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미술운동사
책임정리/전북민미협 편집실
이 글은 1980년을 기점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의 민족민중미술운동의 진행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수준으로 쓰여졌습니다. 뒤에 소개될 많은 참고자료에서 더 자세하고 많은 사실과 정보를 읽어낼 수 있을 것임을 기대하고 연대순에 의한 미술운동단체들의 활동사항들을 중심으로 정리, 편집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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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민중미술은 한국사회에서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이념과 대중 활동 및 그것을 추구하는 미술가 조직으로부터 발생한 예술운동 과정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에서 한국사회 현실을 형상화하는 창작방법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만의 독자적인 것이라고 여기진 않는다. 하지만 미술이 한 사회 안에서 나름의 자생력과 그 사회에 대한 예술적 응전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힘을 잣대로 헤아려 보자면 민중미술의 독자성이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물론 서구 예술방법의 잣대로 재면 그 창작방법이 리얼리즘이라는 사실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민중미술은 창작방법만을 뜻하는게 아니다. 그것은 한국사회 진보의 이념과 사회적 실천으로부터 발생한 포괄적 이념이자 미학이자 대중 속에서 숨쉬는 예술적 실천이다.1)
광주민주화운동과 미술운동
또 다른 의미에서 1980년대의 출발이라고 할 수도 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경험은 미술가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전체 민족민중운동에 중대한 분수령이 된다. 특히 미술운동에 있어서 이 광주항쟁은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다.
광주항쟁은 많은 청년미술가들을 일시에 저항아들로 만들어 놓았는데 역사적 진실을 확인함에 따르는 분노와 도덕적 각성, 정치적 각성과 미학․미술적 저항을 구체화해 나가게 됨으로서 감정적인 분노와 정치적 공포가 결합한 격렬하고 파괴적이라 할 수 있는 현란한 미술의 경향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기 시작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와는 달리 민중항쟁의 주체와 지배적인 적대세력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객관현실을 형상화하려는 작가들에 의한 전투성과 혁명성의 확보를 통하여 사실주의의 기초를 마련하면서 두 갈래의 미술가와 경향을 탄생시켜 놓았다.
1970년대 미술의 지배적 질서에 염증을 느끼던 청년미술가들은 공포와 고통 속에서 그 예술적 탈출구를 모색하였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광기어린 파괴적 조형실험이었다. 이것이 1970년대 현대주의 미술의 세례를 받고 있었던 상당수 청년미술가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 해체적 방법은 이들의 양식적 특징이다. 창작활동 이외의 다른 사회민주화 활동과 무관하였던 청년미술가들에게 정치적 저항이란 불가능했고 따라서 그 창작과정에 자신의 어떤 불안한 의식을 표출하는 수준에 머물렀는데 이게 바로 1981~1983년 동안에 이루어진 일련의 전시회2)에 나타나는 난폭한 형상들이다.
이런 관념적 격렬성 속에서 앞선 시기의 신경향 미술과 연결되는 조직적 고리는 1979년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이하 광자협)와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 동인이다. 이 시기 일정한 수준에서 현실을 반영하고자 했던 작가들로는 오윤, 노원희, 심정수, 김정헌, 최익균 등 외에도 여운, 이근표, 강대규, 손상기, 강희덕, 문영태, 박건, 신학철, 이상국, 권용현, 송창, 이명복, 조진호, 손기환, 황재형, 이철수, 박광수, 홍성민, 송만규, 정하수, 김봉준, 장진영, 이기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작가들은 그 주제의식과 방향, 소재의 구체성을 비롯하여 그 미의식은 물론,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의 정도와 수준, 그 세계관의 범주에 이르기까지 그 편차와 불균등성이 매우 극심했다. 이들의 상당수가 이후 전개되는 미술운동의 과정에서 하나의 진영으로 포괄되어 나갔으며 이러한 편차와 불균등성은 이후 진영 내부의 다양한 갈등요인으로 작용한다.3) 그 대응구도는 1983년 이후 미술문화주의의 활동과 소시민적 성격 및 비판적 리얼리즘과 자유민주주의적 개인주의의 문제이다.
* 현실동인/1969
오윤, 임세택, 오경환 등이 결성. 당국의 압력으로 전시회(서울신문회관 예정)는 무산되고 창립 취지문(김지하 작성)만이 남는다.
