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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20000401. 이런 미술관, 필요없다

by PrintStudio86 2017. 7. 10.

20000401. 이런 미술관, 필요없다

??? 문화저널 ?호 시평 (2000년 3월 부지 확정 소식 기준으로 글 작성일을 유추함)

유대수/화가, 서신갤러리 큐레이터


'잘못 지어지면 안 지은 것만 못하다.' 이 말은 미술관 건립에 대한 여러가지 조건들이 아직은 구체적으로 가시화되기 전인 작년 8월, 문화저널에 실린 미술관 특집기사의 머리제목이다. 당연한 얘기다. 대충 주먹구구식으로 지을거면 뭐하러 짓느냐고. 아예 안 짓는 게 백번 낫지. 그런 말일게다. 기왕 할려면 진짜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얘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제목, 누가 뽑았는지 몰라도 앞으로 자주 써먹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대로 두고 보자면 차라리 안 지은 것만 못해서 결국 두 손 들고 나자빠질 그런 미술관을 떠안게 생겼으니 하는 말이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그럼 그렇지. 혹시나 하던 우려는 역시나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미술관은 그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대해 제대로 브리핑 받을 새도 없이 그들만의 탁자 위에서 이리 저리 채이다가 어느 순간 애물단지가 되어 가뜩이나 비좁은 저쪽 어디쯤 선반위에 팽개쳐지고 말았다. 미술관이라는 게 결코 그들 몇몇의 공치사를 위한 흥행물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문화는 상호적이다. 지속적으로 간섭하고 침투하고 호환되어야 비로소 문화가 된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자기 멋대로 즐기고 유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문화가 되지는 않는다. 동의하든 반발하든, 어떤 의미에서든 그것을 공유하는 상대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미술관은 중요한 문화적 자산임에 틀림없다. 아니 꼭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화적으로 재고의 가치가 없는 미술관을 뭐하러 지을 것이며 또 애써 유지할 필요가 과연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북도의 미술관 건립 확정과 부지 선정 등 진행 과정을 가만히 보자면 바로 그 상대자가 없다. 시민/도민의 의사를 물어 온 적은 물론 없거니와 그래도 소위 그 방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미술 종사자들에게 조차도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미술관은 그야말로 비문화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술관은 단순한 '건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정치인들의 치적용, 선심용 하사품이 되어 버렸다. 관광지 한켠에 폼 잡고 앉아 있을 휴게실이 되어 버렸다. 우리 돈으로 우리 집을 짓는데도 우리의 의사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집장사의 건축공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미술관이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말 나온 김에 몇 가지 떠들어 보겠다. 왜 하필 모악산 등산로 입구인가? 짐작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관이 무슨 여흥을 즐기는 놀이터인줄 아는 모양인데 과천 현대미술관이 그렇게 얻어터지는 꼴을 보면서 또 그 전철을 밟겠다는 건가? 전주시에 문화시설이 너무 편중되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서 완주군에 넘겼다고? 남들이(국내의 미술관/박물관들이) 최소 3천평 이상은 되는데 우리도 뒤질 수 없으니까 넓은 땅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미술관 부지 선정의 이유가 고작 그런 것이었단 말인가. 그리고 시나 도에서 조차도 운영과 관리가 버거워 난색을 표하며 서로 등떠밀은 판에 완주군이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는 건가?


또 있다. 일반적인 경우 미술관 건립 계획이 확정되면 전반적인 기능과 성격, 운영시스템을 수립할 준비기구가 만들어지는 게 상식이다. 당연한 절차 아닌가? 총체적인 마스터플랜과 그것을 합리적으로 추진할 주체도 없이 어떻게 건물만 덩그러니 짓자는 것인가. 듣자하니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생각이 전혀 없단다.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알아서 다 처리하겠다는 얘기 아닌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추진위가 구성되지 않으니 당연하게도 미술관 종사자(관장이나 학예관)를 미리 선발할리 만무하다. 미술관의 성격 규정이나 설계, 운영 방침 등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일 수밖에 없는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이 또 가관이다. 건물을 지을 기간 동안에 지출될 인건비가 아깝다는 것이다. 그때 가서, 건물 완공 즈음에 임명해도 안 늦을 거라고 우기는 데야 정말 할 말이 없다.


소장품은 어떤가? 당연히 계획이 없을 수밖에 없다. 마스터플랜이 없고, 추진위가 없는데 소장품 얘기를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도 듣자하니 그때그때 몇몇에게 자문을 구해서 처리할 생각이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미술관의 질은 소장품이 결정한다. 그 소장품의 최선의 질을 위해 연구가 필요하고 그래서 학예사가 존재한다. 지역의 특성에 맞고 규모에 합당한 미술관의 질의 확보를 위해 다시 한 번 마스터플랜이 필요하고 추진 주체의 확고한 문화적 신념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공청회 한번 하자니까 괜히 말만 많고, 시끄럽고, 귀찮고, 진행이 늦어질까봐 안한다고? 이 정도면 이미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차라리 안 지은 것만도 못할까봐 심히 우려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미술관 건립에 관련된 몇 가지 문제들을 들추다 보면 도내 미술인들 스스로의 관심과 애정이 부족했음을 절감한다. 심지어는 아직도 미술인들 중의 일부는 일반의 전시장(예컨대 기존의 예술회관이나 동물원 옆에 신설되는 소리의 전당 전시장 같은 경우)과 공립미술관의 기능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축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작년 가을부터 미술관 건립 추진을 위한 도내 미술인들의 대규모 전시도 있었고, 전문가 간담회를 치루기도 하고, 지면을 통하여 미술관 건립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는 등 여기저기서 많은 힘을 보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관 주도의 일방적인 미술관 정책이 진행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단순히 미술관에 국한된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각 문화예술 장르의 구석 구석에서 흔히 발견되는 모순과 비합리성과 배타적 관료주의의 문제인 것이다. 그야말로 상식에 속하는 절차와 방법을 무시하고, 당연히 제시되고 조율되어야 할 합리적 대안들을 도외시해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잘못 지으면 안 지은 것만 못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몇년 늦어지면 또 어떤가. 기왕에 할거면 제발 제대로 한번 해 보자.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하자. 지금 이런 식으로 만드는 미술관, 나는 필요없다.

???... 문화저널 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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