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전북민예총 문화정책 대토론회 [참여정부의 문화정책과 지방자치체의 현실]
일시;2005년 7월 14일~15일
장소;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
주최주관;(사)한국민예총. (사)전북민예총. (사)전북지역혁신연구회
후원;문화관광부. 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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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과] 지방자치제와 문화예술지원정책
지역의 문화예술에 대한 몇 가지 고민- 전라북도 문예진흥기금을 중심으로
○ 지난 2004년 6월, 전주에서 참여정부의 지역문화정책과 문화중심도시에 대해 뜨겁게 논의한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꽤 세심한 배려와 충고를 보태고 적잖은 우려와 대안을 말하던 많은 문화예술 정책과 제도들이 산적했고, 그 중 많은 것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 현실이 되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를테면 “창의한국”과 “새예술정책”에서 논의된 정책 목표의 실천이 구체적인 과제가 되어 발등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 그 다양한 논의들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간 거칠게 통용되어 왔던 ‘문화’중심적 논의로부터 ‘예술(생산/매개/향유를 포함하여)’에 대한 언급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천편일률의 장르 구분법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예술 생산과 향유 방식 등의 범위와 외연의 확장에 있다. 여기서 문화와 예술의 지점을 구분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통상 문화예술이라고 붙여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 대한 적용 기준이나 방법 등은 매우 다양하다. 적어도 ‘문화’가 되기 이전의 ‘예술’적 실천방식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과 육성을 논의의 중심에서 제외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1)
또한 문화와 예술의 차별성을 염두에 두면 지역문화와 지역예술은 분명 다른 위치에 있다. 특히 지역예술을 거론할 경우, 지역사람이 만든 예술로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예술품의 지역성 확보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의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 점에 대하여 객관적인 준거를 가져야 하는데,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지역’이라는 담론의 막연함만큼이나 지독하게 불투명한 채로 남발되는 지역 ‘문화예술’에 대하여 공의의 범주를 단속할 필요는 분명하다. 그런 뜻에서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 또한 중앙중심에서 분권-지역 중심으로, 규제 감독 중심으로부터 기획 평가 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이제 각 지역은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의 수립에 있어 지역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대안까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문화진흥법 제정과 지역문화예술위원회 설립, 기업의 문화예술 기부금에 대한 세제감면 등 새로운 문화 환경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각 지역은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비교 우위적 특성을 바탕으로 고유의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지역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특성화 발전전략을 수립, 추진 중이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전략의 수립 및 실행에 있어 전문성의 확보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제 공공역역의 역량만으로는 전문성 확보가 어려우며 시대가 요구하는 과업을 적절히 수행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민간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전문성과 유연성을 활용하기 위한 공공과 민간영역 사이의 긴밀한 협력체계가 매우 중요하다. 지역 문화정책 수립에 전문화된 역량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공공영역이 가지는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각 지역은 전문위원회, 문화재단 등 비정부민간기관을 정책집행의 파트너로 삼고 있다. 이들 비정부민간기관은 관 또는 공공역역으로부터 지원을 받되 직접적인 영향력으로부터는 독립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관련 전문가의 적극적 참여와 자율적 결정을 보장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정책이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보유한다. 시민이 문화경영을 주도하고 수요자 중심의 문화시책을 폄으로써, 지역의 문화적 욕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문화지원체계 구현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이와 같은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와 담론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지역은 여전히 안이하고 관성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우기 힘들다. 물론 이러한 회의와 불안감은 문화예술 자체의 반성과 자구노력이 함께 필요함을 우선 전제로 하고 있지만, 동시에 앞으로 좀 더 많은, 확장된 공공적 합의의 장을 통해 말 그대로 지역 문화예술 발전전략의 자생적 토대 마련을 위한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에피소드 하나, 전발연 사건 ; 2005년 2월 이후 문제가 불거진 전북발전연구원(이하 전발연)의 ‘가짜 용역보고서’ 사태를 말한다. 전발연이 제출한 <2004년 전라북도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 평가 보고서> 및 준공계가 실제적인 평가 작업이 전무한 채 전년도 평가보고서를 참조하여 거짓 작성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문화예술단체 및 시민단체의 성명서가 잇따랐으며, 마치 평가에 참여한 것처럼 위조 등재되었던 해당 평가위원들도 책임 있는 조치와 재발방지 등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당시 한영주 전발연 원장의 마지못한(!) 서면사과와 함께 실무 담당자에게 일정한 주의조치를 내린 것을 제외하면 이후 전북도와 전발연은 어떠한 책임 있는 태도도 취하지 않았다.