*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이하 광자협)
1979년 8월 광주에서 창립선언문을 준비하며 출발한다.-별첨/창립선언문 홍성담, 김산하, 강대규, 최열, 이영채 등이 모여 결성된 광자협은 이후 구체적으로 사회변혁운동과의 조직적 연대, 노동 및 노동현장에 결합하는 미술투쟁 대중활동을 중심으로 광주항쟁 기간 중의 가두미술 선전활동을 통하여 조직적 기틀을 마련한다. 제1회 야외작품전에 이어 판화강습, 시민미술학교의 설립(1983.8)을 통한 대중미술활동,4) 두 차례의 야외작품전과 연구서『한국근대사회미술론』(최열 대표집필)의 발간, 홍성담의 개인전과 판화달력 발간 등 활발한 미술 민중교육운동을 수행하다 1983년에 접어들어 소극장 일과놀이5)에 미술분과로 참가한다. 이 무렵에 학습을 위한 문건들을 소책자로 제작, 배포하였는데 “새로운 미술을 위하여”, “비판적 미술운동의 한계와 극복”, “민중미술의 방법적 모색” 등이 있다.
*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
1979년 광자협과 비슷한 시기에 참신하고도 굳건한 미술과 그 조형이념을 확보하는데 제일차적인 목표를 세우며 출발한다.-별첨/창립선언문 원동석, 성완경, 최민, 윤범모, 손장섭, 김경인, 주재환, 김정헌, 오수환, 김용태, 심정수, 오윤 등이 참여하여 결성된 현발은 1980년 11월에 가진 창립전6) 이후 1985년 민족미술인협의회가 결성될 때까지 5회에 걸친 정기전과 회원들의 개인전, 그룹전 등의 개최, 수차에 걸친 토론회 등을 통하여 현실 비판적 민중미술운동의 한축을 이룬다.
* 이하 연보로 대체
1982.10. 두렁 창립/김봉준, 이기연, 장진영, 김준호
임술년 구만구천구백구십이에서 전/서울 덕수미술관
1983. 7. 제1기 시민미술학교 개설 및 판화전(광주 가톨릭센터 미술관)
9. 목포 시민미술학교 및 판화전
10. 전북 땅 동인 결성/땅 동인전(전북지역미술운동사 참조)
11. 임술년전/서울 관훈미술관
1984. 2. 성남시민미술학교(성남 YMCA) 및 판화전
4. 부산시민미술학교(부산 YMCA) 및 판화전
이리시민미술학교(이리창인성당) 및 판화전
두렁 창립전/서울 경인미술관, 마산 전주 광주전/두렁 민속미술교실
6. 삶의 미술전/서울 관훈미술관,제3미술관,아랍문화회관
8. 해방40년 역사전/광주, 대구, 부산, 마산, 서울
9. 서울미술공동체 결성
11. 푸른깃발전/서울 한강미술관
12. 서울현대미술제운영위원회:'민중미술논의의 비평적 한계' 주제토론
1985. 2. 을축년 미술 대동잔치/서울 아랍미술관-서울미술공동체
4. 이리공단노동미술전/이리공단 사업장-땅
협의회 결성을 위한 준비위원회(김윤수,원동석,성완경,유홍준,김정헌,김용태,문영태,김봉준,홍성담,송만규,최민화,최열) 결성
7.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서울 아랍미술관
경찰:한국미술20대의힘전 전시봉쇄, 압수작가들 일부 즉심 회부.
민중미술탄압대책위원회 구성 항의농성
8. 민족미술대토론회/서울 아카데미하우스
민족미술협의회창립준비위원회 결성
11. 민족미술협의회 결성/서울 여의도 여성백인회관
12. 시각매체연구소 결성/광주
1986. 2 그림마당 민 개관(관장 민혜숙)/민미협
1987. 1. 전주 겨레공방(송만규,한경태,윤양금,이영진,박흥순) 결성
전주 들․바람․사람들 결성
5. 미술인 202인 '4.13 호헌조치' 반대선언 발표
이상 민족미술인협의회의 결성 시기까지의 상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후 여타의 지역에서도 끊임없이 미술운동단체가 만들어지고 당국의 탄압과 연행, 작품탈취가 자행되는 속에서도 기획전과 주제전, 민중지원연대사업 등 그 활동이 왕성하게 진행된다.
1988년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이하 민미련) 건준위가 결성되면서 기존의 미술운동 진영은 민미협과 민미련이라는 두 갈래의 큰 흐름을 보이게 되는데 민미련이 중심이 되어 제작한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가 1989년 평양축전에 보내지면서 홍성담이 간첩죄로 구속되고 여러 작가들이 수배를 받는 등 그 탄압이 극심해지는 가운데에서도 각 지역 단위 민미련을 결성하는 등 끊임없는 활동을 보인다.
