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그때, 예상치 못한 책 선물을 받고 나는 약간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법 오랜 시간 묵히고 삭이며 뒤척이던 속마음을 들킨 기분, 내가 두어야 할 자리에 상대방이 돌을 내려놓는 순간 울리는 청명한 따악 소리에 화들짝 놀라 괜히 살갗이 오들거리는, 그런 기분.
‘투쟁 영역의 확장(미셸 우엘벡)’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투쟁 영역을 극단적으로 축소해버린-하고자 했던 나에게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투쟁’이나 ‘영역’이나 간에 어디서 무엇을 어느 정도로 축소하고 확장할 건지 명확히 정리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
어쨌거나 약간 진지해지고 약간 불쾌해하면서도 생각을 멈출 순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토론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문자답의 대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므로.
하나 더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뒤따라 산길을 내려오던 그녀의 묵묵함이 마음에 걸려 어찌 아무 말이 없느냐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걸으면 더 좋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나에게 그녀는 외려 더 먼 쪽으로 눈길을 던지며 별일 아니라는 듯 툭 답을 던졌다. “지금 숲과 대화 중이잖아요.”
그 후, 나는 그 말을 이제 그만 떠들고 차분히 생각 좀 하고 살라는 의미로 변형시켜 기억하게 되었고 그 탓에, 고요하게 가라앉아 삭삭거리던 그때 그 숲의 아득함에 관한 감정을 지금껏 되새기고 있다.
생각해보자. 숲은 많은 것들이 촘촘하게 쌓여 가득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느낀다’는 건 정말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충만하게 비어 있는 것’이라고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약속들, 지식들, 체계와 습속, 관계, 질서 따위의 강박에 더하여, 도망칠수록,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이 가득하고 텅 빈 공간에서, 부족함 없이 존재하기 위해, 세계의 구성원으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더 갖춰야 견뎌 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 다른 사람의 생각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것이 숲의 시간을 탐닉한 이유라면 이유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려 할 때, 즉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라고 부탁할 때, 화자는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말할 것이므로, 그는 이미 생각의 세계를 떠나 언어의 세계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언어의 배열을 검토할 뿐.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 생각의 온전함이 드러날 리도 없거니와 당신의 생각에 어떤 파급이 미칠 리도 없으니 안심하길. 안심하고 생각하길.
어쨌든 무슨 상관인가. 지금 여기가 거기다. 그러니, 숲에서 잠시, 오직 생각에 잠겨보기를. 누군가의 생각을 들으려 하거나 나의 생각을 말하려 하거나 식의 생각은 하지 말고, 의미 있거나 의미 없거나 하는 간추림도 생각할 것 없이, 그저 그때 거기서 떠오르는 생각에만 빠져보기를.
2019. 1. 17. 남천교를 바라보며 적다. 유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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