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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20020426. 낯선 그림, 지나치기 힘든 현실들

by PrintStudio86 2017. 7. 10.

20020426. 낯선 그림, 지나치기 힘든 현실들

새전북신문 / 전주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리뷰

유대수/화가


낯설다, 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므로 몇 작품들만큼은 기어이 보아야겠다고 내심 다짐을 하고 있던 터였다. 여기서 낯설음은, 단지 멀리 떨어진 거리감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무료하고 나태한 관성을 바짝 끌어당기는 정화의 통풍구가 되어 줄 여지를 더 많이 담고 있다. 더욱이 '전쟁과 영화'라니, 꿈결 같은 환상과 낭만으로만 주입되던 '만화영화'의 차원을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실험영화와 아트애니메이션을 주제로 불과 한 달여 전에 치러낸 골방영상제에 대한 감흥도 작용을 하고 있겠지만, 라울 세르베나 페도르 키투르크를 앞세운 유럽의 실험적 작가주의 필름들과 한국 인디영화들을 만나게 된 것이 못내 반가웠다.


아마도 이번 애니메이션 비엔날레가 가정했던 미학적 접근의 중심에는 라울 세르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이렌이 보여주는 거칠고 황폐한 미래상, 크로모포비아와 아트락션이 일깨우는 획일화된 제도와 규율의 어리석음, 하르피아가 던져주는 욕망의 굴절, 말하느냐 마느냐의 정치함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지나치기 힘든 의식의 긴장과 예술적 진지함을 여실히 내장하고 있다. 여기에 전주영화제의 주 테마인 '전쟁'에 대한 발언을 축으로 하는 몇 개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전쟁게임을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 지상에서 가장 힘겨운 일과 아름다운 일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뒤돌아보게 하는 극명한 지시점을 내보이고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웨이킹 라이프 또한 우리의 무감한 시선을 자극한다. 실사이미지 위에 회화적으로 덧칠해진 화려하면서도 몽환적인 색채에 잠시 숨을 고르다 보면, 존재의 근거에 대한 무한한 질문과 사유의 반복이 꿈인 듯 현실인 듯 펼쳐진다.


일본 단편이나 체코 특별전 등 일견 다양한 제작기법들과 풍부한 주제의식들을 담아 낸 상차림을 흐뭇하게 지켜보면서도 굳이 아쉬운 부분을 말하라면 실험애니메이션이라 이름 붙여진, 미술과 음악과 영화의 교착점이랄 수 있는 아트애니메이션이 주변부 장식으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그래밍의 문제라기보다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극 구조 영화들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애니메이션 시장 구조를 폭 넓게 구축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주의깊게 살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이번 애니메이션 비엔날레의 전반적인 경향과 색채를 주도하는 작가주의나 실험성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다. 아트애니메이션이라는 개념조차도 다른 어떤 것들과 어떤 방식으로 구분되는 무엇이라고 뚜렷하게 정의하기에는 아직 벅차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으며, 길지 않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인 한국 인디 애니 스페셜을 통해 폭 넓은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한층 성숙해지고 있는 애니메이션 비엔날레의 '독립'적 행보에 기꺼이 동의하면서, 일상의 힘겨움에 대한 하나의 전복적 대항으로서의 반일상적 사유를 나누어주는 '움직이는 그림',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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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2002 전주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최기우 기자 | desk@jjan.kr / 등록일 : 2002.04.26 / 최종수정 : 2002.04.26 19:56:00

https://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59947


“예술에서 바라본 애니메이션의 기법을 담아낸 것들이어서 그동안 쌓여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씻어낼 수 있는 그런 작품들입니다.”

2002 전주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를 프로그래밍한 전승일씨(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애니메이션 비엔날레의 특징을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트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권선징악의 스토리에 예쁘고 깜직한 캐릭터를 연상하는 일이 편견과 오해라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가 이에 대한 해답을 준다.

예술로서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다양한 기법과 생각이 가득한 명작(?)들로 가득 채워지는 올해 영화제의 애니메이션은 디즈니나 저패니매이션(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고 품격있게(?) 변화시킨다.

직접 애니메이션 제작자이기도 한 전승일 프로그래밍 어드바이저가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작품을 선별했다고 토로(?)한 이 작품들은 전주국제영화제가 내세우고 있는 ‘대안’의 의미를 제대로 반영한 애니메이션들이다.

애니메이션의 영토에서 대안의 모습을 찾아냈던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가 한단계 진전하는 셈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여주는 주제는 1회때와 확연하게 다르다.

‘동화 저편의 진실’을 주제로 한 1회가 애니메이션이 더이상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가 아님을 보여주었다면 올해에는 애니메이션을 예술과, 실험적 장르로 바라보며 영화와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애니메이션을 만화로 구속시킨 세계로부터 풀어놓아 본래의 자리인 영화의 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셈이다.

2002골방영상제를 기획했던 유대수씨(문화개혁회의 사무처장)는 올해 애니메이션 비엔날레가 일본이나 미국중심에서 탈피한 것이 주목할만하다고 말했다.

유씨는 “라울 세르베, 이리 트른카 등 유럽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며 대중성보다 작품성·작가주의 중심으로 엄선, 어렵게 골라낸 작품들이어서 관객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북돋우기에 충분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사실 올해 애니메이션이 내세우는 상상의 세계는 비엔날레의 7개 하부섹션 곳곳에서 감지된다.

‘라울 세르베 회고전’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오가는 실험영상으로 ‘세르베 그라피’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하르피아’와 ‘탁산드리아’가 눈길을 끈다.

만화가 아닌 인형의 아름다움과 재기발랄한 움직임을 감상하고 싶다면 ‘체코 애니메이션 특별전’을 찾는 것이 좋다. 그림이 아닌 인형극을 애니메이션 장르로 확장시킨 체코 애니메이션 중에서 이리 트른카 ‘황제의 나이팅게일’과 ‘한여름 밤의 꿈’을 선택하는 것도 현명할 듯 싶다.

풍자성 강한 카툰을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페도르 키투르크 특별전’을 감상해야 한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애니메이터, 페도르 키투르크는 넘어지고 쓰러지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닌, 사회풍자와 재치있는 유머를 단순한 선으로 경쾌하게 표현, 관객들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든다.

필름에 직접 프린팅하는 등 난해하면서도 색다른 기법을 담아낸 작품도 애니메이션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독일과 영국 등에서 벌어진 풍부한 실험정신을 담아낸 ‘실험 애니메이션, 어제와 오늘’의 단편이 그들이다.

일본에도 저패니메이션과 맞먹는 독립 애니메이션이 있다고 외치는 쿠리 요지와 오카모토 타다나리 감독의 작품을 엄선한 ‘일본 단편 애니메이션’, 그리고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태동한 독립 애니메이터들의 주옥같은 작품을 모은 ‘한국 인디 애니 스페셜’이 환상적인 세계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