1993년 정치정세의 변화와 전국적 차원의 민족미술운동 단체 건설의 당위성 제기 등의 조건에 힘입어 전국민미련의 해소와 함께 다시 한번 미술운동진영은 단일대오를 이루며 전국민족미술인연합(1995)이라는 이름아래 각 지역별(대체적으로 도 단위의) 민미협의 통합체를 건설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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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북지역 미술운동사
책임정리/전북민미협 사무국
80년대 살벌한 독재정권 아래에서 '미술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화가들은 미술을 무기로 이 땅의 민주화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즉 양심적인 작가라면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80년대 화가들은 거리에서 선전선동 활동-벽보, 깃발, 걸개, 판화운동 등-을 벌이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또 다른 일부는 전시장 중심의 창작활동을 통해 현실비판적 내용을 담아내기도 하였다.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공안당국의 강압적 탄압으로 지하화했고 몇 몇 작가들은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또한 전국적으로, 민미협(전시장미술 활용론-서구 이식미술 활용론)과 민미련(현장미술 활동론-민족 전통미술의 계승론)이라는 이름의 두 갈래로의 분파현상과 마찬가지로 전북지역에서도 들․바람․사람들, 겨레미술연구소 등의 두갈래 양상을 띠며 그 기틀을 형성한다.
80년 초 광자협, 현발 등 민중미술운동 조직의 출현을 시작으로 83년 전북지역에서도 '땅'동인이 조직된다.
* 땅/1983.10~
송만규, 윤양금, 이영진, 김복숙, 권옥경, 김용택, 안도현, 강태형, 정태한, 이재성 등이 동참한 “땅-이 바닥에 입술을 대고”라는 이름의 시와 그림전을 출발점으로 하여 이후 한경태, 박흥식 등이 합류한다. 전북지역에서 최초의 민중미술운동단체였다고 할 수 있으며, 곧바로 이리에서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이리공단의 노동자들과 관계를 맺고 한편으로 직장인이나 대학생들과도 관계를 확대하였다.
이 땅의 모든 문화가 비로소 제자리에 돌려져 삶과 노동의 밑거름이 되고 삶의 현장에서 생성된 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라 할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인 우리 모든 민중들의 모습이 인간다운 삶으로 그 인간성이 구원․회복되어 구체적인 삶의 희망이 구현될 때 비로소 우리 문화의 본연의 모습이 빛날 것이다. ......애매하고 막연한 인간주의나 폐쇄된 문화애호주의를 거부하며 이 시대의 진정한 소집단 문화운동의 주체들과 공동, 공통의 뜻을 같이하는 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7)
이와 같이 관념적 인간주의와 문화주의를 반대하고 현장성과 민중성을 지향하고자 하는 분명한 입장은 이들을 변혁운동으로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었다. 임실농민 고추싸움, 장계 소몰이 싸움 등 각종 민주세력과 연계한 선전선동활동을 하였으며 시민미술강좌, 대학미술패와 연계사업과 조직사업(특히 송만규는 서울, 부산, 광주 등지를 돌며)을 지원하였다.
* 전국미술운동 연합수련회/1984
1984년 7월 전주에 있는 소극장 녹두골에서 미술운동가를 위한 연합수련회가 개최되었다. 이 수련회는 주로 학생미술운동 동아리를 중심으로 꾸려졌는데 서울과 전북, 충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학생 30여 명이 참가하였다. 6일간에 걸친 이 수련회는 학습과 토론, 창작, 놀이, 노래 등의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이 수련회에서 배포된 “84미술론”이란 소책자를 통하여 많은 문제제기와 토론을 진행하고 이전의 어떤 미술론보다도 앞선 선진적인 미술운동의 방침을 제시하게 된다. 수련회는 이외에도 선진적인 미술활동에 대한 인식일반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으며, 서로간의 연대활동을 가능케 할 기초로서 활동가들을 맺어 주는 성과를 낳았다.
