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미술관 所見; ‘지역’에서 ‘미술관’하기
유대수/한국소리문화의전당 큐레이터
문화저널 6월호.
“미술관”이란 문화·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을 말한다.1)
2004년 10월에 개관한 전북도립미술관(이하 도립미술관)이 올해 5월을 기점으로 3기 운영체제를 맞는다. 햇수로는 4년 째, 하지만 아직 명확한 성격 규정과 운영전략의 틀을 갖췄다고 말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도립미술관에 대해 선언적으로 비평하기는 어렵다.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해지기 위한 과정 중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서두에 밝힌 미술관의 일반적 정의에 준하여 지난 4년여의 노력과 성취를 가늠해 볼 수는 있을 터, 연구ㆍ전시ㆍ교육으로 압축되는 지점이 곧 그 가늠의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간 우리 지역 내에서 ‘미술관이란 무엇인가’ 또는 ‘미술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공론의 장이 제대로 마련된 적 없었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특히 ‘지역’의 입지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알다시피 MOMA나 구겐하임 같은 곳들이 우리의 과천현대미술관이나 호암미술관과 같을 수 없고, 다시 과천현대미술관이나 호암미술관 같은 곳과 우리 지역의 미술관이 굳이 동일한 비교선상에서 원용될 필요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 식의 미술관 제도, 미술관 문화가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관에 대한 위상과 전망을 논의하고자 할 때, 일반적 지표 설정에 따른 점검과 동시에 ‘지역성’의 문제가 함께 첨부되어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동의한다면, 이제 우리의 질문은 ‘여기서 미술관이란 무엇인가’ 또는 ‘여기서 미술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될 것이다. 지금 여기의 문제, 곧 지역의 사회적 조건과 문화예술 향유의 수준, 미술대중의 이해와 요구, 시장구조, 지역미술의 역사성 등과 충분히 호환되고 상관되는 미술관의 연구ㆍ전시ㆍ교육이 행해질 때 비로소 미술관의 정체성, 변별력, 생명력이 보장되리라고 믿는다. 도립미술관에 대해 따질 수 있는 여러 차원의 문제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도립미술관의 4년은 무난했다. 아직은 과정 중에 있노라고 앞서 말한 바도 있거니와 이 말은 딱히 최선의 성공이라고도, 심기 불편한 실패라고도 할 수 없는, 적당한 상태를 이르기 위한 표현이다. 사실 좀 더 세밀한, 이를테면 개별 전시에 대한 비평적 태도라거나 작품 또는 작가에 관련한 미학적 관점 만들기, 인문지리적 문맥 찾기 식의 민감한 부분들을 잠시 미뤄놓고 보자면 무난함은 결코 폄하가 아닌 점진적 가능성의 여지에 대한 기대심이다. 이는 지난 4년여 도립미술관이 치러온 전시 목록을 일별해 보면 쉽게 확인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연간 10여회를 넘어서는 도립미술관의 전시는 회화, 조각, 설치는 물론 서예와 사진, 디자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장르별 고른 안배를 하고 있다. 또한 아직은 부족하기만 한 수량의 소장품이나마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 있고, 해외미술, 어린이 및 가족, 원로ㆍ작고작가, 문화아카이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을 제시하고 좀 더 많은 층위의 대상을 향한 전시를 연출해내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한편으로 이러한 다양성이 미술관의 전문적 특성화라는 요구에 대립되는 게 아닌가 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지역의 문화적 조건과 함께, 도립미술관이 취하고 있는 폭넓은 문화예술 향유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운영전략으로 보아 그리 어색한 현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도립미술관의 현재 역량에 비하여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양’의 전시를 치러내고 있는 반면2) 연구와 교육의 영역에서는 이렇다 할 흔적과 성취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에 있다.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것이 그저 미술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하도록 ‘진열 Display'하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는 균형을 잃은 편중이 아닌가 지적하고 싶다. 미술관의 최종적 질은 소장품이 결정하고, 그 소장품이 가져야 할 최선의 질을 위해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전문 지식을 갖춘 학예사가 필요한 것이다. 또 앞서 말한 지역성의 문제와 연동하는, 미술(작가와 작품을 포함하여)과 지역, 미술관과 지역 같은 문제들을 역사, 문화, 사회적 맥락으로 조사ㆍ해석하고 의미부여 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줘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일반의 전시에 기획의도를 전달하는 서문의 작성 정도에 머무르는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국내외 현대미술의 변화 양상과 새로운 예술 형식 등에 대한 탐구 노력이야 두말 할 것도 없다. 전시는, 그러한 연구의 결과물로서 작동하는 장치가 되어준다. “이렇게 축적된 시각예술의 풍요로운 유산을 갱신된 시야로 보고 지속적으로 재평가하고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해석 가능성이 제시된다. 이 때 미술관 제도는 가장 탁월하고 합리적인 장치가 된다.”3)
