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 Column

20050321-‘혁신’의 문화 또는 문화의 ‘혁신’은 가능한가

by PrintStudio86 2017. 7. 25.

‘혁신’의 문화 또는 문화의 ‘혁신’은 가능한가?

유대수/미술기획, unani@kornet.net

이 글은 2005년 4월호 [열린전북] 에 실릴 예정입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오 베이비’식의 미끈함이나 ‘생뚱맞죠’라는 감탄사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참여정부 들어 ‘혁신’이라는 용어만큼 유행처럼 오르내리는 말도 드물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온 나라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혁신해 보겠다고 ‘꺼리’ 찾기에 혈안이다. 그런 혁신에의 앞뒤 없는 몰두가 이러저러한 정책과 사업의 이름을 달고 정신 사납게 흩뿌려지는 걸 보자면 오히려 그 자체로 비/반 혁신적인 나열식 생색내기와 다를 건 또 뭐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혁신이 뭐 별건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공의롭지 못한 작태들, 구태하고 안일한 태도와 행위에 대하여 더 이상 눈감아주지 않겠다는 의지만으로도 그 취지는 분명해진다. ‘눈 가리고 아웅’하거나, ‘구렁이 담 넘듯’하거나, ‘닭 잡고 오리발 내밀’던 일들에 대하여 투명한 합리성과 진정성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으로부터 혁신은 출발하고 완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법을 세워 제도를 고치고, 좁았던 안목을 틔워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며 색다른 효율을 얻고자 하는 일들이 덜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습관적 비민주성을 걷어내고 의식의 변화를 견인해내자는 일이 그리 멀리 있거나 어렵기만 한 정치가 아니라, 이미 합의된 민주사회의 공공적 룰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리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전북도내 각 지자체를 돌며 혁신을 주창했던 강현욱 지사의 뜬금없는 열의는 나에게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혁신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며, “혁신은 나와 내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부터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고, “전북발전의 명운과 200만 도민의 행복은 도지사인 저와 공무원 여러분의 의지와 실천에 달려있다”(전북일보, 2005. 2. 22)고 강조해 마지않는 것을 접하면서, 또한 그러한 다짐의 결과가 진정 우리 눈앞에 실체의 모델로 형상화되어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만세삼창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생각은 생각에서 그치고 만다. 말의 단언이 제 아무리 명쾌한들 몸의 실천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감당하기 힘든 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지사의 발언과 행보를 만난 시점이 하필 내가 겪은 일련의 사태(!)가 별다른 대책도 없이 유야무야로 꽤 흘러가버린 이후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지면의 독자시라면 전북발전연구원(이하 전발연)의 용역보고서에 관련한 대강의 전말은 능히 짐작하실 바, 그러므로 필자는 강지사의 간단없는 열의에 감동을 받기는커녕 어이없는 실소를 흘리며 비아냥거렸을 뿐이었노라고 고백하겠다.


혁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정리라는 측면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실 문제는 그리 복잡한 게 아니었다. 지난 2월 17일 이후 도내 일간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해당 평가위원들을 포함한 몇 개의 성명서가 발표되고, 그리 미덥지 못한 통과 의례적 사과를 받는데 그치고 만 전발연의 “엉터리 용역보고서” 사태는 강지사가 그리 애타게 바라는, 혁신 도정으로 200만 도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는 따위의 거창한 층위까지 가지 않더라도 시민사회 일반의 상식에서 얼마든지 정리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상식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마치 콘크리트마냥 견고한 제도의 관행들을 나로서는 감히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에 빠진 와중에도 미처 해결되지 못한 채 뒷전으로 밀려나 잠복할지도 모를,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의 ‘혁신’적 진일보를 위해서라면 시급하고도 중요하게 다루어야만 할 몇 문제를 짚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나로 하여금 이 구차스러운 사태로부터 미련 없이 뒤돌아서지 못하게 하고 있다.


조금 지루하시더라도 그중 제일 간명해 보이는 문제 한 가지만 풀어보고 넘어가겠다. 앞에 언급한 사태의 발단이 되었던 보고서는 그 공식 명칭이 ‘2004년도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사업 평가보고서’(이하 문진금)라고 되어 있다. 지난 2002년도부터 3회 째 시행되어 온 이 평가제도는 말하자면 전년도 문진금 지원사업의 실행결과에 대해 해당 분야별 민간전문가를 위촉하여 현장 평가한 후, 당해연도 문진금 지원 심의의 기본 자료로 사용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1) 당연히 이 제도에는 인센티브 및 역인센티브 항목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평가 점수가 좋게 나온 단체에는 그 해 10~50%의 지원금 증액이 따른다는 말이다. 역인센티브? 두말 할 것 없이 10~50%의 감액 처분이 내려진다. 참고로, 해마다 지역 문화예술인/단체에 지원되는 문진금의 전체 규모는 대체로 6억여 원을 넘나들며, 해가 갈수록 신청/선정 사업 건수 및 지원금액은 늘어나는 추세이다.2)


사실 이러한 평가시스템의 도입과 적용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보이며, 제대로 활용되어질 경우 그간 무사 평등의 고른 분배라는 소액 다건주의의 무차별한 반복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말 그대로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공공기금의 활용 방식’을 민주적으로 변화시켜낼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줄 것이 틀림없다. 다만 아직은 문화예술계 전반의 체질과 습속이 기존의 문진금 운영 방식에 심하게 길들여져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 성급하게 욕심을 부리거나 칼을 빼들 일만도 아님은 분명하다.