* 전북지역 청년미술공동체/1988~
전북지역에 있어서 대학 미술동아리의 형성과 발전은 초기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한계를 박차고 조직적이고 목적의식적인 미술학생운동으로 나아감으로부터 비롯되는데 대체적으로 1986년을 경과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땅 동인이 형성되면서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생 몇몇이 학내 시각매체의 요구를 구체화하였고 또한 전북대학교에서는 이미 조직되어 있었던 미학연구회 ‘푸른나무’에 1985년 무렵 미술전공학생이 결합하면서 시각매체활동을 수행한 것이 전북지역 학생미술운동의 전사였다. 이들의 전통을 이은 것이 각 대학의 학내 미술운동조직이라 할 수 있으며, 전주대에서는 1986년 ‘쥐불’이, 우석대의 ‘그림사랑’은 1987년, 군산대의 ‘두레’는 1988년에 이르러 조직형식을 제대로 갖추었다. 전북지역 학생미술운동의 확립에 의미 있는 계기로는 1984년에 열린 전국미술운동 연합수련회와 1986년 전북대에서 벌어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논쟁을 들 수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미술이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었는데 이것은 전북대 ‘푸른나무’의 이론적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후 1987년 겨레미술연구소와의 결합을 계기로 1988년 8월에 전북청년미술공동체(이하 전미공)가 조직되는데 이것은 7월에 가진 겨레연 주관의 전북 청년미술가 수련회에서 각 대학 활동가들 사이의 토론이 이루어지고 개별적이고 분산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연대활동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데 합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들이 밝힌 사업방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단순집합적 성격을 극복하여 집단적 실천작업
둘째, 각 구조 속에서 정치적 의식각성과 집단주제토론을 통한 예술론 교양
셋째, 매시기 선전선동 시각매체 작업8)
* 겨레미술연구소/1987~
'땅'동인의 일부와 학생미술활동가가 참여하고 전업적 활동가 조직체계를 확립하면서 현장에 투신하였던 이전의 활동가들까지 포괄하는 전북지역 미술운동의 단위가 된다. 나아가 소극장 '녹두골'을 중심으로 모인 연행예술운동 역량 및 문학활동가들과 연대하여 전북지역 민중문화운동협의체 준비위원회를 꾸리는 데까지 발전했다. 1988년 전주 시내에 사무실을 갖추면서 비약적인 역량의 강화를 이루고 창작위원회, 유통위원회와 총무, 대표 등의 조직체계를 꾸림으로써 완결된 전업적 활동가조직을 완성하였다. 송만규, 조재권, 김동욱, 노성래, 박흥식, 신석호, 김은희, 최은소, 김은준 등이 참여하여 6월항쟁 선전물 제작, 이석규열사 장례식 걸개, 전북지역 민주세력 대동한마당 걸개, 87년 시민판화 거리전, 전북지역 청년미술한마당 주최, 민족해방운동사 걸개 제작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88년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건설에 이른다.
88~9년 송만규 수배와 탄압으로 비공개 활동으로 전환하였으며 91년 전국자주미술전(전북대 걸개그림전)에 참여하고 이후 구속 회원 석방투쟁을 1년 넘게 지속하였다. 92년 사회현실적 변화와 발맞추어 창작중심의 전문미술인 모임을 지향하며 발전적 해체를 하였고 이후 가보세의 출범을 보게 된다.
* 들․바람․사람들/1987~
87년 1월 창립총회를 기점으로 현장에서의 직접적 선전선동미술 사업과는 달리 전시장 중심의 창작활동을 통한 현실비판적 창작과 미학토론을 주요활동으로 하였다.-별첨/제4회 정기전 서문
김맹호, 김선태, 김인철, 김진술, 김희경, 남택운, 박종수, 방정엽, 서재붕, 이기홍, 임옥상, 진동규 등이 초기 활동을 하였고 이후 장은숙, 정채열, 유대수 등이 참여한다. 1988년 5월 창립전을 시작으로 93년까지 5차에 걸친 회원전과 87년 이래로 거의 두세 달 간격의 좌담․토론회9)를 20여 차례 가짐으로서 질 높은 창작의 고취는 물론 미학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노력한다. 92년 이후 주요 회원의 상경으로 휴면을 하게 되며 94년 동학백주년기념사업을 계기로 지역미술운동 조직 간의 통합을 이루게 된다.
* 온다라미술관/1987~
86년 그림마당 민(전국민미협)에 이어 지역에서는 최초의 미술문화공간으로 문을 연 화랑이었다. '시대와 역사가 요구하는 변혁에 동참하고 민족미술진영이 80년대를 통해 이룬 성과를 수용하며 대중과 접목시키기 위하여'라는 취지아래 신학철 초대전을 시작으로 임옥상의 아프리카현대사, 이철수 판화전, 북녘의 산하전 등 82회의 전시와 한국미술사 강좌(이태호), 미학강좌(황지우), 민족미술 강좌와 25여회의 강연, 그 외의 영화제나 판화교실 등을 기획했으며 올바른 미술문화의 정착과 확산을 실현하려 노력하였다.
