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바라보다 -유대수 판화가의 일곱 번째 개인전에 부쳐
김정경/시인
사내는 난로 옆에서 국화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문 밖에는 벚나무 꽃잎 같은 함박눈이 내리고 그의 작업실에는 때 아닌 꽃이 계속해서 피어났다. 304개의 꽃송이라고 했다. 세월호 희생자의 목숨 대신 나무에 새긴 꽃이었으나, 이번 전시회 기간에 맞춰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구부정한 어깨 너머로 사내가 바라보았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에 밟혔던 일상의 풍경과 사람들이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을 닮은 종이 위에 찍혀 있다. 그의 발밑에는 꽃이, 눈앞에는 나뭇가지가,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틈으로 바람이 불어들고 때로는 사람들이 그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왔다가 나갔었나 보다.
손끝에 칼을 쥔 자가 살려낸 것들이 보인다. 담쟁이와 국화 꽃숭어리들. 한담을 나누는 추동마을의 노인들과 동료화가들과 동문네거리의 일부인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산 것들이 눈물겹도록 눈이 부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세상에 건넬 말이 별로 없었던’ 사내가 손으로 빚어낸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는 맨드라미보다 더 붉은 눈으로 떨어진 꽃잎(‘바라보다, 맨드라미’)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무릎을 꿇고 꽃무릇(‘바라보다, 꽃무릇’)의 안과 밖을 살폈겠다. 어떤 날에는 ‘새벽강’에서 술에 취해 잠든 벗의 곁에 자신을 오래오래 앉혀 두었으리라.
허나 끝내 새길 수 없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몇 년 사이 속수무책으로 많은 사람을 잃었다. 배에서, 크레인 위에서, 망루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이라고 믿었던 바로 그 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많다. 모두가 살기위해서 안간힘을 썼으나 살 수 없었다. 사람답게 사는 일에는 사람답게 죽는 것 또한 포함된다고 했던가. 생의 참혹을 견디는 방식으로 사내는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일상에서 그가 어루만지는 작고 소소한 물건에서부터 곁에 있던 이들까지 어느 때보다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그래서 담담하고 무심한 듯한 그의 작품들이 온기를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내가 스스로를 하나의 바깥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나무의 ‘안’을 파내면 ‘바깥’이 만들어진다. 그 ‘바깥’을 종이 위에 찍으면 비로소 ‘안’이 드러난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우리 역시 누군가의 배경이면서 자신에게는 중심이니까.
사내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사용하던 낙관 말고 새로운 낙관을 새겼다. 글씨대신 한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었다. 늘어진 가지가 제법 낭창낭창하다. 겨울의 긴 밤들이 지나가고 쌓인 눈이 녹으면 봄이 된다. 봄에는 얼었던 가지마다 싹이 돋아날 테고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칼처럼 순한 바람이 불어들겠지. 그러면 그는 다시 좁은 작업실에 웅크리고 앉아서 죽은 나무의 몸에 산 것들의 마음을 새겨 넣을 것이다.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그런 그가 있어서 지금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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