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09 [화랑]전북 화랑의 흐름과 미술의 흐름
“전주에 화랑문화는 있는가?”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는 자신을 소개하는 글의 첫머리에서 “미술 보급의 대중화와 국제교류 증진에 이바지하며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건전한 미술시장의 육성과 유통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설립(1976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 말이 화랑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아니다. 하지만 이 언급은 일반적으로, 실제 대부분 화랑의 주요 기능과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최종적으로 ‘미술시장’ 속에서 ‘유통’의 한 단계를 책임지는 곳이 곧 화랑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의 보급이나 국제교류라는 것이 그렇듯 사회적 책임 운운도 결국은 한 사회 내에서 미술의 생산과 소비라는 경제적 순환 고리를 형성해내는 방편이자 활동과 운영의 의미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화랑은 화가-생산자와 감상자-소비자의 한 가운데서 서로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매개하고 처리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사실 ‘미술시장’이라는 용어가 뜻하는 바는 생각하기에 따라 그 폭이 상당히 넓다. 단순하게는 각 개인의 단위에서 미술품을 사고파는 거래의 행위를 일차적으로 가리키지만 ‘전시’를 통한 작품감상에서부터 연구, 교육의 차원까지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당연히 공공적 차원의 수집과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거칠게나마 일반의 미술관-박물관과 화랑의 역할을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술의 소비는 단지 물적 교환의 가치를 지불하고 소유하는데서만 그치지 않고 일련의 특성과 주제에 맞춰 배열되고 제시되는 ‘작품-유물’들을 바라보고 읽어가는-학습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발생한다.
미술관이든 화랑이든 적절한 화가들을 찾아내거나 길러내고 이들의 작품을 진열-전시하는 기능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공적 기여를 좀 더 강조하여 미술의 수집과 보존, 이를 통한 연구와 교육으로 그 뿌리를 갖추고 포괄적 대중에게 미술의 사회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하는 미술관의 역할에 대조해 보면 화랑은 대중과의 일차적 접촉이 활발한 일선에서, 좀 더 압축된 사적인 취향의 차원에서 미술의 거래와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화랑이나 미술시장에 관련한 별도의 논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에서 통상 ‘표구사’로 지칭되는 곳들조차 한결같이 ‘00화랑’이라는 이름을 갖추고 있으며 협회를 구성하여 나름의 전시활동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소위 ‘이발소그림’으로 불리는 상업화나 복제미술품등이 유통되는 시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를 자랑한다.
이러한 점들은 화랑에 대한 논의를 종종 경제적 논리에 국한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화랑주나 소속 디렉터의 의지와는 또 다르게, 공간의 활용이라는 면에서 화가들이 먼저 작품 발표의 장소로 민간 화랑을 대여하여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소위 ‘대관화랑’이라는 말이 전혀 낯설지 않게끔 되었다. 또 이 점은 화랑이 화가들의 창작 열기와 발표의 의욕을 전개시키기 적당한 대중적 구조를 형성하면서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대관 발표’의 복합적 기능을 갖춘 또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전주, 전북의 화랑은 어떤 위치에 있어 왔는가를 살펴보면, 그 출발에서부터 유통을 전제로 하는 미술시장의 형성에 목표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하자면 전주에서 화랑에 대한 요구는 일차적으로 열기 넘치는 화가들의 작품 발표와 경연의 장이라는 공간의 확보라는 인식에 무게를 두어 일찌감치 ‘대관공간’의 필요성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주 화랑의 역사는 사실 도시 규모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무시할 수 없는 오랜 연륜과 분포를 보인다. 전주, 전북 화단에 신미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 동광미술연구소의 의욕적인 창작활동, 그리고 녹광회(1950~), 신상회(1951~) 등의 동인전과 개인전이 활발한 전시 활동을 보이면서 그 바탕을 쌓기 시작한 전북미술은 1969년 전북도전 개최 이후 대학에서의 미술 전문학과 창설로 지역 화단에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제공하면서 본격적인 자리매김을 한다. 개화기 신미술가들의 활동은 바로 작품의 전시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도로 드러나는데 동광미술연구소가 아틀리에를 중심으로 후진 양성과 창작 활동의 근거를 마련하고 학교 공간을 빌어 전시를 개최(1945, 전주성심여자중학교)했으며, 이 지역 최초의 전람회로 전하는 황종하, 황용하, 황성하의 3형제전(1923)의 경우 군산 황족회관에서 열린 바 있다. 