교육의 측면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도립미술관이 갖춘 반년간 강좌프로그램만으로는 미술관의 교육적 기능을 다했다고 말하기 힘들다.4) 미술관 강의실 내에 머무르지 않는, 좀 더 확장된 소통공간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방사되는 네트워크, 즉 지역의 갤러리, 문화예술단체, 시민단체, 각급 교육기관들과의 지속적 연결과 협업을 포함하여 견학, 연수, 레지던스, 포럼, 전시비평의 조직 등의 형식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회원제도 운영의 경우조차도, 적으나마 재정적 도움은 물론 장기적인 수요의 재생산, 거시적 교육ㆍ홍보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짐작컨대 도립미술관 스스로 이러한 문제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 있는 속도 모르고 교과서에나 나오는 원론적 얘기만 들이댄다고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누가 보아도 한계가 여실한 운용 예산과 전문인력의 부족, 큐레이터쉽의 미비 등 현재의 도립미술관이 안고 있는 고민의 지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순전히 도립미술관 내부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도 익히 안다. 역설적으로, 그 만한 예산과 인력, 조직구조로 여기까지 버티어 왔다는 데에 이르면 기꺼이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그러나 그 정도의 인정과 격려가 잠시 보태진다고 한들, 지금과 같은 ‘무난한’ 온전함만으로 유수의 미술관들과 견줄만한 변별력과 활기찬 생명력을 찾아 나서기 매우 어려운 지경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지자체의 진일보한 문화정책 의지와 더불어 미술관을 찾는 향유자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우선적으로 미술관은 미술관 활동의 일차적 이해관계자로써 좀 더 치밀한 고민과 노력을 경주해주길 바라면서, 지금은 고인이 된 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이동석이 1999년에 남긴 <학예연구사 구보氏의 하루>라는 글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마칠까 한다.
(전략) 그러나, 적어도 구보씨가 알기로, 한국에서 이처럼 성역화된 미술관은 없다. 한국의 미술관은 외부의 온갖 기대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마지막으로 몰려드는 곳이다. 복잡한 이해가 뒤얽혀 있는 미술관은 지끈거리는 우리 현실의 겉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래서 전문적인 판단이 왕왕 실체가 없는 명분에 의해 무시되거나 훼손되기도 한다. 기획전과 소장품 구입을 둘러싸고 지역의 이기적인 요구들이 민원과 진정의 형식으로 느닷없이 표출되기도 한다. 구보씨는 답답하다. 진보적 기획이나 의지를 갖고 시작한 일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미술관이 고착된 지역성을 넘어선 위상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지역 미술의 탈(脫)주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러한 이기적 이해와 비합리적 요구들은 하나의 문화적 환경으로서 미술관의 입지를 뿌리부터 흔드는 현실적인 장애 요인들이다.
(중략) 오래 동안 한국의 미술계는 세련된 논쟁이나 섬세한 토론보다 복잡한 게임의 판도에 좌우되어 왔다고 구보씨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단순, 무식, 과감하게 밀어붙이면 어쨌든 그 결과는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많았다. 하나의 판도가 또 하나의 판도로 대체될 뿐인 이러한 양상은 부질없는 에너지 소모와 내부출혈로 인해 진정한 변화도, 진정한 발전을 기약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미술관 문화가 태동하는 지금 시점에서, 미술계의 이러한 시대착오적 풍토는 미술관의 미래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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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
주2) 도립미술관 홈페이지(www.jbartmuse.go.kr)에 따르면, 2004년 3건, 2005년 10건, 2006년 13건, 2007년 11건의 전시를 개최했다. 또한 2008년 들어 운영ㆍ관리를 떠안은 도청사갤러리를 통해 6건의 기획, 초청전시를 치렀다.
주3) 미술관 제도 연구, 이인범, 1998
주4) 도립미술관은 ‘교육 및 학습’ 영역을 사회교육프로그램과 어린이미술관, 문화행사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으며 다시 사회교육프로그램에서 이론 및 실기강좌 각 1건, 어린이미술관에서 어린이아뜰리에강좌 1건을 반년간 기준으로 진행하고 있다. 문화행사는 대개 외부기획물의 보조, 초청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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