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0-예술인복지법 논고[전북도민일보]
예술인복지, ‘여전히 배고픈’ 예술가를 향한 자기증명의 요구
유대수/(사)문화연구창 대표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예술과, 예술(적인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립과 공유의 굳건한 의지를 이미 갖추고 있다면 이런 구차한 논점은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의 사회적 효용에 관련하여 여간해서는 흔들릴 일 없는 든든한 토대와 체계의 구축까지는 차마 바라지도 않는다. 예술은 그 자체로 당당하고 자유로우며, 무엇보다 난잡하기까지 한 현재의 반 발짝 앞에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진격의 시도를 일삼는 어떤 것이라고 믿는 형편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믿어 온 예술의 ‘자유의지’조차 국가와 자본의 마스터플랜에 속한 미망이 아닌가 하는 의혹은 여전하다. 이런 식의 혐의가 살아 있는 한, 그 예술의 순수와 탐미의 정당성은 끊임없이 의심받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이 말은 예술의 존재 이유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정과 합의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 수준을 어디에 위치시키고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련된 것이다. 또한 예술가들의 지속가능한 삶의 기반, 즉 상상력과 그 상상력의 표현함을 퇴화시키지 않을 최저의 입지 마련과 자존감을 보장하는 ‘사회적 방법’이 왜, 어떤 방식으로 필요한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바로 이 지점에서, 파고들어 따질 것인지 그냥 그런대로 방치할 것인지에 관한 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연후라야 예술에 대한 국가지원의 정당성이나 예술가에 대한 ‘사회보장’이라는 갈피를 얼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실 난감한 문제는 “예술인에 대한 예외적 사회보장제도의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는가(표신중)” 하는 것이다. 일반과 분리되는 특별한 집단-자(者)로 인정하여 예외적 혜택을 제공한다는 발상에 대한 논리적 정당성 획득의 문제 또는 ‘보편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가’라는 가설의 객관적 검증의 문제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비평과 해석과 판단을 구해야 할 것들도 있다. 국가 공인 자격증을 취득해야 예술과 예술가가 성립된다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해 예술가는 관리되며 예술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허용되는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예술가의 열렬함을 곧잘 ‘여전히 배고픈’ 가난함으로 등치시켜 예술 비슷한 언저리나마 웬 떡인가 싶게 취업지원과 재교육과 일자리창출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는 이 참신한(!) 기획에 과연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실존자로서의 인정투쟁에 더하여 관청의 서류철에 끼워 넣을 예술의 자기증명이라는 ‘합법적’ 요구에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운용될 것이므로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결국 취지와 실효를 살피는 일, 따라서 예술의 요구와 예술가의 응대에 답하는 일은 여전히 ‘나’의 몫으로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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