, 월드컵을 통해 드디어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격앙된 목소리들을 통해 전 국민의 색채미학의 변화를 예감하자고 한다면 그리 과장된 제스처만은 아닐 듯싶다.
실제로 거리(또는 광장)에서 어떤 종류의 미술을 실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잘 꾸며진 전시장에 얌전히 모셔진 작품을 대하는 일에 익숙해진 눈으로 사방이 확 트인,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상의 삶이 시도 때도 없이 굴러다니는 길거리에서 미술을 감상한다는 일 역시 쉽지 않은 일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동문거리축제를 통해 선보인 몇몇 행위들-교차로 한 복판을 결혼식을 위한 무대로 설정하고, 바닥에는 온통 구름 문양이 깔리며,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천사의 날개를 달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기존의 미술언어에 익숙한 우리의 무감한 시각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제 미술은 어디에나 있다. 좀 더 확장되고 좀 더 다양한 미술을 즐기기 위해, 이제까지 미술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선입견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전시장을 포함하여 모든 거리와 도시를 미술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일상의 거리를 걷는 당신의 손짓과 눈길 속에서, 당신의 호흡이 미치는 모든 공간 속에서 미술을 찾아보자. 그것은 우리의 무감한 삶을 풍요하게 즐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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