또한 유병희의 종군 기록화 개인전(1951)이 전주 공호당에서 열렸으며 이리 삼남일보사에서 허원의 수채화 개인전(1952)이 열렸다. 많은 전시들이 본격적인 사설 화랑공간이 태어나기 전 기존의 공공기관인 미국문화원이나 전라북도 공보관 등을 활용하여 그 현대적 활동의 토대를 쌓아갔으며 또한 전주 아담다방, 이리 에덴다방, 군산 비둘기다방 등지의 찻집 전시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1972년 월담미술관이 사설 전문화랑으로 그 첫 문을 열며 이후 백제화랑, 전북화랑 등이 연이어 개관함으로써 이렇다 할 전시공간이 없어 다방과 기존 건물을 전전하던 미술 전시들이 제대로 된 상설 전시장에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 여타의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시도들이었으며 전북미술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풍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다방이 곧 미술인들의 전시실이 되었던 시절, 상설전시와 작가들에게 전문적인 전시공간을 제공했던 백제화랑은 지역 작가들에게 뿐 아니라 전국의 작가들이 전주를 찾아오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비록 대관에 의존했던 운영이었지만 백제화랑은 전주의 묵향을 잇게 한 다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본격적인 화랑시대의 개막은 동시에 전통적인 보수적 화풍에 의존하던 지역 화단에 신선한 자극과 함께 새로운 현대미술의 다양한 시도가 벌어지는 근거지를 만들어 든든한 토대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예향 전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풍성한 전시와 창작활동에 힘입어, 표구점들이 화랑으로 대치되었던 시절을 지나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가히 전성시대라 할 만큼 전문적인 화랑을 내세운 공간들이 연이어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1980년 이후 시대의 격변기를 헤치며 등장한 민족 민중미술이라는 새로운 미학의 장 내에서 서울 그림마당민(1986)에 이어 지역 최초로 온다라미술관(1987. 10~1992)이 신학철초대전을 시작으로 그 첫걸음을 뗀다. 이후 온다라미술관은 5년여의 기간에 걸쳐 80여회의 전시에 1백 50여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역동적인 활약을 보인다. 또한 작품전시 이외에도 각종 강좌, 강연 등이 열려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한다. 그러나 지역화랑으로는 드물게 특색 있는 주제기획전 중심의 적극적인 전시활동과 더불어 화가와 미술 애호가와의 교량역할을 충실히 하며 수많은 미술품 거래를 성사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 결국 문을 닫고 만다. 얼화랑 역시 1988년 12월, 민간 사업자의 후원과 미술가의 노력으로 개관한 이후 전주의 대표적 사설화랑으로 자리 잡으며 근래에 들기까지 16년 역사를 잇는다. 하지만 초기의 의욕적인 기획전시와 참신한 작가 발굴을 위한 청년미술상 운영 등 줄기찬 노력에도 대관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다 2005년 1월 전시를 끝으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IMF 이후 침체된 미술시장에서 사설화랑의 경영난이야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지만, 1995년 고비를 맞았을 때도 화랑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임대료 마련을 위해 작가들이 앞장서 작품을 기증하는 등 지역 미술가들의 애정으로 그 명맥을 이어온 얼화랑의 폐업에 미술인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한편 대성화랑이 얼화랑과 같은 해인 1988년 말 문을 열고 지역작가들의 안정된 활동과 교류의 공간으로 자리잡고자 했으나, 시설 대여에 운영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다 여느 화랑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안게 되는 적자를 더 이상 감수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운영을 지속해오고 있는 솔화랑은 1984년 문을 열었지만 본격적인 상업화랑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90년대 들어서이다. 솔화랑은 특히 고서화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장승업을 비롯한 작가의 작품 3천여 점과 1천여 점의 서양화를 소장, 해마다 쉬지 않고 소장 작품전을 열고 있다. 90년대에 이르러 그간 일정한 역할을 했던 화랑들이 문을 내리는 동안에도 새로운 화랑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1991년 개관한 우진문화공간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통로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재도 독립 문화법인으로 다양한 예술사업을 운영하는 우진문화공간은 기존의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과 함께 1998년부터 우진미술클럽을 통해 강좌, 미술관 탐방 등을 지속하고 있다. 이외에도 1993년 3월 예루갤러리의 개관과 전문 상업화랑을 표방하고 미술품의 건강한 유통구조를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이며 문을 연 정갤러리(1993. 4)를 비롯해 민촌아트센터(1994), 한마음갤러리(1996), 서신갤러리(1997. 10), 현대아트센터(1999), 리베라갤러리, 경원아트홀 등이 지역 화랑의 맥을 이어온다.