* 가보세/1993~
겨레미술연구소의 후신으로 정치, 사회 현실의 변화로 인하여 창작중심의 활동을 목적으로 창립한다. 송만규, 윤양금, 이종연, 김채, 한경태, 노성래, 고현, 진창윤, 정종화 등을 주축으로 '군산항에서 본 역사전'을 시작으로 격주모임을 하는 등 의욕적인 출발을 보였다. 94년 동학100주년 기념사업에 전북지역 민민진영 미술인들과 함께 참여하였고 이는 전북지역 민족미술인의 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 그림마을/1994~
시민미술운동의 확대를 목적으로 양선형, 이수진 외 10여명으로 출범하였다. 판화강습, 유화강습, 미학연구, 예술기행, 공동창작, 걸개제작 등 미술 대중화의 확산에 힘쓰고 있다.
* 전북민족미술인협의회/1995~
1994년 동학100주년 기념사업을 치루는 과정에서 전북지역 민족미술인(단체) 진영의 통합의 당위성이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그 해 6월 25일 1차 모임을 시작으로 4차례에 걸친 준비모임을 거쳐 95년 1월 7일 나종희, 송만규, 윤양금, 남택운, 최춘근, 김맹호, 지용출, 김미경, 진창윤, 유대수, 이근수, 양선형, 고 현, 안은용, 김영옥, 허길영, 이기홍, 김은주, 최영석 등을 주축으로 들․바람․사람들, 가보세, 그림마을(일부) 등의 단체가 통합하여 출범하였다.
90년대의 변화된 현실 속에서 창작의 진정성을 되찾고 진보적 미술전문인을 규합하여 지역미술을 올바르게 이끌어감을 그 목적으로 하여 그 해 4월 창립전을 기점으로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으며 이후 지역의 젊은 작가들의 꾸준한 관심과 참여로 지역미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활동상을 보여준다.-별첨/활동연혁
2. 전북민족미술인협의회의 위상과 전망
회칙에 보면 '본 회는 전북지역내의 창조적이고 건강한 진보적 민족미술문화를 발전 보급시키기 위해 다양한 미술활동을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간 진보적 미술인을 규합,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는 사업을 펼쳐왔다.
그러나 창작중심의 조직운영에서 오는 무기력, 미술인 규합을 위한(같은 회원이면서도 운동의 대상이 되는, 참여도가 낮은 회원으로부터 오는 자괴감) 무한적 인내의 요구로 평상시 적극적이던 회원들마저도 지치는 상황에 이르러 이를 타개하기 위한 확실한 전미협의 전망학습이 요구되고 있다.
우선 전일적인 진보적 회원 구성이 아님을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인 회원은 인내심을 갖고 여타의 회원을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또한 창작중심의 활동에서 오는 대중과의 소외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오늘날 민족미술 진영은 정치 사회 현실의 변화에 따라 전시장(개인 창작) 중심으로 또는 제도권으로의 진입을 정책기조로 삼아왔다. 그로 인해 대중과의 소통의 폭이 협소해졌다. 이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공미술운동(공간 확보-공공장소의 선점)이 민족미술운동의 또 다른 축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전국적 차원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전북지역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대중과의 소통의 길을 확보하지 못하면 민족미술운동은 결국 '사조'운동(미술의 양식적 측면에 한정된) 에 머무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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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1. 들․바람․사람들 제4차 정기전 서문, 1991
현실의 삶과 그 실천으로서의 미술
최근 우리 학계와 미술계 일각에 대두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지켜보면 지난 시대 일본제국주의와 해방 이후 미국을 통하여 서구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근대화 과정을 겪고 그와 아울러 모더니즘 문화를 수용한 지난 시대의 '파행적인 문화수용의 전철'을 떠올리게 됩니다. 근대적 기반이 허약한 우리는 70년대에 '한국적 미감의 현대화'라는 이슈를 내걸은 모더니즘이 다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휘말리게 됨으로써 외세추종이란 혐의를 벗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로 발원된 미국은 서구보다도 현대화의 갈등이 심각하지 않은 '신대륙'적인 특수성으로 인하여 '융합주의' 내지 '절충주의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무튼 미국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당히 국지적인 성격을 내포한 문화현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면에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 유럽식 아방가르드의 미국적 부활이라는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정신의 최후의 퇴폐적인 개화로 간주됩니다. 