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6-소리전당 소식지 12월호 수록용
예술꽃이 만발한 마당 넓은 집, 소리전당 14년의 향기
정리1) / 유대수 (사)문화연구창 대표, 전 소리전당 전시기획자
■ 10년의 약속, 14년의 실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지역 창작예술의 산실이며, 이 땅의 모든 예술인과 대중을 잇는 가교입니다. 전라북도 문화와 예술의 든든한 동반자입니다.”
지난 2011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하 소리전당) 개관 10주년을 맞아 발간한 <소리 10년 예술 10년>의 머리글 첫 대목이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소리전당은 “예술가와 대중을 잇는 가교이자 동반자”로서 흔들림 없는 길을 가고 있다. “문화의 혼(魂)이 생생하게 살아 뛰는 예술의 한마당”이 되겠다는 약속 또한 성실하게 지켜내고 있다.
소리전당은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아트센터이자 랜드마크이다. 소리전당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여는 한국 공연장 개척의 선두이자, 2000년 이후 전국에 크고 작은 공연장 60여 개가 건립되는 단초가 되었던 상징성을 지닌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소리전당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건립되면서도 지역명칭이 들어가지 않은 유일한 공연장이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선진 시스템의 민간위탁 운영체계를 정착시켰다.
전문가에 의한 지속경영 패러다임의 구축은 국내 최초이자 빼놓을 수 없는 소리전당의 성과다. 전라북도처럼 취약한 지방 재정의 한계 속에서 지금과 같은 지원 구조를 바탕으로 민간위탁 체제의 전문경영이 14년여에 이르렀음은 결국 복합아트센터 경영에 있어 뉴 패러다임의 안정화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소리전당은 개관 10년을 맞아 구체적인 미래비전을 선포한 바 있다. 미래 10년의 키워드이자 핵심가치를 컬테인먼트(Cultainment/Culture + Entertainment)로 삼았다. ‘문화의 체질화, 예술의 생활화’라는 슬로건 아래 ‘예술을 통한 지역감성의 고급화(Sophistication)’, ‘전문역량의 격상을 통한 창의화(Originality)’, ‘문예자원의 균점을 통한 확장화(Reach-out)’, ‘지역문화의 창달을 통한 개성화(Indigenization)’를 실천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전북의 상징인 소리가 있고, 소리의 본고장인 전북이야말로 미래 소리산업의 시발점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비전의 제시와 함께 다져온 소리전당 예술경영의 풍성한 성과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 전통문화는 물론 국내의 다양한 예술실험들, 세계 유수의 공연예술 작품들이 소리전당의 지난 14년 역사와 함께 했다. 연간 500여건에 이르는 공연과 40만 명을 넘나드는 관람객이 소리전당의 구석구석을 수놓았다.2) 또한 연간 200여회에 이르는 전시(분관 포함), 40여건의 교류협력 프로그램(야외마당, 찾아가는 예술무대 등) 등을 합하고 보면, 명실상부 “소리꽃이 만발한 마당 넓은 집”으로서 지역 문화예술의 본산임을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일구어 온, 고품격의 예술적 가치와 즐김의 생활문화로서 대중적 가치 창출이라는 동시적이고 융합적인 비전의 제시와 과제의 실천 약속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보인 것이다.
■ 소리전당의 탄생과 성장
자타공인 ‘소리문화의 메카’로서 소리전당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그 시작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예술회관(1981~ )의 노후화와 협소한 공연장 시설에 제대로 된 문화하드웨어에 목말라 있던 도내 예술계 인사들은 학계·언론계 등 13명으로 건립자문위원회를 꾸리고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전당 건립을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1998년 1월 기공식. 첫 삽을 뜨는 순간 봄비가 내렸다. 이후 소리전당은 44개월여에 걸친 공사 끝에 국내 최고 수준의 초대형 복합문화예술시설로 자리를 잡는다.3)
그 해가 바로 문화관광부가 지역문화의 해로 지정한 2001년,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전주국제영화제의 개최로 어느 해보다 전라북도 문화의 저력과 가능성을 확인했고, 수도권 이남의 공연장으로 최대 규모와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소리전당이 전주에서 활짝 문을 연 해이다. 이는 문화예술의 고장임을 자부하면서도 변변한 복합문화 시설 하나 갖추지 못했던 전라북도에 최신 하드웨어 구축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줬다. 지역 주민에게 자부심과 함께 문화향유권 확대를,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창작열을 발산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덕진공원과 동물원, 체련공원을 끼고 있을 뿐 아니라 도립국악원, 덕진예술회관, 전북대삼성문화회관 등과 함께 이 일대 소리문화의 메카가 탄생한 것이다.
