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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20010531. 구멍[채우승 개인전 관람평]

by PrintStudio86 2017. 7. 10.

20010531. 구멍 [채우승 개인전 관람평] 

20010531-0605 채우승 개인전

유대수/화가


갑자기 구멍이 생각났다. 후후 벽을 통째로 들어내다니. 그렇게 상황은 일시에 역전되고 말았다.


그날 그 때, 경원집 막걸리잔 위로 혁명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왜 갑자기 진지해졌을까? 아니, 진지한 척 똥폼을 잡았을까? 졸라 돈 없고 빽 없는 인생들 열 받는 세상에 살면서 그딴 낱말 쪼가리 몇 개에 비실비실 잘난 척 할 거라면 애초부터 우린 막혀있는 구멍이 아니었을까? 아니, 아예 존재도 없던 구멍이지 않았을까? 라는 식의 잔대가리를 굴려가며, 리오따르와 하버마스는 어느 술집에 앉아 지들 맘대로 세상을 씹어가며 싸웠을까 궁금해 했다. 지들이 무슨 세상 모두를 책임질 것도 아니었잖아, 안 그래? 그런데 이상한 건 이따위 서사나 담론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면서도 우리는 계속 서로의 정신과 의지를 탐닉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이겠지. 마구 애무당하고 싶어하는 마음들. 하하. 그 점이 못내 풀리지 않고 뒷덜미를 당긴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억압당하는 구멍은 뭐고 그 억압을 지워내고 남은, 못생긴 돌멩이 같은 구멍(이라고 지시당한)은 또 뭐야? 구멍은 뚫려 있다는 '사실'때문에 구멍인 거 아냐? 넘나든다고? 벽이 없는 구멍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겠지? 아무런 억압기제가 존재하지 않고도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럴까? 그럴 수 있다면 그걸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걸 아름답다고 불러야 되는가 이 말이야. 정교하고 빠른 이미지가 뭉툭하고 느려터진 이미지를 잡아먹는 시대에. 아름다운? 그거 웃기는 멘트일세.


아무튼 나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구멍을 강제로!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구멍은 결국 개구멍, 숨구멍, 바람구멍, 똥구멍 등의 잘 훈련된 지시의 영역을 건너뛰어 그 자체로 자유로운 의미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사실 그것이 못내 반가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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