○ 사실 여기서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시행주체인 전라북도나 용역기관인 ‘전발연’의 불성실한 태도만이 아니다. 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공공기금 운영의 객관성과 합리성, 효율성과 투명성 등 관리, 집행체계 전반에 걸친 심사숙고가 필요했다는 점에 더 중대한 문제의식이 숨어 있다.2)
되짚어 말하자면 우리에게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거나 충분히 숙지할만한 담론의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 그간의 진행과정에서 느낀 필자의 소회다. 여기서 전라북도 문예진흥기금이 가지고 있거나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적시해 보기 위해 이전에 발표한 글을 요약, 인용하여 풀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 ‘2004년도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사업 평가보고서’(이하 문진금 평가 보고서)는 지난 2002년도부터 3회 째 시행되어 왔다. 이 평가제도는 전년도 문진금 지원사업의 실행결과에 대해 해당 분야별 민간전문가를 위촉하여 현장 평가한 후, 당해연도 문진금 지원 심의의 기본 자료로 사용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이 제도에는 인센티브 및 역인센티브 항목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평가 점수가 좋게 나온 단체에는 그 해 10~50%의 지원금 증액이 따르며 역인센티브도 존재하여 10~50%의 감액 처분이 내려진다.
▷ 이 평가 자료-문제의 보고서는 2005년도 문진금 지원을 위한 심의의 기본 자료가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전년도 지원사업에 대한 실제 평가는 전무했음이 밝혀졌고, 결과적으로 보고서는 폐기되었다. 그리고 전라북도는 말이 없다. 그래서, 상황은 끝났는가? 그렇지 않다. 기왕 엎질러진 물이라고 지레 뒷걸음질 하여, 2004년도 지원사업 평가는 불가피 없었던 일로 눙치고 지나쳐도 되는 것인가? (중략) 이제 2005년도 문진금 지원 심의는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배분할 것인가? 기껏 만들어낸 평가 시스템을 무시하고 3년 전, 아무 것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도 좋단 말인가? 자청하여 만들어 낸 제도를 스스로 부정하고, ‘이번 한번만 대충 가자’라고 누가 합의라도 했단 말인가? 그리하여 지원신청 기준 란에 명백하게 쓰여 있는 ‘전년도 평가결과의 적용’ 항목은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한 발 더 나아가 평가와 심의와 지원 주체가 각기 따로 놀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런 식의 문진금 운영이 정말로 지역 문화예술의 진흥에 ‘혁신’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누가 믿는단 말인가? (* 이런 문제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실제 2005년도 지원사업 심의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전년도 평가자료’ 없이 진행, 결정하였다.)
▷ 차제에 다음 년도에는 어떤 평가 방식과 지원 심의의 절차를 작동시킬 생각인가? 600여 개에 이르는 지원단체의 숫자로 보나 10억여 원을 육박하는 기금의 규모로 보나 이게 그리 만만한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 전라북도는 그간 평가사업 시행 원년을 제외하고는 외부단체에 용역을 주어 시행해 왔었다. 올 해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자 다시 전라북도에서 자체적으로 평가위원회를 구성하였지만 그 역시 원년의 의욕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구성을 보인다.)
○ 이외에도 짚어야 할 문제는 많다. 우선 흔하게 지적되는 소액다건주의가 있다. 균등배분이라는, 일견 그럴싸한 호혜평등으로 비치는 무조건적 효율성(?)의 원칙은 실제 예술현장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해내지 못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또 지원 심의의 절대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사업신청서, 즉 행사 계획안의 예술적 질과 규모 및 문화적 파급효과, 실현의 적정성 여부 등의 문제를 가치하락 시키고 불신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다준다. 적당히 작성한 신청서가 적당히 나누는 심의절차를 거쳐 해마다 그저 그런 행사를 적당히 반복하여 치르게 하는 것이다.
○ 그리고 지원 결정 후 실제 집행 내용에 대한 관리 감독과 세밀한 평가 작업들이 필요함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동일 단체가 해당 기획사업의 명칭에 따른 ‘000위원회’를 무수히 양산하며 이중, 다중 지원받는 사례 또한 고질적이다. 또한 현실적인 예술문화의 변화에 맞는 장르 구분의 문제, 즉 지원과 배분 기준의 적합성 여부와 함께 이에 따른 심의위원 구성과 심의 절차의 문제 등이 있다. 우선, 전라북도 문예진흥기금의 심의 기준과 절차가 얼마나 어이없게 간단한 일인지 표2)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심의위원 구성의 문제는 어떤가. 누가, 어떤 경로로 심의위원이 되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각 장르별로 적게는 몇 십 건에서 많게는 200여 건을 넘나드는 신청건수에 심의위원은 해당 분야 1인씩이 할당(!)되는데 그치고 만다. 단적인 예로 들어 말하자면 이렇다.
“2005년도 지원결정 내역의 경우, 시각예술(전시활동) 분야는 미술과 사진으로 구분하고 각 분야 1인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하여 미술은 145건(4억 1,950만원)을, 사진은 17건(5,150만원)을 지원받는다. 심의기간은 1일이며, 지원금액 중 상한선(1,500만원) 지원은 2건, 그 외 대부분은 200~500만원 사이로 지원되었다.” 말하자면 화가(교수) 1인이 하루만에, 서예/건축/공예/디자인/회화/조각/설치 등을 통틀어 150여 건에 이르는 사업계획신청서를 심의, 지원 결정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현상이 다른 분야 장르라고 해서, 다른 종류의 기금지원사업이라고 해서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십여 년의 기간을 이렇게 반복했다. 과연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일인지 되묻고 싶다.
