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윤슬 4월호>
전주가 보이는 이 한 장의 그림 - 동창(東暢) 이경훈(李景薰)의 ‘다가공원에서 바라본 풍경’
유대수/판화가, (사)문화연구창 대표
예부터 풍부한 서화 전통으로 자타 공인 예향의 도시라 불리는 전주에는 근현대 미술의 역사를 열어간 인물들이 많다. 그중 전북 근대화단의 1세대로 꼽는 이순재(李舜宰), 박병수(朴炳洙), 김영창(金永昌)에 뒤이어 동경제국미술학교에서 신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동창(東暢) 이경훈(李景薰, 전북 남원生, 1921~1987)은 이미 고보시절 전국학생미술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재능을 과시했고, 1943년 귀국한 뒤 전주에 정착하며 활발한 창작과 발표활동에 매진한다.
1947년 이리(익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개최하는 이경훈은 6.25전쟁중 종군화가로 참전하기도 하고, 작품이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는 불운을 겪기도 하지만 1952년 전주에서 전국 문화예술인총연합회 전북지부 미술부를 조직하고 미술부장을 역임하기도 한다. 또한 1954년 신상회(新象會, 이경훈이 주축이 되고 권영술, 김용봉, 김현철, 김용구, 문윤모, 소병호, 이복수, 이병하, 천칠봉, 한소희, 박두수 등이 참여)를 결성하여, 전쟁으로 피폐하고 암울한 환경에서도 창작의 열기를 높이며 서울 화단의 흐름에 못지않게 지역의 풍요로운 미술적 역량을 다지는데 힘을 쏟는다.
이경훈의 그림은 주로 인상파적 화풍과 표현주의적 특징이 섞인 향토색 짙은 작품을 거쳐 종교적 의식과 결합하면서 구상적 사실주의를 고수하는 자연주의 화풍으로 자리 잡는다. 인문적 대상으로서 어떤 감정의 서사가 보이지 않는 정지된 풍경으로부터 화가의 심리적 기제를 반영한, 구체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을 곧잘 표현해내는 이경훈의 이러한 자연주의적 감각은 1960년에 그려낸 <다가공원에서 바라본 풍경>에서 잘 드러나기도 한다. 전주를 살다 간 많은 예술인들의 작품 속에서 당시의 실제 도시 풍경을 만나보기란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이 그림은 의미가 크다.
1960년의 전주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그림은 다가공원 정상에서 남고산 쪽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가까이는 기와지붕들이 나지막이 깔리고 점차 멀어지면서 풍남문과 전동성당이 보인다. 그 사이, (아마도 관청이나 공장이었을) 빨간벽돌 건물이나 굴뚝들이 끼어들면서 무심할 듯한 화면에 색채의 변화를 주는 것과 함께 수평의 단조로움을 깨는 시선의 자유로운 흐름도 유도해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승암산 너머 연푸른색으로 길게 펼쳐진 산줄기가 완주 구이 방향에 있어야 할 모악산을 닮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보이지 않아야 할 커다란 산줄기가 널찍한 하늘을 양분하며, 마치 도시를 감싸는 병풍처럼 펼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차분하게 가라앉은 정제된 색채로 구성된 사실적 풍경이되, 단지 보이는 부분과 각도만을 다루는 좁은 시야를 벗어나 공간의 경험이 광역으로 확산되는 화가만의 독특한 인지감각이 덧대어진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참조 및 인용; 동창 이경훈 20주기 유작전 기념 작품집, 2007, 신한갤러리.
[요약]
1960년의 전주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그림은 다가공원 정상에서 승암산 쪽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가까이는 기와지붕들이 나지막이 깔리고 점차 멀어지면서 풍남문과 전동성당이 보인다. 그 사이, 빨간벽돌 건물이나 굴뚝들이 끼어들면서 무심할 듯한 화면에 색채의 변화를 주는 것과 함께 수평의 단조로움을 깨는 시선의 자유로운 흐름도 유도해내고 있다.
<동창 이경훈(1921~1987)作, 다가공원에서 바라본 풍경, 1960,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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