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동학농민혁명 문화사업 활성화 방안> 토론문
유대수 : 지역문화정책연구소 (사)문화연구창 대표
토론에 앞서
‘동백’이 생각난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성대하게 열린 잔치의 한 복판에 있었다. 전주시청 앞 광장에서 치른 공연과 기념식, 전북예술회관을 가득 채웠던 <새야 새야 파랑새야>전. 필자는 전시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공연장에 사용된 대형걸개그림 제작과 민족해방운동사 동학편 재현에 참여했다. 그 만남의 인연으로 지역 미술운동단체가 합쳐 설립한 전북민미협의 일원이 되었다.
문화사업 활성화 방안이라니 문득 옛 생각이 났다. 그 때, 시청 건물을 뒤덮을 듯 웅장했던 그 걸개그림들은 어디 갔을까? 황토현전적지를 걸을 때 모듬별 선두에 섰던 김개남, 전붕준의 초상들은 어디 있을까? 공연들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전에 출품되었던, 젊은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었던 예술혼 서린 대작들은 어디서 잠자고 있을까? 18년을 훌쩍 보낸 지금, 작가들조차도 생살과 같은 작품 관리가 쉽지 않다.
1994년 동학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한 그림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제목은 "상주성도-민들레" 원작은 어떤놈이 훔처가고 사진만 남아 상주동학관련 자료집표지, 포스터등에 실리기도 합니다.
http://cafe.daum.net/gong-gum/JAqN/21?docid=1KbPzJAqN2120101003173510
‘문화(예술)을 활용한 사업하기’ 전에 문화적으로 사업하기
장세길님의 글에 의견을 덧대기 전, 앞의 얘기를 꺼낸 이유는 동학과, 정읍과, 문화예술을 연결하기 위한 고민의 바탕에 “문화사업”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를 말하고자 함이다. 역사의 진실은 ‘사실’과 다르거나 기억은 ‘기록’과 엇갈리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떠나 적어도 필자가 경험한 20여 년 어림의 시간 속에 쌓인 진실과 사실들, 기억과 기록들이 어딘가에 ‘문화적인 방법으로’ 정리되고 보관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의 연구와 쟁투로 글 자료는 넘치게 많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1968년 4월 이후, 수없이 개최된 기념사업과 문화축제의 이미지 기록은 어떻게 정리되고 있을까? 어디 있을까? 사라진 것들도 많을 텐데. 이미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존재하지만, 그에 더하여 좀 더 풍부한 아카이브가 쌓이는, 발제자의 말마따나 세계 혁명의 이미지와 텍스트가 모이는 라키비움,1) 응집처가 ‘정읍’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토론과 제언
가능성과 규모 등 제반 여건에 대한 섬세함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단지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카테고리만이 아니더라도 역사, 문화, 장소에 대한 기념 방식과 행사 방식의 단선적 접근과 일회적 태도에 대한 회의를 표하고 획기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은 한국 사회 일반에 넘쳐난다.
그런 의미에서 발제자의 문화사업에 대한 이해방식과 제안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요약하면, 동학에서 혁명으로, 지역에서 국제로, 특정일에서 상설로, 기념에서 일상으로, 황토현에서 정읍으로, 사건에서 인물로 등이 그것이다. 특히 관행적인 수직적 모뉴멘트-기념 방식의 경우 순환되는 수평적 일상으로 되돌릴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1. 동학농민혁명 관련 문화행사 현황에서 언급한, “공연을 제외한 예술장르는 뚜렷한 활동 없음”에 주목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동학농민혁명의 ‘시각화’2)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상설화’가 필요하다. 당연한 말 같지만 실천하기가 쉬운 건 아니다. 이 말은 대개의 ‘박물관’ 형태를 염두에 둔 게 아니다. 시각예술 분야 비엔날레 형태 또는 오픈스페이스에 설치되는 예술공원 형태를 상정한다.
2. 발제자의 제안대로 정읍이 혁명사의 집적지가 될 수 있을지 자신하긴 어렵다. 그러나 시도할 가치는 있어 보인다. 일단은 전국적 이슈화를 통해 점진적인 국제화가 필요할 것이다. 차별화를 염두에 둔다면, 과거의 재현보다는 당대의, 지금 여기의 사고와 관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 실천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적 계승’, ‘현실의 실천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결국 문제는 ‘공간화’와 ‘시각화’에서 풀어야 할 것으로 제안하고 싶다. 방법적으로는 시각화 제시를 통해 스스로 공간이 조성되는 단계를 밟아야 할 것이다. 발제자가 제안한 ‘(가칭)혁명예술의 숲’이 그와 같을 것이다.
3. 한국사회 현실에서, 비록 예시이긴 하지만, 정읍이라는 기초지자체 입장에서 <FTA 반대를 위한 전국농민대회 개최>가 가능한가? 역시 문제는 ‘공간’이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듯이, 공간이 제시되면 사람들은 그 공간을 사용한다. 공간 안에서 논다. 정읍시가 예술적인 ‘역사생태공원-지역 통째로 박물관’ 같은 공간을 만들어 주면, 전국농민회가 ‘세계농민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4. 록페스티벌은 현실적으로 타당한 제안이다. 하지만 인천의 펜타포드 경우, 재정적 문제와 여러 조건 속에 악전고투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여기서 문제는 국비 확보인데, 현존하는 록페스티벌들 속에서 하나 더 추가되는 동종 행사에 국비 지원이 원활할까 하는 우려가 든다.
5. 상설 브랜드공연 경우, 콘텐츠에는 찬성하나 덧붙일 게 있다. 역시 ‘공간’인데 현재의 정읍사예술회관으로는 벅차다는 생각이다. 객석규모는 맞춤하나 전문인력의 확보가 우선되어야 하며, 논의에 따라 별도의 상설공연장을 건립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혁명예술의 숲’과 함께 하는 공연장으로 말이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공연장 정도 규모의 노천극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6. 지역 활성화 콘텐츠 사업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발제자의 제안처럼 문광부 및 전북도의 지원사업을 포함하여, 전북도내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정읍을 거쳐 가도록 연계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7. 혁명미술관 건립 제안이야 필자 스스로 미술가 출신인 탓에 적극 환영한다. 정읍만이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위치 선점과 가치 부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것은, 서두에 언급한 집적, 보존, 관리의 문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게 집적, 보존, 관리되지 않고 가공, 연출은 불가능하고, 생산과 유통-소통은 난감한 과제가 된다. 새로운, 창조적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우리의 지난 발걸음을 되짚고 거둬들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리하면, 정읍의 자연-생태 환경과 함께 펼쳐지는 열린 공간 조성, 아카이브의 집적(기존 자료에 더하여 특히 시각조형화 부분에서), 이를 바탕으로 한 점진적인 세계 혁명사, 민중사, 예술행위와 결과물들의 축제-장터 기획이라는 단계적 흐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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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Larchiveum, Library+Archives+Museum을 결합한 개념, Megan Winget 텍사스대 교수, 2008
주2) ‘시각화’는 미술작품에 국한하지 않는다. 사진, 영상을 당연히 포함하며 모뉴멘트는 물론 텍스트, 행위, 연구저술들까지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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