사실상, 포스트모더니즘 논리란, 변혁의 전망이 막혀버린 서구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며 그 문화적 다원론은 제국주의의 새로운 시장개척에 나서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인 우리 현실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기반으로 삼는 대중문화가 반 해방적 성격을 갖기 쉬우며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디까지나 서구자본주의 세계의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진정한 '모더니즘 이후'는 모던 포스트모던이라는 서구의 패러다임에 지나치게 현혹되지 말고,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의 역사와 현실의 올바른 인식에 기초한 주체적인 시각으로 재무장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술 운동 조직이 우리 사회 전체 변혁운동의 한 부문으로써 올바르게 자리 잡으려면 좀 더 치밀한 문화 예술운동의 바람직한 이론과 실천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이 땅의 현실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진솔한 삶의 표현과 올바른 지향점을 체득해야 합니다. 특히, 리얼리즘의 본질을 획득하려면 미술에서 식상한 내용과 형식은 예술이 주는 신성함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내용 못지않게 형식적 기량의 중요성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단지 리얼리즘의 방법론과 미학에 대한 학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학습의 과정과 계획이 더욱 더 현실에 천착되어 자신의 세계관을 확인하고 이를 통하여 조직(창작)하는 작업과 함께 치밀한 준비와 끊임없는 작가의 자기 혁신과정이 수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과 함께 들․바람․사람들은 안일한 관념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객관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더불어 한 사회의 구조와 관련된 모순의 판별 그 본질적인 요인을 통찰해 내고, 예술을 통한 인간 존재의 확인 및 형상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되묻고자 하는 치열한 작가정신과 함께 인간의 구체적 삶과 관여하고 좀 더 인간다운 삶의 구조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해 나갈 것입니다.
전주지방은 미술의 보수적 풍토에다 대학의 양적 증가가 빚어내는 모더니즘의 재생산구조가 바람직하지 않게 자리 잡고 있는 지금의 상황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최소한 미술은 시대상황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과 함께 농촌문화를 배경으로 한 지역미술의 산적한 과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우선 우리들이 서 있는 땅의 지난한 역사와 함께 건강한 정서를 부단히 익히며 지역미술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진보적인 지역 작가들의 규합과 함께 대중적 미술 운동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면서 사회변혁의 일꾼으로써 일익을 담당할 것입니다.
들․바람․사람들 일동
별첨 2. 전북민족미술인협의회 활동연혁
1995. 1 창립총회/전주 기린예원
2 겨울수련회/발제:조직사업의 전개 및 미술인의 위치, 송만규
3 전국민족미술인연합 창립전 참가/송만규,나종희,김맹호,지용출,진창윤,김병선
4 창립전 '황토의 역사'/전주 예술회관
7 토론모임 '일끼' 창립
8 해방50주년 미술한마당 '함께 가는 역사, 함께 여는 통일'전/전동성당 외벽
9 광주통일미술제 참가
10 해방50년 역사전 참가/서울 예술의 전당
들꽃전/전주 객사
1996. 4 민족미술전 참가/서울 시립미술관
6 제1회 환경전 '먹이사슬'전/전주 객사
8 여름수련회/완주 동상
전북연합 주최 통일맞이 글,그리기대회 후원
12 조국의 산하전 참가/서울 시립미술관
1997. 3 겨울수련회/발제:상류문화 하류문화, 남택운
온․청년미술연구소 창립
6 제2회 정기전 '상실과 부활'/전주 예술회관
10 제2회 환경전 '인간과 환경'/전주 예술회관
별첨 3.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창립 선언문
미술의 건강성 회복을 위하여
작가들은 발견자여야 한다. 이 땅과 이 시대의 상황을 보는 자들이어야 한다. 상황이 모순과 비리에 가득 차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 집중적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양심의 명령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술은 줄기차게 양심을 거부해 왔다. 1) 쾌락적 탐미, 2) 복고적 허영, 3) 회고적 감상, 4) 새로운 조형에의 광신 따위로 사회의 인간적 진실을 버리고 조형적 자율과 사치와 허영의 아름다움이 갖는 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인간으로서 작가는 허망한 것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의 구체성과 항상 접근해 있어야 한다.
작품의 내용은 그 접근의 증언과 발언이어야 한다. 미술이란 전달함이 그 존재방식의 본질이라면 증언과 발언의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사회의 비리에 던져지는 도전장이 되리라.
형식은 자유의 명제아래 상쇄되어야 한다. 어떤 획일화의 형식적 규제도 배제돼야 한다.
이 시대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눌려있는 참담한 시대이다. 절대다수의 인간들은 모든 문화적인 것과 먼 거리에서 단지 생업에만 충실한 동물적 상태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 상황에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인간존엄을 향한 고귀한 노력을 먼저 작가자신의 반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시대의 모순을 유발케 하는 최악에 우리는 힘차게 접근하여 이 시대가 명령하는 양심으로서 인간의 존엄함에 기여할 것을 우리의 사랑법과 더불어 선언하는 바이다.
