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811. 최정인개인전에 붙여
19990811-0820. 담갤러리
유대수/작가, 서신갤러리 큐레이터
작업실 한 귀퉁이에서 무언가 꼼지락거린다. 별로 크다고 할 수 없는 화분에 파 몇 개를 그려놓았다. 그것이 조금씩 자란다. 또 있다. 그 옆에, 남편의 안경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젖병, 누구의 것인지 불분명한, 그러나 확실히 살아있는 것만은 분명한 붉은 귀, 때를 밀기 위해 벌거벗은 여자들, 이미 알 것 다 안다는듯한 표정의 등을 가진 아줌마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런 것들이, 그러니까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내 안에서 이미 상투화되어 버린 일상이, 채 의식하지 못한 의식이, 원대하고 성공적인 삶이나 쓰레기가 담긴 규격봉투처럼 한없이 정치적인 제도의 속물화와는 꽤 멀리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홈비디오의 투명한 흔들림만큼이나 두서없이 꼼지락거린다.
마치 일기를 쓰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휙휙 지나가는 삶의 일상을 말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히 기록하고 있는 그의 화면 안에는 일견 훌륭한 미술이 되기 위한 어떤 종류의 장치라든가 사회적 담론을 가장한 위태한 끼어들기라든가 여성이니까 어떻고, 여성으로서 어떻다라는 식의 냉정하고 날카로운 공격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 곳에는 거대한 욕망이나 잘 단련된 제도나 허위의 스펙타클같은 것들과는 별 상관없이도 그저 살아지는 주변부의 자잘한 파편들이 그만그만하게 놓여져 있다. 그래, 이게 사는거지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상의 채집-의 과정-이 모두 무기력하거나 널널하다는 얘기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식의 미술/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고귀해야만 하고 경건해야만 한다고 폼잡는 어떤 것들에 대하여 더 진지하고, 더 근원적인 반성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것들-폼잡는 것들-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되찾아 가는 즐거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텅빈 화면 속에서 슬그머니 돌아보는 그녀의 눈빛이 말한다. 어서 가. 너는 이제 자유야.
무엇이 '진실'인가? 속도의 시대, 세련된 권력과 다층위의 문화믹싱, 하이 테크노, 그 속에서, 이 느려터진 로우 테크노(?)의 주관적 아카이브는 어떤 유효함을 가지는가? 그것은 거울이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뒷배경을 보고, 관계를 설정하고, 또 그 관계를 해부하는, 드러내기의 연장이다. 그는 그렇게 자기 주변으로부터 하나씩 드러내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나와 거울 밖의 타자와의 관계의 드러냄을 통해 그는 '진실'이라는 정체성의 감성적인 다큐드라마를 구성한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진실'에 관련한 기호와 표상들을 끄집어내고, 쌓아간다. 그래서 채 편집되지 않은 NG필름이 간혹 눈에 뜨인대도 어쨌든 그의 '진실'의 축적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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