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미술연구소 - 설립을 제안하며.
19970310. 유대수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당대의 사회현실 속에서 '문화지형의 변화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라는 점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이 문제는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미술, 미술행위가 곧 '문화적 형태'의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도대체 우리가 '미술'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라는 고민 속에 있을 때 그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지형의 변화를 읽어낸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한 시대의 정치, 경제, 역사, 철학의 다양성과 변화의 폭, 대중의 감수성, 그 이해의 폭 등등을 읽어 낸다는 것-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한 상황에서의 소위 '미술'이 제대로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이 너무도 명백하다.
비슷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한가지 더 문제 설정을 해 본다면, 바로 우리의 현실적 삶 속에서 '미술'이 가지는 힘과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다. 사실 이런 문제에 관한 논의는 가끔 애매모호하거나 황당무계한, 사변적인 주절거림 속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런 예술가(?)의 독선으로 정리되거나, 막연한 감으로 이루어진 사회, 정치적 비판대 위에서 '문화읽기'라는 명분 좋은 핑계 속에 동네북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수많은 고민과 혼란 속에서도 미술의 진정성을 되찾기 위한-참다운 작가, 진정한 미술가로 성장하기 위한-노력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늘상 얘기되어져 왔다.
우리는 그것을 '미술'이 가지는 대사회적 역할과 바로 예술가 자신에게로 미치는 역할로 구분하여 얘기해 보자. 7,80년대 분단한국의 사회, 정치적 변혁기 속에서 미술은 무엇을 지향했는가? 90년대라는 이데올로기 혼란의 시기에 또한 미술은 어디에 있었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기다렸는가? 여기에 먼저 답하는 것만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만들어 내는데 대한 준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는 그러한 '미술'이라는 것이 바로 나의 삶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지며 나의 삶을 어떻게 규정짓느냐 하는 것이다. 역사와 현실을 아무리 잘 꿰뚫어도-미술적으로든, 아니든 간에- 그것이 나의 삶 속에 제대로 용해되지 않고 책 속의 고귀한 말씀으로서만 존재한다면 그것을 어디까지 '미술'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자신의 '미술'은 자신의 삶의 실천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미술'이다.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신중하게 털어놓지 않고서 그 이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한발 더 나아가 바로 오늘의 참다운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알아놓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술'은 해결이 불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본 청년미술연구소의 창립을 제안하고자 한다. 뜻 있는 미술인들의 많은 조언과 질책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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