1979.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별첨 4. 현실과 발언 창립 선언문
삶의 현실과 미술로서의 발언
우리는 오늘날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기존 미술 형태에 대하여 커다란 불만과 회의를 품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기 나름의 모순에 빠져 방황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의 자각은 우리들로 하여금 미술이란 진실로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미술가에게 주어진 사명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다해 나갈 것인가 등등의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물음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하고 있으며 새로운 방향을 찾아 보려는 의욕을 다지게 합니다.
돌아보건대, 기존의 미술은 보수적이고 전통 있는 것이든,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것이든, 유한층의 속물적 취향에 아첨하고 있거나 또는 밖으로부터 예술공간을 차단하여 고답적인 관념의 유희를 고집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와 이웃의 현실을 소외 격리시켜 왔고, 심지어는 고립된 개인의 내면적 진실조차 제대로 발견하지 못해 왔습니다. 그리고 소위 화단이라는 것은 예술적 이념이나 성실성과는 거리가 먼 이권과 세력다툼으로 어지럽혀져왔으며, 많은 미술인들은 이러한 파벌싸움에 알게 모르게 가담함으로써 스스로를 욕되게 하고, 미술교육을 포함한 전반적 미술 풍토를 오염시키는 데 한몫을 거들어 왔습니다.
우리들 자신도 대부분 이제까지 각자 외롭게 고민하는 것만이 최선의 자세인 듯 생각해 왔으며, 동료들과의 만남에서까지 다만 편의적이고 습관적인 데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공동적인 문제해결과 발전의 가능성을 포기해 버리려 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해 보자는 것이 여기에 함께 모인 첫번째 의의입니다. 나아가 미술의 참되고 적극적인 기능을 회복하고 참신하고도 굳건한 조형이념을 형성하기 위한 공동의 작업과 이론화를 도모하자는 것이 우리의 원대한 목표가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와 이론가를 포함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가 기탄없이 대화를 나누어 의식의 심화와 연대감을 조성함으로써 새 시대를 향한 예술의 전개에 창조적인 역할을 발휘하겠다는 뜻으로 우리는 이 모임의 의지를 다지고자 합니다.
우리의 모임에서 내세우는 '현실'과 '발언'이라는 명제는 우리가 앞으로 모색해야 할 방향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물음을 함축하고 있다고 봅니다.
1. 현실이란 무엇인가? 미술가에 있어서 현실은 예술 내부적 수렴으로 끝나는가, 혹은 예술 외부적 충전의 절실함으로 확대되는가? 이 문제로부터 현실의 의미에 대한 재검토 및 미술가의 의식과 현실의 만남의 문제.
2. 현실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 현실인식의 각도와 비판의식의 심화, 자기에 뿌리내리고 있는 현실의 통찰로부터 이웃의 현실, 시대적 현실, 장소적 현실과의 관계, 소외된 인간의 회복 및 미래의 긍정적 현실에 대한 희망.
3. 발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발언은 어떻게 이뤄지는가?누가 발언자이며, 무엇을 향한 발언인가?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발언인가? 발언자와 그 발언을 수용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4. 발언의 방식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어디서, 어떤 효율성의 기대아래 이뤄져야 하는가? 발언 방식의 창의성, 기존의 표현 및 수용방식의 비판적 극복, 현실과 발언간의 적합성과 상호작용.
이러한 물음들의 '현실과 발언'이라는 명제 안에서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전제아래, 우리의 모임은 보다 폭넒은 대화를 통해 내실을 다지면서 지속적인 작업과 이론을 통해 각자의 창의성이 모아져 공동적 이념의 형성으로 발전하리라고 믿습니다.
이와같은 취지에 기꺼이 찬동하는 동인들의 모임을 만들고자 합니다.
1979년 12월 '현실과 발언' 발기인 일동
참고자료 목록(책/지은이․엮은이/연도/발행처)
한국현대미술운동사/최열/1991/돌베개
민중미술15년 1980~1994/최열,최태만/1994/삶과꿈
민족미술의 논리와 전망/원동석/1985/풀빛
한국현대미술의 반성/민족미술협의회 편/1990/한겨례
현실과 발언/현실과 발언 편/1985/열화당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유홍준/1987/열화당
미술운동/시각매체연구소/1988/공동체
민중미술을 향하여/현실과 발언 편/1990/과학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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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민족미술인협의회 소개
1999. 8. 20 사무국장 진창윤
전북민족미술인협의회(이하 전북민미협)는 80년대 현장미술로부터 창작중심으로의 기치를 내걸고 95년 그 동안 전북지역에서 활동해 오던 미술운동 소모임 그룹들인 <들 바람 사람들>, <가보세>, <그림마을>등과 여타의 관심있는 미술인들이 모여 '진보적 민족미술을 통한 지역문화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하였다.
