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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

[전시] 몽유남천-15회 개인전 20210909-1003

by PrintStudio86 2021. 8. 27.

 

 

[보도자료]

제목: <몽유남천夢遊南川> 유대수 목판화전열다섯 번째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초대전

기간: 2021. 9. 9.() ~ 10. 3.()

장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장 2

주최: 전라북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학교법인 우석학원.

후원: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작가와의 대화: 2021. 9. 11.(). 오후 4. 본전시장

관람시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입장마감: 오후 5)

휴관일: 매주 월요일 및 추석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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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사유에서 자연과 자아의 관계성으로

단독자로서 인간 고독과 사유를 판각의 치밀함으로 형상화한 심상 풍경

 

판화가 유대수의 열다섯 번째 개인전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하 소리전당) 전시장 2층에서 99()부터 103()까지 진행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몽유남천>을 주요 테마로 삼은 신작 40점을 포함하여 지난 <> 시리즈 등 100여 점에 이르는 목판화 작품을 선보인다.

 

소리전당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초대된 이번 전시는 지역 미술계에 보기 드문 중대형 목판화 창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얼핏 전통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화면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을 수행적 태도로 형상화한 심상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의 화제畫題 <몽유남천>은 조선 전기,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모습을 3일 만에 그려냈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차용한 것이다. 작가의 생활터이자 작업 공간이 있는 전주 남천 일대를 거닐며 마주친 다양한 풍경과 사람들, 예술 정신과 삶의 현실성에 대한 사색을 교차 연결 짓는 자아 성찰의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자연세계의 무한지경과 인간적 삶의 현재성을 뒤섞어 통찰하고 있는 유대수의 화면은 일종의 적인 요소로 자아와 세계의 통일,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깨달음과 같은 상태를 간구하는 것으로, 현대적 인문산수라 부를 만한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신작 <몽유남천> 연작은 이전 <> 시리즈에 이어 무수히 반복되는 세밀한 판각과 함께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필획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미지를 뒤집어 옮겨 그리는 전통 판화기법을 벗어나 판목에 직접 먹그림을 그리고 새겨나가는 유대수의 작업방식은, 화려한 기교나 꾸밈보다는 있는 그대로 호흡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오랜 시간 노동을 바탕으로, 필획과 판각이 한 몸으로 어우러져 단순 명쾌하지만 수많은 서사를 품어내는 회화적 흥미를 유지시킨다.

 

이번 전시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복잡한 듯 단순하며, 가득 차 보이지만 무한한 미지의 공간을 연상시키는 대형 목판화 작품들 앞에서 단독자로서 인간과 사회, 삶의 존재 의미를 함께 탐색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유대수 판화가는 전주에서 출생해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하고 전북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전주서신갤러리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기획자로 활동했으며 15회 개인전을 열고 80여 회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전주한옥마을 남천변에 대수공방을 열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소리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유대수 목판화 초대전 <몽유남천>은 소리전당 전시장 2층에서 99()부터 103()까지 진행되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매주 월요일과 추석 당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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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몽유남천夢遊南川

남천을 바라보는 남쪽 창이 넓은 곳에 자리 잡은 지 꽤 되었다. 여전히 꿈이 일상을 앞서고 도착지도 귀향지도 없는 걸음만 허공에 떠 있다. 벚꽃 흐드러진 줄 모르고 물기 없는 방천에 뒤집힌 풀만 헤아렸다. 눈앞에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알면서도 그런다.

 

그렇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날들이 많아지고, 아무 짓도 하지 않는 날들이 많아지고, 생각이 생각을 덮어가며 모양도 뜻도 없어지고, 그런 식으로 방탕한 꿈만 남았다.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그냥 . . 그런 것들로 시간을 잇다 보면 어찌 되겠지. 그랬다. 괜찮다. 하염없는 일인 줄 진즉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연인이 있듯이, 그들에게는 역시 자신만의 철학자가 있는 법이다.” - 철학 vs 철학, 강신주.

