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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전주윤슬] 5월호 - 전주를 살다 간 미술가 – 고암(顧菴) 이응로(李應魯) 20230501.

by PrintStudio86 2023. 9. 8.

20230323. 전주윤슬 5월호

전주를 살다 간 미술가  고암(顧菴) 이응로(李應魯)

유대수/판화가, ()문화연구창 대표

 

1920년대를 전후하여 양화(洋畵)의 도입이 서울 지방을 가리지 않고 넘쳐나는 가운데 전주 역시 서울화단 못지않게 수많은 신미술 화가를 배출한다. 그 중 충남 홍주(현재 홍성) 태생으로 전주에 내려와 살면서 많은 서화가들과 교류하며 초기 화업을 구축한 미술가로 고암 이응로(顧菴 李應魯, 1904~1989)가 있다.

동아시아 서화 전통을 활용해 현대적 추상화를 창작한 한국 현대미술사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응로는 1922 19세에 해강 김규진의 문하생으로 본격적인 미술가의 길을 걷는다. 1924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청죽>이란 작품으로 첫 입선을 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응로는 다음 해에 스승으로부터 독립하여 표구점과 종로4가 동일당 간판점에서 1년 남짓 일하다가 1926, 23세 되던 해 전주 중앙동(4 25번지, 현 전라감영지 서편, 전주보건소 앞길)에 정착하여 개척사(開拓社)’라는 점포를 열고 생업을 잇는다.

전주 시절의 이응로는 간판점을 운영하면서도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호남 지역의 서화가들은 물론이고 대전공주 등 충남 일대의 서화가들과도 늘 교류하였다고 전해진다. ‘신사구락부라는 모임을 조직하는가 하면, 틈만 나면 효산(曉山) 이광열(李光烈) 댁에 드나들면서 친숙한 사이로 지냈다고 한다. 이응로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이광열은 고암보다 19세 연상으로 서예와 사군자로 조선 화단의 중견작가였으며 또 다른 전주 출신의 유당 김희순과 함께 근대기 전북 미술을 지탱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20대에 전주에 정착한 이응로가 개척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개인전까지 개최한 데는 이광열을 중심으로 학인당을 찾던 여타 지역 유지들,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큰 힘이 되었으며, 전주 개척사를 정리하고 일본으로 떠난 후에도 전주에서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이광열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졌다고 전한다. 한편 전북 근대미술의 시작점으로 꼽는 동광미술연구소(1945~1949)’와도 교류하여, 일본미술전문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돌아와 전북 최초로 선전에 연거푸 입선(1928, 1929, 1931)하기도 한 이순재(李淳宰, 1904~1958)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1933 11, 전주 공회당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응로는 1935 32세 되던 해 전주 출신 박귀희와 결혼했다. 조혼한 첫 아내는 이 무렵 사망했다. 박귀희는 이응노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고 조카들을 포함해 대가족이었던 집안을 꾸려나가며 이응노가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전한다. 이후 새로 인연을 맺은 박인경(朴仁景) 1940년대 말부터 이응노의 새로운 반려자로 이응노의 삶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족과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난 게 33세 되던 해인 1936년이니, 이응로가 전주에 머물며 간판점 운영과 함께 미술활동을 한 것이 10년에 이른다. 일본, 프랑스 등 본격적인 해외 체류 시절 이전 젊은 이응로의 꿈이 전주에 쌓여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추상화단의 거장으로 존경받는 이응로가 전주와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전북의 서화향(書畫香)을 품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전북 근대미술 자체가 한국미술사를 논할 때 제외할 수 없는 튼실한 바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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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이응노미술관 누리집(leeungnomuseum.or.kr)

전북미술약사, 이용엽, 2007.

홍주일보, ‘그림 그리며 생계 절실했던 고암, 간판집 사업도’, 2014. 06. 20.

유대수, ‘전북판화30, 다시 판화전> 기획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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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동아시아 서화 전통을 활용해 현대적 추상화를 창작한 한국 현대미술사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암 이응로(顧菴 李應魯, 1904~1989)가 전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26 23세 되던 해에 전주 중앙동에 정착하여 개척사라는 간판점을 차리면서부터다. 전주 시절 신사구락부라는 모임을 조직하는가 하면, 조선 화단의 중견작가로 존경받던 효산(曉山) 이광열(李光烈)과 전북 근대미술의 시작점으로 꼽는 동광미술연구소(1945~1949)’와도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1933년 전주 공회당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1935 32세 되던 해 전주 출신 박귀희와 결혼했다. 가족과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난 게 1936년이니 이응로가 전주에 머물며 간판점 운영과 함께 미술활동을 한 것이 10년에 이른다. 일본, 프랑스 등 본격적인 해외 체류 시절 이전 젊은 이응로의 꿈이 전주에 쌓여 있는 것이다.

 

<이응로, 문자도, 35x24.5cm, 목판화, 연도미상.>

 

<파리 시절, 프랑스 학생과 그림 수업중인 이응로 화백 @이응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