○ 에피소드 하나 더 ; 최근 전라북도는 신청사 이전에 맞춰 지역 미술 분야에 해당하는 두 가지 당근을 던져줬다. 10억여 원에 해당하는 신청사 공공조형물 심의 결정에 대한 지역 미술계의 불만과 원성이 거세지자 도지사께서 ‘오직’ 지역미술인들만의 작품을 구입, 설치하겠다고 3억원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그 하나다. 지역미술인들과의 신춘 회동에서 던져진 이 당근은 기존 보수 기득권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그 타당성과 운용의 적절한 절차와 방식을 명확히 하고자 현재 보류중이다.
또 한 가지는 신청사 로비에 만들겠다는 소위 ‘갤러리’ 문제다. 이는 전북도 고위 관계자를 포함한 몇몇의 즉흥적 발상에 다름 아닌데, 그 성격과 운영 방식, 예산지원의 문제 등으로 미술계 내에서 갑론을박하다가 역시 현재 보류 중이다.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표면적인 현상에 있지 않다. 단지 미술계/미술인들만의 지엽적인 주도권 논쟁만도 아니다. 전라북도의 문화예술 정책이 그 중심으로부터 줏대 없이 표류하고 마는, 단체장의 즉흥적, 선심성 태도들이 담당 실무급에서는 이의도 달지 못하고, 급하게 처리해야 되는 ‘정책적 실천과제’가 되어버리는 데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역 문화예술계의 폭넓은 의견 취합과 발전적인 문화민주주의에의 기대는 찾아볼 수 없으며 장기적 문화발전전략으로의 통합과 배치에 관한 고민의 흔적도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에 더욱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 이러한 현상은 지역 일반, 바로 이곳의 도, 시, 군 단위를 통틀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설립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전주시 문화재단 역시 초기 단계에서 명확한 근거 설정의 부족과 지역 문화예술계 전반의 이해와 요구에 대한 납득할만한 과정의 단계 없이 허공을 떠돈 적이 있다. 전통문화(중심)도시 역시 여러 곳에서 나름의 이견이 제기되지만 한편으로는 일방적인 진행형으로 밀어붙이고 만다. 구도심 활성화를 포함한 (구)도청사 활용 문제에 관한 담론의 흐름 역시 안착을 못하는 형편에 전북도는 또 한번 지역사회의 다양한 여론을 외면한 채 30여 관변단체를 무작정 입주시키고 보는 무사행정을 치러냈다. 시대적, 사회적 변화의 바람을 두려워하지 말자. 지역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역 스스로 변화의 실천을 자생하고 추동하고 내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말 할 것 없이, 문화예술정책은 도시발전전략, 지역발전전략과 그 맥을 같이 하며 근본적 토대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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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김형수(문학평론가)는 이를 ‘생태학적 발상’이라 이름 하여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강이 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선가 샘솟아 나오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도 분명히 생명체를 닮아 있다. 최초의 물줄기가 걷는 모습은 줄을 맞추지 못하는 유치원생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다가 다른 물줄기들을 만나면서 점점 굵어지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 (중략)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무수한 이야기들은 마치 예술의 여러 장르를 은유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발원지에서 갓 솟아나온 예술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보다 문명화된 매체들의 출현에 의해 늘 새로운 장르들을 탄생시킨다. 여기서 신매체에 의존하는 장르일수록 시장의 적응력이 큰 지배적 장르 군(群)을 형성하고 발원지에 속하는 매체일수록 문제적인 장르로 남는다. 그것은 마치 ”사람은 서울로 올라가고 강물은 서울로 떠내려간다!“는 말 같은 모순을 낳으면서 중요성과 선호도를 뒤바꾸어 놓는다. 서울사람들은 하류에 있는 자신들을 위하여 영월, 정선 등 상류의 사람들이 불이익을 겪는다는(더럽히지 않을 책임이 있다)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강의 경우 생산자 중심의 관리에서 소비자 중심의 관리로 전환된다면 부도덕한 정책이 된다.” 발제2. 세계를 향한 고독한 외침 : 이것이 기초예술이다, [문화권 개념 정립과 기본권으로서 문화권 보장의 필요성], 문화연대 外, 2005. 3.
주 2) 2005년도 기준 전라북도 문예진흥기금 운영예산 총액은 12억 600만원(중앙 2억 4,000만원, 도 9억 6,600만원)으로 예정되었고 접수현황은 총 413건, 31억 4,500만원 규모이며 동년 3월에 심의 결정된 지원내역은 총 단체합계 353건, 지원액 합계 11억 2,150만원이다. [2005년도 전라북도 문화관광국 주요업무계획서], 전라북도의회 제출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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