 

그렇군. 그럴 수도 있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꼭 무엇이 아니어도 되는. 꼭 무엇일 것까지야. 그렇게 믿기로 했다. 차곡차곡 쌓이고 또 지워지는 시간들. 또렷한 기억이라고 믿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글쎄 그렇다니까. 기억은 없는 편이 낫다. 말보다 기억보다 비의 속도가 빠르니까. 빠르게 젖은 몸이 기울어지고 지친 말들의 시간 속으로 비가 온다. 그렇다. 떠날 때는 몰랐다. 결국 도착한다는 것. 모두가 꿈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판화는 판화다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했다. 멀고 가까운, 흐릿하고 선명한, 빛의 흐름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만들어진, 마치 진짜처럼 보이는(‘처럼 보인다는 말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보이게 하는, 환영의 연출이 지겨워진 탓이다. 이를테면 서술의 전형성이 싫었던 것이다. 진짜는 어디 있는가. 도대체 무엇이 사실이란 말인가. 나는 뭘 하고 싶어 하는 거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뭐 그런 것들.

 

그렇게 된 일이다. 납작하고 평평한. 더 깊이 없이. 낯설게 겹치는. 색깔 따위는 무슨. 얼핏 아무것도 아니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 채우거나 비우거나 마찬가지.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것들. 그냥 그렇게 멈춘. 아직 결정되지 않은 구조 혹은 공간. 무엇이었다가 다른 무엇이 된들. 조금 더 평평하게. 조금 더 아무것도 아닐 때까지. 그런 상태.

 

적절한 신체의 투입. 복잡한 기교나 꾸밈보다 있는 그대로의 호흡으로. 노동. 의미 없이 수집되고 진열된 휴식. 대체되고 반복되는 현실에 대한 짜증과 미련.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기억.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것들. 애당초 불가능한 구조의 환영을 반복하다 헤프게 웃고 돌아설. 결국 생의 전 과정을 거슬러 첫 자리로 돌아가 누울. 원래 너는 무엇이었느냐. 그래봤자 이미지. 그래도 이미지. 그런 상황.

 

앞에 놓인 단독자로서 인간 고독과 사유를 판각의 치밀함으로 은유하여 드러내고 있다.” -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SNS 소감 중에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판화는 판화일 뿐 굳이 다른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고 정리했다. 내 몸과 칼끝과 나무의 표면장력에 솔직해지기로 했을 뿐. 그 외에 다른 뜻은 없다. 그나저나 그림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 그림을 그린다. 그것참. 여름이 간다.

 

아무것도 아닌 그것

세상이 엉망이다. 누구의 잔도 아닌. 떠도는 예술. <관성慣性 -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자체가 우주에서 자연스러운 운동이기 때문에 물체 자신이 자신을 멈출 방법은 없다.> 그렇다. 그러므로 예술은 아직-최종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어떤 것이라고 이해된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의미도 구체적으로 탐한 적 없다. 그래도 흔적은 남고 집착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는 원래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뒤엉켜 마치 무엇인 것처럼 형과 색과 위치와 방향에 집착한다. <미망迷妄 - 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맴.> 그렇다. 나의 호흡, 몸의 뻐근함, 걸어온 길, 언뜻 스친 그림자, 이를테면 풍경-.

--숲이 각자 존재의 역할에 충실하되 서로 관계하고 연결되며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결론은 과정의 합. 그것은 과거이자 미래이고 동시에 나를 둘러싼 현재다. 또한 안과 바깥, 이쪽과 저쪽이 없는 무한의 우주이자 사람-삶의 복잡다단함을 품어 이끄는 대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이 모든 것이라면 세계는 그럴듯한 것들-상황의 종합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 밖에서 세계를 응시하는 방법에 대하여 의견을 나눌 수 있다,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들은 저마다 확고한 태생이 있으나 도착점은 없다. 직진을 거듭하다 앞과 뒤, 넓이와 깊이를 잃고 두께도 없이 아주 납작하게 거처를 잃고 결국 뜻을 잃는다. 사건을 무화시키는 평평한 상황만이 남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도리 없이 결과로 남은 것. 아무것도 아닌 그것. the thing which is nothing.

 

조만간 사라질 것들이 많다. 그럴듯한 이유도 많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좀 더 멀리 떨어져 있어 보기로 했다. 오후 2시다.

 

- 유대수/ 20219, 남천이 바라보이는 남쪽 창 그늘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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