2001년 9월 20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23일까지 열린 개관행사로는 전북도립예술단 1백여 명이 한 무대에 올랐던 개관기념대공연 창무극 <춘향전>을 필두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특강, 전북미술 원로작가와 초대작가 3백50여명이 함께 한 <전북미술의 새로운 탄생과 도약> 개관기념초대전이 개최되었다. 이외에도 문굿과 길놀이, 세계민속예술제, 록댄스콘서트, 전국 아마추어 사진촬영대회가 펼쳐지는 등 열린 형식의 다양한 행사가 치러졌다.
그러나 사실상의 개막공연은 제1회 전주세계소리축제였다고 할 수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은 예향의 고장 도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준 쾌거였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우리 소리의 생명력과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예향 전북의 자존심을 곧추 세울 소리의 메카이며, 콘텐츠를 담아내는 크고 단단한 그릇이었던 셈이다.
소리전당의 개관은 도내 문화시설의 질적 수준 향상이라는 가시적인 성과 외에도 그간 대관 위주의 소극적 운영에만 익숙해 있던 기존 문화 시설들에 대한 경쟁을 촉발시켰다는 측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또한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전주국제영화제, 전국고수대회 등 대규모 문화행사의 주요 무대가 소리전당으로 옮겨진 것도 자리매김에 한 몫 거들었다. 소리전당의 탄생은 전라북도 문화시설 민간위탁 체제가 본격화된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 민간위탁, 전문 예술경영의 시작과 성과들
소리전당 민간위탁의 첫 해인 2001년. 이 시기에 무엇보다도 관심을 모았던 것은 민간위탁 시스템이 전북문화의 큰 물줄기를 잡아가는 중대한 시험대라는 점이었다. 문화예술인들은 소리전당이 지역성을 담보하면서도 예향 전북의 다양한 콘텐츠를 세계화하는 기획력과 지역의 문화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중도 하차한 1기 수탁단체의 바통을 이어 2003년 1월부터 학교법인 예원예술대학교(이사장 차종선, CEO 이인권)가 소리전당의 수탁·운영을 맡게 되면서4) 전문 예술경영체제의 도전과 노력이 하나 둘 결실을 맺어간다.
학교법인 예원예술대학교는 민간위탁 시스템의 취지를 십분 살려 예술경영에 많은 노하우를 지닌 CEO 총괄체제를 도입하고 지역 문화예술의 활성화(Integration), 공연전시 콘텐츠의 내실화(Sophistication), 복합문화예술공간 위상의 조직화(Organization)를 3대 과제로 설정, 개관 초기 운영시스템의 안착에 힘을 쏟았다. 이 시기 소리전당은 ‘솔리스트 시리즈'와 '문화MVP'제도, ’유스오케스트라‘ 창단(’00년) 등 지역 예술가/단체에 대한 배려와 함께 지역 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공공적 역할을 적극 수행했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소리전당은 전문 예술경영의 다양한 목표와 경영구도를 실현하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해외 명품공연의 지속 유치, 권역별 대표 아트센터와 협력제휴 네트워크 구축과 동시에 예술을 통한 문화교육(AIE)의 강화 등 예술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감성을 높이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그 구체적 성과를 일별하자면 2003 우수문화예술회관, 2004 최우수문회예술회관 선정(문화관광부), 2009 2010년 전라북도 16개 출연기관 경영평가 분야별 1위, 전체 A급 우수기관 선정(전라북도) (이후에도 또 상을 받거나 1등한 적이 있나? 있으면 포함!!!) 등을 우선 들 수 있다. 이는 지역문화창달 및 문화복지 확산성과가 괄목하다는 평가이자 전문성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가장 효과적인 예산 활용으로 지속성장 경영을 달성한 성공사례로 정착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2004년 호주 퀸즈랜드 유스오케스트라와 교류협력 시작, 2008년 아시아문화예술진흥연맹 총회(FACP) 유치, 2009년 프랑스, 2010년 미국 워싱턴 D.C의 청소년재단(WYF)과 문화예술 교류협력 합의 등 지역 아트센터의 한계를 극복하는 글로벌 프로모션과 국제교류에도 꾸준히 앞장섰다. 전국 지자체의 전당 운영 벤치마킹이 이어지는 가운데 문화 소외지대를 찾는 도민커뮤니티사업, 지역 최초의 시즌공연제 시행 등 도민 문화향유를 위한 전방위 활동을 펼치는 한편, 지역에서는 흔히 만나기 힘든 대형 공연들과 함께 지역 문화예술계에 새바람을 일으킬만한 다양한 교류 사업들로 안정적 운영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전북의 문화적 특성과 산업기반의 취약함, 인구 규모의 협소함으로 인한 열악한 관객시장, 이로 인한 중앙권 기획사들의 전북(전주) 배제 현상을 벗어나 관객 형성의 기틀을 마련하는 기점도 소리전당이다. 지역 주민들의 품격 높은 문화향수 욕구를 자체 지역 내에서 충족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의 공연물을 유치하여 무대에 올림으로써 공연기획의 3대 요소 중의 하나인 관객이라는 예술시장의 터전을 닦아 놓은 것이다. 이제는 중앙의 기획 전문 매니지먼트사가 전북을 그들의 시장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국내ㆍ외의 좋은 공연물을 제시하도록 하는 환경을 정착시켜 놓았다. 소리전당은 연 평균 40만 명이 훌쩍 넘는 도민들이 찾아오는 문화예술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민간위탁 경영은 지역사회의 정서와 공감대를 이루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면서도 지역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전문 경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까지 소리전당이 보여 준 행보는 이러한 민간위탁 경영의 필요 요소들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며 안정적인 아트센터로 정착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 소리전당, 최고의 감동과 환희가 쌓이는 곳
카네기는 '모든 예술의 본질은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했으며, 니체는 '모든 아름답고 위대한 예술의 본질은 감사함이다'고 말했다. 예술을 통해 만끽하는 환희와 감사의 느낌. 최고 작품과의 조우. 그 감동이 새록새록 쌓이는 곳, 소리전당.
