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수의 작업은 다분히 한국적이다?
세번째 유대수판화전. 19980218-0224. 담갤러리
여기서 한국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이미 유통되어져 고착된 한국적 이미지가 아니다. 한국적이라면 우리는 흔히들 전통적 문양, 고궁, 선, 백의민족, 더 나아가 은근과 끈기, 고요함 등등의 것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한국적이라는 것은 전통적 또는 일상적이며 매너리즘적인 한국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는 일반적 인식의 한국적인 것은 다분히 우리의 근대사에 있어서 의도되어지고 관제화된 경향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상황에 기반한 이미지 내지는 상징 등이 수반되어져야 한다. 가장 한국적이라는 용어들이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추상화된 코드로서 한국적 현실 상황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적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특히나 미술에 있어서 한국적 감성이라는 것의 모호성은 이미 정체불명의 상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상징화된 코드로서의 이해가 아닌, 작가 스스로가 한국적 현실에 기반한 삶의 모습에서 비롯된 결과물로서의 이미지 창출이 또 다른 한편에서의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미술에 있어서 우리의 현실은 하나의 갈등 구조를 양산한다. 이 갈등 구조 속에는 두 가지의 것이 한국적이라는 테제를 수반하는데 하나는 전통적 미감 또는 이미 코드화 되어진 이미지를 포함한 기존의 것들과, 현실적 상황 인식에 기초한 작가 자신의 표현 욕구 내지는 그것의 형상화가 갖는 두 가지의 한국적인 것의 갈등이다.
유대수의 작업은 다분히 한국적이다. 유대수는 이 두 가지의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갈등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그 갈등의 심화가 외적 표현 양식에 있어서 일관성의 결여나 통일된 이미지로서의 실패 등을 수반하지만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머지 않음은 그가 젊다는 것 이외에 갈등을 표출해 내는 의지와 노력이 작업에서 뿐만이 아닌 젊은 문화활동가로서의 유대수가 다른 한 축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이은걸/큐레이터, 이십일세기 화랑
*이 글은 <유대수론-암울한 시대와의 갈등>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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