95년 창립전-황토의 역사전을 필두로 꾸준히 회원정기전을 가진 것은 물론 지역의 젊은 미술가들을 포함하는 대규모 기획전 '인간과 환경전', '정육면체속의 미술전'등을 자체 기획,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매년 '온고을 그림꾼'이라는 소식지를 발행하여 회원들의 작업세계와 지역미술의 관심사 등을 다루고 토론모임-일끼, 온청년미술연구소 등의 운영을 통해 중심적인 창작미학의 연구, 토론을 일상화하고 개인창작과 집단창작과의 관계 속에서 전북지역 특유의 미술문화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급변하는 정치현실 속에서 목적의식적인 지향점이 모호해지고 있으며, 미술창작의 방법론적 자율성과 회원 각자의 자의적 미학을 인정하게 되면서 현 시점에서의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부분도 있는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전북지역의 미술은 중앙중심의 무비판적인 외형적 아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통신의 사각지대, 즉 지역적 변방에 위차한 자기만족적 미술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반성적 노력조차 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곧 한 개인 차원의 노력 뿐만이 아니라 집단적 미술운동의 필요성을 요구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 2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전북민미협은 초기에 비해 젊은 작가들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80년대와 90년대라는, 우리 사회와 미술운동의 변화의 지점들에 대한 상이한 이해 속에서 갈등과 함께 진지한 반성적 성찰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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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민중미술15년, 최열․최태만 엮음, 삶과꿈, 1994
2) 횡단전(1980~83), 한국현대미술의 모색전(1982), 젊은 의식전(1982,1983), 상식 감수성 또는 예감전(1982), 의식의 정직성 그 소리전(1982), 한국현대미술 1980년대 조망전(1982), 실천그룹전(1982~85), 시대정신전(1983~85), 표상전(1983,1984), 에스파 동인전(1983), 인간 그 어디에전(1983), 접근 가늠 도달전(1983), 토해내기전(1984)등등의 것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난폭하고 추상적이며 이해하기 곤란한 그야말로 무정부적인 조형유희의 박물관같은 분위기였다.
3) 이것은 1983년 이후 구체적 실천으로서 민중미술운동과 미술대중화 및 민족미술유산 계승과 혁신의 문제, 1985년 이후 미술가들의 목적의식적인 조직화 문제, 1987년 이후 변혁미술운동의 정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매우 복잡한 모습으로 현상화하게 된다.
4) 이후 목포나 전주, 이리 등지로 확산된다.
5) 1980년대 광주지역 문화운동의 출발을 알렸던 단체 일과놀이는 다음해 1984년 12월에 결성된 광주민중문화연구회의 전신이었다.
6) 서울 동산방화랑/김건희, 신경호, 심정수, 김정헌, 오윤, 민정기, 백수남, 성완경, 임옥상, 김용태, 노원희, 주재환, 손장섭, 원동석, 윤범모, 최민 등 참여
7) 땅, “땅 모음전에 부쳐”, 1983
8) 오월미술전 준비위원회, ‘회의기록’, 1988
9) 지면상 토론회 주제만을 연대순으로 적는다. 87.1 전북화단의 형성과 전망(박종수), 대학 미술교육의 현실과 반성(임옥상) 87.3 미술교육의 문제와 새로운 방향 모색(김진술) 87.6 현대미술의 감상(임옥상) 87.8 미술그룹의 반성과 과제, 들․바람․사람들의 현 좌표와 진로 87.10 지방미술의 한계와 발전을 위한 모색(김인철) 87.12 한국 근대미술의 재조명 88.2 전북미술 어떻게 볼 것인가 88.4 창립전에 관한 토의 88.8 전위미술의 한계(남택운) 88.12 주제전 설정 및 토의 89. 2 순창군 팔덕면 덕진마을 2차방문-슬라이드 상영 89.8 리얼리즘 미술의 탐구(김선태) 90.3 80년 미술(이기홍) 90.8 주제전에 관한 좌담회(천담분교) 91.8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성과 전개(김선태)/이상 들바람사람들 제4차 정기전-1991- 카탈로그에 수록된 연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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