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바람, 풍류도시 전주에 이는 문화 신바람
유대수/전주부채문화관 관장, (사)문화연구창 대표
부채의 영어 표현인 ‘Fan'은 팬레터, 팬클럽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열렬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함께 사용되는데, 그 어원이 고대 이집트 시녀들이 여왕을 위해 시원한 바람을 제공하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류 문명의 발달 속에서 찾아지는 부채의 역사는 매우 깊다. 기원전 2500년대, 옛 인도에서 승려들이 동물의 꼬리털을 활용하여 만든 날벌레를 쫓아내던 파리채와 같은 형태의 불자(佛子)라는 도구가 인더스 문명 유물에서 다수 발견되어 이를 부채의 원형으로 파악한다고 한다. 또한 기원전 2000년대 소아시아 지역 최초의 통일국가인 히타이트(Hittites)왕국의 부조(浮彫)들에 부채가 등장하고, 기원전 1500년대 고대이집트 신왕국시대 벽화에 긴 자루로 된 종려나무잎 부채를 들고 왕을 수행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동양에서 부채의 기원은 중국 요순(虞舜) 시대로 올라간다. 중국 진(晉)나라의 학자 최표(崔豹)가 남긴 고금주(古今注)에 의하면, 순임금이 즉위한 뒤 널리 현인을 구하여 문견을 넓히고자 오명선(五明扇)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으로는 고구려시대 안악3호분 벽화에 깃털부채 그림이 등장하고, 삼국사기-견훤전(甄喧傳)에 918년 고려 태조가 즉위하자 견훤(甄喧)이 하례품으로 공작선(孔雀扇)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접선(摺扇), 즉 우리의 합죽선과 같이 종이를 발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부채의 경우, 세계 최초로 고려시대에 발명하여 중국과 일본 등에 전파되었다 하니 우리의 부채문화야말로 참으로 자랑스럽고 소중하기 짝이 없다 할 것이다.
“그러닝게 우리 선조들이 아조 대단한 멋쟁이들이었지요. 부채 한 자루도 그냥 맨들지를 안허고, 그것을 즐길 줄 알았거든요. 풍류의 운치가 있었응게요.”
물어물어 뙤약볕에 일부러 찾아간 전주의 한쪽 모퉁이 동네 파밭 너머 부채촌에서, 오직 부채를 만들며 살고 있는 선장(扇匠)은 그렇게 말했었다.
소설 <혼불>로 유명한 최명희의 ‘둥그런 바람’이라는 수필 한 대목이다. 부채 한 자루에서도 풍류를 말하고, 풍류를 제대로 즐길 줄 알았던 곳이 곧 전주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전주에서 바람을 다스리고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곧고 단단한 대나무가 많았고, 질 좋은 한지가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전주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과 장인 정신이 결합하였으니 전주 사람들의 마음에서 발원하여 대나무 살과 전주 한지의 날개를 타고 뻗어나가는 바람의 기세가 남달랐을 것이다.
"여름 생색은 부채요, 겨울 생색에는 달력이라"는 속담이 있다. 예로부터 더위가 시작되는 단오(端午)에는 으레 부채를 선물하는 것이 주요한 풍습이었다. 전주시민의 날이자 전주난장이 펼쳐지던 때도 단오인 것을 생각하면 전주는 부채와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이 있는 셈이다. 또한 조선시대 옛 전라감영터에 자리했다는 선자청(扇子廳)에서 제작된 전주부채는 단오에 임금에게 진상되는 ‘명품’으로 인정받아온 터다.
전국적으로도 전통 기술을 보유하고 부채를 제작하는 문화재급 장인의 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몇몇의 부채 수집가를 제외하면, 우리 전통부채의 명맥을 오롯이 이어가는 6명의 선자장과 8명의 부채장인이 모두 대를 이어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가히 전주를 부채의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러한 연원에 힘입어 전주한옥마을 내에 전주부채문화관이 설립된 지 올해로 4년째다. (개관 2011년 10월) 전주의 풍류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 전통문화의 하나로, 세계문화유산인 판소리를 들을라치면 명창-소리꾼의 유일한 소품으로 어김없이 등장하는, 바로 그 부채의 역사와 예술성과 현대적 변용의 활로를 찾아 모으고 쌓아가는 곳이 전주부채문화관이다. 완판본, 소리와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한옥마을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전주문화를 소개하는 대표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전주부채문화관은 부채의 전통성만이 아닌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와의 교류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새로운 문화바람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주부채 신바람에서 한국문화 新바람으로”라는 비전에 한 걸음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요새는 누가 누가 부채를 부치간디요? 모다 성질들이 모질고 급해서 빠르고 자극적이어야 허닝게 이까짓 부채 바람 가지고는 양이 안 차지요. 허나 사람 몸이고, 성질이고, 세상 사는 일이고 간에 자연을 거슬러서는 못쓰는 법이지요. 서로 기운을 달래고 북돋우고 어우러짐서, 다스리기도 하고 이겨내기도 하는 것이 순리 조화지요. 안 그러면 어디가 상(傷)해도 상합니다.”
앞에 인용한 최명희 글의 또 다른 한 대목이다. 요즘이야 선풍기, 에어콘 등 현대문명에 밀려 부채의 소용가치는 많이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 한복판에 부채 한 자루 들고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을 자아내는 용도 이외에 햇빛을 가리거나 음미할만한 경구와 시, 그림 등을 담아 항상 지니고 다니며, 부채살을 제외한 선면화(扇面畵)로 산수, 화조 등을 표현하고 표구하여 실내를 장식하기도 한다. 최첨단 기술문명의 편리함이 우리 삶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날로그한 문화적 생활의 여유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게 또한 현대인의 생활상이다.
실용성과 장식성, 화려한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우리 부채, 전주부채의 은근한 멋과 풍류를 기꺼이 즐겨보자. 전주는 슬로우시티다.
*이 글은 일부 수정되어 2015년 4월호 소리전당 소식지에 칼럼으로 실린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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