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견; 지리산과 미술관
by artwood 2008/01/30 20:25 필부를꿈꾼적없다
유대수/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기획자
200802월호 문화저널 시평
그러니까, 미술관을 한바퀴 거닐면 마치 지리산 그 깊은 속내를 골골이 다녀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속내가 없지 않았다. 미술관을 품어 안은 모악산도 전주 인근을 내리깔고 보는 훌륭한 산이로되 지리산만이야 할까, 나보다 한발 앞선 미술가들의 방문기(記)와 함께 예술적 흥취와 심안(心眼)을 운위해야 할 판에 마음은 지리산의 흙냄새가, 바람 기운이 먼저 당긴다 하니 ‘작품’으로 승부하겠다고 일껏 자리 마련한 미술관엔 한편으로 죄송한 일이 되는 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 내 기억 속의 지리산은 여전히 멀고 거칠고 춥다. 짐작컨대 전라도 언저리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친구들과 어울려 지리산 자락에 발자국 남기지 않은 사람 없으리라. 물론 그 시절 묵직한 석유버너와 통기타,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가는 소형 전축(?)같은 것들이 필수 등산장비(!)로 챙겨지던 때에 말이다. 그 때는 왜 그리 지리산 길에만 나서면 비가 내리고 눈발이 몰아쳤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 거친 능선의 고달픈 걸음을 되새겨 도리질을 치는데도 가슴 한 쪽은 그리움으로 웅웅거린다는 것, 아니 지리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단전으로 무언가 쑥 내려가면서 금방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으로 살가죽이 사르르 떤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저 말이 그럴 뿐이라는 것 용서를 빈다. 벌써 지리산 자락 근처에도 못가본 지 십여 년이 되어간다. 그렇게 지리산은 그냥 먼발치에서 그립기만 한 어떤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 것들이 뭉치고 쌓여 지리산이 펼쳐져 있다는 미술관행을 더욱 설레게 했을 것이라고 지레 변명을 하는 셈이다.
미술관에 들어 일견 나의 눈에 잡힌 것은 ‘풍경’이었다. 화려한 조형언어와 (아마도) 현장의 생생한 감동을 잊지 않고 기록했을 각각의 형상들이 분분하다. 좋은 일이다. 산은 산대로 ‘미술’화 되어 가라앉되 산을 느낀 기분은 기분대로 화면을 흐른다. 지리산은 아직 그대로구나.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은 이야기들이 흔전하구나. 그리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것이 첫인상일 터, 그래도, 웅웅거리던 가슴이 가라앉고 ‘전시’가 찬찬히 눈에 들어올 때쯤엔 고개가 약간 옆으로 기울어졌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지 않다.
대체로 사진, 은 지리산의 시간과 공간을 한 치 어김없이 눌러 담아 정색하고 뜨악하다. 회화들, 은 풍경을 마냥 경치(景致)로 읽어 보이는 게 형태를 덧바른 색깔뿐이라 숨은 뒷맛을 미처 찾지 못하게 밀어내니 그 또한 밋밋하다. 그렇게 보였다. 천변만화하는 지리산의 풍경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데야 무슨 시비가 있을까마는, 우여곡절의 드라마를 연상한 관객의 시선이 괜한 어거지가 되지 싶었다. 낱낱의 씬(Scene)을 이어 붙이면 결국 미장센(Mise-en Scene)이 되긴 하는 걸까? 반대로 지리산이라는 국립공원을 다녀온 소견을 스케치하겠다는 연출(의도)의 단서가 있었다면, 여기 배열된 작품들은 서로가 서로를 고리지어 끌어안으며 기승전결의 댓구를 치고 있을 유려한 서사구조 같은 것을 기대한 바가 별스런 오해가 되는 셈인가?
즉 이 말은, 개별 작가들과 작품들이 보여준 공들인 필치의 ‘뜻’을 모둠으로 지칭하여 밀어붙이자는 게 전혀 아니다. 압도적인 스케일로 지리산의 온 몸을 남김없이 선사한, 더불어 거기 묻혀 살아 간, 살아 온 사람들의 손짓 발짓마저 꾸밈없이 드러낸 박순철의 화면이나 알 수 없는 바위를 등지고 순간 흔들리며 사라진 ‘대화’를 전해 준 정주하의 무채색, 이종구의 새벽, 공기평의 몽환, 나종희의 붉은 힘, 이철량의 섬세한 골주름이 눈에 잡히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전시는 이상스레 굴곡 없이 평탄하였는데 딱히 꼬집어 그 연유를 말하긴 힘들지만(지면이 짧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는 말이다.
이번 지리산전은 작년에 선보인 독도탐방전의 연장이다. 그렇게 알고 있다. 그래서 미술관은, 연이어 풍수와 인문과 지리와 역사를 말하기 좋은 한반도의 어느 땅들을 또 찾아 나설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지리산이 혹여 전면적인 역사의 재편집에 이르지 못했다 한들 미술관의 여정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박빙의 속도전에 내몰리는 도시의 삶 저 쪽에 지리산을 뭉쳐놓고 기다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기다림이 나에게만 있지 않다.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어느 미술애호가의 ‘소견’을 소개하며, 말마따나 어느 시절이 되어도 ‘그대로’ 있을 또 다른 지리산을 같이 기다리겠다.
............
도립미술관지리산전을보고
글쓴이: 푸른바다 2008.01.19 17:04
요즘 전북도립미술관전 지리산전을 갖다 왔지요.
기대를 많이 했는데
서양화 작품들이 감동이 적었습니다.
지리산이 작품에서 잘 살아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 ㅎㅎ
지리산은 그대로 있으니까 좋은 작품들이 앞으로 나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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