기실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소위 아마추어나 프로를 가리지 않고 문진금의 쥐꼬리만한 혜택에도 목매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센티브와 역인센티브의 적용이라는 평가 시스템은 지원사업 실행 단체로서는 심히 눈치를 보아야만 할, 쉽게 무시하기 힘든 감시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연말이면 대충 전년도와 별 다를 바 없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변이 없는 한 지원금은 그만그만한 수준에서 배당(!)될 것이 뻔하며, 적당히 인쇄물 첨부해서 정산하면 그만인 그런 사업들은 감히 시도할 수 없는 분위기가 정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각설하고, 이 평가 자료-문제의 보고서는 2005년도 문진금 지원을 위한 심의의 기본 자료가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전년도 지원사업에 대한 실제 평가는 전무했음이 밝혀졌고, 결과적으로 보고서는 폐기되었다. 납품업체인 전발연은 머리 숙여 사과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인 양 통합전발연의 출범을 핑계 삼아 책임의 가시권에서 멀어져 가버렸다. 그리고 전라북도는 말이 없다. 그래서, 상황은 끝났는가?


그렇지 않다. 기왕 엎질러진 물이라고 지레 뒷걸음질 하여, 2004년도 지원사업 평가는 불가피 없었던 일로 눙치고 지나쳐도 되는 것인가? 평가 시스템의 유지/집행을 위해 배정한 예산(전발연으로부터 환수된/될 부분을 포함하여)은 또 어찌할 것인가? 차제에 다음 년도에는 어떤 평가 방식과 지원 심의의 절차를 작동시킬 생각인가? 600여 개에 이르는 지원단체의 숫자로 보나 10억여 원을 육박하는 기금의 규모로 보나 이게 그리 만만한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예년에 비하여 한참이 지나도록 지원심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는 지금, 숱한 문화예술단체들의 사업 계획이 발목 잡힌 채 터덕거리는 참이다.3)


이제 2005년도 문진금 지원 심의는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배분할 것인가? 기껏 만들어낸 평가 시스템을 무시하고 3년 전, 아무 것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도 좋단 말인가? 자청하여 만들어 낸 제도를 스스로 부정하고, ‘이번 한번만 대충 가자’라고 누가 합의라도 했단 말인가? 그리하여 지원신청 기준 란에 명백하게 쓰여 있는 ‘전년도 평가결과의 적용’ 항목은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한 발 더 나아가 평가와 심의와 지원 주체가 각기 따로 놀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런 식의 문진금 운영이 정말로 지역 문화예술의 진흥에 ‘혁신’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누가 믿는단 말인가?


간단한 문제를 너무 길게 말해서 죄송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보다 더 길게 따지고 짚어내야만 할 문제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가 계속 문제로만 남아 잠복하는 현실을 사는 한, 나로서는 눈치 없이 더욱 길게 얘기하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다시 혁신의 문제로 돌아오자면, 나는 사실 강지사의 오버스러운 행보나 전발연의 어이없는 작태만으로 화가 나있는 것이 아니다. 정작 나를 우울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는데, 이를테면 ‘지금 전북에서, 혁신의 문화 또는 문화의 혁신은 정말 가능할까?’ 라는 식의 질문에 관련하여, 그리 속 시원한 결론을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었다는 데에 혐의가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들이대고 질문한 적은 없다. 말인즉슨 구체적인 나를 포함하여, 현재를 구성하고 지탱해 가는 이 사회의 암묵적 합의의 절차라는 게 너무 드러나게 뻔하다는 것과 더불어 서로가 서로에게 적당히 걸치고 있는 것만큼이나 누가 누구에게 책임과 의무를 물을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하여 짜증이 났다는 것이다.


그 점이, 비록 한 때는 잘못 접합된 근대의 질곡을 헤쳐 나왔으나 애써 후기모던이 횡행하고 인터렉티브한 네트워킹이 현란한 지금 이 시절에조차, 굳이 혁신을 주창함은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은 반민주적 난제들이 쌓여있다는 반증일 터, 지자체 수장이 아니라 그 어떤 사람의 혁신적 발언도 바로 내 눈앞에서 뒤집어지는 물그릇 하나 바로 세울 수 없다면 그게 무엇이겠는가 하는 노파심이, 동네방네 소문만 무성한 혁신의 구호를 그저 철없는-아니면 영악한 어느 사모님의 우아한 분홍스카프로 밖에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바라건대 새만금이나 김제공항만이 우리 삶의 전체가 아님을, 현실의 기득권과 보수의 안이한 제자리걸음이 더 이상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창의한국’과 ‘새로운 예술정책’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어떤 형식들을 담지하고 있는지를 풀어내 공기처럼 호흡하고 싶은 것이다.


.............

주 1). “전북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심사는 신청공고 이전에 심사기준을 제시하여 지원방향을 명확히 하였으며, 평가시스템의 제도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자평하고 금년도에도 사업의 내실화를 기하고 비효율적 지원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평가시스템을 운영하여 익년도 심사에 반영키로 하였다고 말했다.” 『2003년도 문예진흥기금 지원계획 확정 보도자료』, 전라북도 문화예술과, 2003


주 2). 2002년도 기준 238개 사업에 5억6천4백만 원, 2003년도 기준 255개 사업에 6억2천1백만 원이 지원되고 있다(위 보도자료 참조).


주 3). 이 글을 쓰고 있던 21일 오후 현재, 지인이 찾아와 내일(22일), 문진금 심의가 열린다고 귀뜸해 주었다. 필자가 모르는 사이라도 전북도와 문화예술계가 힘을 합하여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어떤 노력이 있어 왔으며, 그 노력의 결실과 합의를 통해 정당하고 객관적인 지원심의가 이루어지기를(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