소리전당은 전라북도 전통문화의 핵심가치인 '소리'를 테마로 조성된 곳이다. 무형의 자산을 유형화로 시현(示現)시킨 뜻 깊은 행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소리의 고장을 상징하는 예술의 전당으로서 감당해야할 사명과 책무가 막중함을 나타낸다. 소리전당은 또한 전북문화예술 구심체(hub)로서의 기능에 충실해야 하고, 전북도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해야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소리전당은 전라북도 차원을 넘어 우리나라 전반적인 문화예술시설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는 표본이 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 훌륭한 시설의 민간위탁 운영체제의 성공은 전라북도 문화예술이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소리전당이 걸어 온 지난 14년의 세월은 녹록치 않았으며, 그만큼 한층 성숙하게 했다. 앞으로의 10년, 20년, 30년, 그리고 100년……. 세월의 무늬가 켜켜이 쌓이고, 새겨질 것이다. 어떤 무늬를 만들 것인지는 소리전당과 이곳을 찾는 전라북도 도민들의 몫이다. 전라북도의 지원과 도민의 성원, 수탁 단체의 효율적인 운영과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 활용, 하드웨어를 채울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은 소리전당의 변치 않는 과제다. 각각의 주체가 성실하게 과제를 풀어나간다면 소리전당의 역사는 더 풍성하고 단단하게 이어질 것이다.
소리전당은 울타리가 없는 마당 넓은 집이 되어야 한다. 최고의 작품과 최고의 연주자가 함께 하는 공간, 최고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당당하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공간, 지쳐 있는 연주자들에게 희망을 끈을 쥐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야 한다. 아이들의 깔깔거림, 연인들의 속삭임, 산책 나온 노부부의 두런거리는 소리, 아름다운 소리, 생명의 소리로 가득 넘쳐흐르는 곳이라야 한다.
도민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낭만을 깨우고,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관객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준비는 늘 되어 있다. 이인권 소리전당 CEO는 창조경영의 출발점은 바로 예술이라는 루트 번스타인의 말을 빌면서, 예술공간으로부터 정신적 자양분과 창의적 인생경영의 지혜를 터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역 창작예술의 산실이며, 천상의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간, 문화예술의 혼(魂)이 생생하게 살아 뛰는 한마당, 휴식 같은 귀한 감동을 선사하는 곳, 소리꽃 만발하는 한국소리문화전당이 바로 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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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 글은 지난 2012년 1월 발간된 <한국소리문화전당 개관 10주년 기념 종합기록물-소리 10년 예술 10년>의 주요 내용을 압축, 재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
주2) 정확한 통계로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누적 공연개최 횟수 0000건이며, 누적 관람객 000만 0000명으로 집계된다. (2015년 12월 현재 기준)
주3) 총사업비 1천94억 원(국비 1백65억 원 포함). 1998년 1월 착공 이후 3년 8개월 만에 완공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연면적 11,045평, 건축면적 4,043평으로, 16,959㎡(5,129평)의 면적에 2,138석 규모인 대극장 모악당을 비롯해 연지홀(8,307㎡·714석), 명인홀(3,784㎡·222석) 등의 공연장을 갖췄다.
주4) 이후 학교법인 예원예술대학교는 2004년 1차 연장수탁에 이어 2006년 3기 수탁, 20??년 4기 수탁, 20??년 5기... 수탁을 경과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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