이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활동 속에 아직도 지역 화랑의 면모를 지키고 있는 곳으로는 민촌아트센터와 서신갤러리를 들 수 있다. 민촌아트센터는 대관보다는 초대전 형식으로 이뤄지는 미술전시와 함께 해마다 ‘공개누드크로키전’을 기획하면서 대중성을 높이고, 다양한 크로스오버 공연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는 미술의 역할과 지역에서 가능한 대안적 미술을 모색해나가는데 중심이 되겠다고 나선 서신갤러리는 전담 큐레이터를 도입한 첫 화랑이기도 하다. 신진작가 발굴에 주력한 초창기 작업에 이어 역량 있는 작가 초대전 등을 치러내며 지역미술 환경을 점검하고 방향을 모색해가는 공간으로 이미 자리를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90년대 중후반을 다양한 모색으로 채우며 지역미술의 살림을 두텁게 이끌어 왔던 사설화랑의 열기가 대부분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관하고 마는 여건 속에서도 최근 들어 나름의 역할과 소명을 자부하며 다시 한번 새로운 화랑문화를 세우고자 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개인 작업실을 겸하여 상설 전시를 운영하는 이동근갤러리와 이성재갤러리, 또 병원 로비를 활용하여 작가 초대전을 이어가는 수갤러리, 카페를 겸하며 다양한 순수미술 기획전을 펼치는 오스갤러리 등이 그것이다. 오스갤러리는 롯데백화점내에 부설 화랑을 동시에 위탁 운영하고 있다. 군산에서는 화랑다운 면모를 제대로 갖춘 공간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가 최근 갤러리예감이 아트숍을 겸하는 소규모 기획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역 화랑의 면모를 일별해 보면서, 지난 10여 년에 걸쳐 언론에서 취급한 화랑에 관한 텍스트는 한결같이, ‘위기’라거나 ‘설 자리가 없다’거나, ‘흔들리는 화랑가’ 등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새삼 느껴보았다. 그 만큼, 지역 미술계에서 화랑의 존재는 변함없이 위태롭기만 하다. 지역 미술의 성과와 한계는 곧 미술 향유층의 한계와 비례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바로 소비의 영역, 미술시장의 규모나 한계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작가발굴과 창작활동 지원, 그리고 미술품의 대중화를 통한 상업성이 화랑 본연의 역할임을 모르지 않음에도 일정한 경제적 기반이 없는 여건에서 별다른 대책은 떠오르지 않으며 단순 대관에 의존한 운영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일방적인 발표만이 있는 ‘전시’ 중심의 현상은 결국 ‘거래’는 없는 빈약한 미술시장 구조를 지속시킬 뿐이며 이는 지역미술계 모두의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다양한 전시를 실현시킬 공간이 부족하거나 까다로운 것은 아니다. 예술회관을 포함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장이나 학생회관 등이 그 예이자 최근 개관한 전북도립미술관도 규모 있는 기획전시를 관람하고 향유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생산의 문제가 그런 공간의 넓이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면, 점점 비워져가고 활력을 잃어가는 사설화랑들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한 민간 사설화랑의 문제가 단지 화랑주의 운영 마인드나 비즈니스 능력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도 여전히 뭔가 빠진 듯한 아쉬움은 남는다. 풍요한 미술문화의 향유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이를 연결짓는 매개자 모두의 만남과 아낌없는 노력과 자성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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