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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19990901. 전북판화의 흐름에 대하여[미술세계]

by PrintStudio86 2017. 7. 10.

19990901. 전북판화의 흐름에 대하여

미술세계 1999년 9월호(통권 178호) *지역미술 특집-전북의 미술

유대수/화가, 서신갤러리 큐레이터


현대미술의 다양함 속에서 판화는 판화만이 지니는 다원성, 복수성, 대중성 등의 특성과 더불어 여타의 다른 예술 장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조형표현의 형식으로 더 이상 기존 회화의 복사나 아류라는 피상적 인식의 수준을 벗어나 이미 그 나름의 독자적인 미술적 위치를 차지하며 대중적이고 세련된 하나의 표현양식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국내에서도 7~80년대를 거치며 판화미술에 대한 인식의 대중적 확산과 함께 몇몇 대학에 판화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정이 생기면서 그 관심도가 높아지기 시작하여 일반인들의 발길을 미술시장으로 유도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타의 미술시장 일반이 그렇듯 서울 중심의 편중된 관심의 급증과 양적인 팽창 속에서 각 지방의 미술구조가 보여주는 판화에 대한 인식이나 보급은 아직도 미미한 실정인 것이 사실이다.


전북 지역에서 판화매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더불어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92년을 전후로 한다. 그 동안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꾸준히 판화작업을 지속해 온 이상조(현 전북대 교수), 정미경(작가, 정판화공방 운영) 등이 주축이 되어 현재의 전북판화가협회의 전신이랄 수 있는 '전주판화연구모임'을 결성하게 되는데, 그 이전 시기에 판화에 관련된 전시나 활동이 전혀 없었던 것만은 아니지만 -지금은 없어진 온다라미술관을 통해 '이철수판화전'이나 '중국수인목판전', '정미경판화전'등이 있었다.- 개인적인 판화작업의 활동과 성과를 벗어나 지역의 관심 있는 미술가들이 모여 조직적인 판화연구모임의 성격을 갖추고 출발하기로는 이 시점이 최초가 아닌가 싶다.


이후 전북 지역의 판화는 '전북판화가협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작품창작과 전시활동을 펼친다. 판화매체에 대한 이해와 작품 활동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던 전주에서의 1993년 첫번째 회원전을 시작으로, 매년 작가들의 독창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정기전은 물론 일반 대중들의 판화 인식을 확대시키고 좀 더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판화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생활 속의 판화 소품전'을 개최해 오고 있는 전북판화가협회는 그 동안 10여회에 걸친 전시들을 통해 나름의 성과와 연륜을 쌓아가고 있다.


이 외에도 전북도전에 판화분과의 신설, 백제예전의 판화전공 과목의 설치 등을 통해 전북 지역의 판화는 그 어느 때보다 양적, 질적 수준을 충분히 확보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성과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전북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판화공모전의 개최와 함께 최근에 들어서 대학에서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도 판화로 개인전을 여는 작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에서도 엿볼 수 있다.


97~98년 들어 김경아, 이아연, 김양희, 최희경 등의 판화개인전이 잇따르고 여기에 서울에서 판화를 전문으로 공부하고 내려온 여러 작가들(지용출, 유대수, 유경진 등)의 작품발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과 더불어 좀 더 광범위한 판화의 저변확대와 작가 양성을 위해 마련된 98년도의 전북판화공모전(전북판화가협회 주최)에 지역 작가, 학생들이 기대 이상의 참여율을 보이고 또한 작품수준이 별반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 등을 통해 그만큼 독자적인 판화작업을 소화해 내는 역량의 성숙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다.


판화매체를 주전공으로 하든 그렇지 않든, 현재 20여명에 이르는 작가들이 판화를 다루고 있고 잠재적인 작가층과 수요자들을 감안한다면 전북판화의 장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그러나 막연하게 해마다 전시가 열리고, 공모전이 있고, 몇몇 작가가 활동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판화는 다른 여타의 매체에 비해 접근하기 힘든 부분으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 공정의 복잡함이나 작품제작 과정에서 귀찮은(?) 노동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단은 판화의 매력에 이끌렸다가도 얼마 못가서 쉽게 포기해 버리고 마는 정도의 일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존의 판화작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나 기성 작가층에서 판화매체가 그다지 효율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기법의 활용도에서 두드러지는데, 주된 표현방식이 너무 한쪽에-주로 석판화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최근의 공모전을 통해 목판화-특히 소멸법 위주의-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이 상당수 보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무슨 유행처럼 보인다. 자신의 작업 내용에 알맞는 다양한 기술들을 섭취하고 사용한다기보다는 기법활용의 편리함에 맞춰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실제 그림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 모두가 그만그만하고 비슷비슷해지는 경향을 내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자칫 판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질적 표현의 세계를 놓치고, 평면적인 기술의 남용만을 가져다 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주변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재료상의 문제나 작업 진행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설비들을 개인적으로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점 등도 판화에 대한 접근을 미루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은 최근에 각 학교와 개인 작업실 등을 통해 조금씩 해결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미술의 전반적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제 기존의 작가층은 물론 판화공모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판화작업에 입문한 작가들을 포함하여 자신만의 개성 있는 어법으로 판화의 다양한 특질들을 선보이고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 나갈 때 전북판화의 왕성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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