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 Column

20200222. 숲속 바람 같은 사람, 잠시 잊고 있었던 지용출을 추억하며

by PrintStudio86 2020. 2. 23.

20200222. 지용출판화전-당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생의 의지. 전시 원고.

Ji Yong Chool Prints: Nowness & Hereness

2020. 3. 3.() - 3. 29.() 전북도립미술관 21,2전시장

 

숲속 바람 같은 사람, 잠시 잊고 있었던 지용출을 추억하며

유대수 / 판화가, ()문화연구창 이사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가. 확실히 이곳 전주라는 도시 구석구석이 변하고, 일상의 습관이 좀 더 스마트하게 변하긴 했다. 그렇구나. 그러면 사람-들은, 여전할까? 곰소 갯벌의 진득함은, 김제 들판의 붉은 흙더미는 그 모습 그대로일까? 새삼 궁금해지는 봄날이다.

잠시 정취에 젖어 이런 궁금함을 곱씹는 까닭은 전북도립미술관이 마련한 이번 전시 덕택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시 제목 때문이다. “당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생의 의지.” 이를테면 한 시절의 천변만화 속에서도 차마 변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그때를 환기시키며 내내 잠겨 있던, ‘잠시 잊고 있었던 생의몇몇 장면들이 떠오른 때문이다.

 

전주에서 나지 않았으나 전주의 삶을 온전히 살다 간 예술가가 있다. 우리는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그때의 시간과 공간을 어림한다. 서울 토박이였던 지용출이 전주 생활을 시작한 지 17, 한동안 이방인의 도시였던 전주가 제2의 고향이 되어 갈 즈음 전주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경점(景點)”에 올랐던 그는 지금 여기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발로 걸어 땀으로 새긴 판화가 오롯이 남았다.

<졸고, <판화로 읽는 전주의 숨결>, 2011. 11. 전북예총 소식지 <전북을 살다 간 예술가> .

 

지용출. 그와 인연을 맺은 것도 지금과 같은 봄날이었다. 1994. 아내 김미경의 변산중학교 부임에 앞서 전주 생활을 시작하던 때. 화가 이기홍이 작업실로 사용하던 삼천동 용함교회에 합판으로 침대를 짜두고 잠시 기거하던 시절. 나 역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막 전주에 내려와 여러 모임과 미술 활동을 꾸리며 오가던 때다. 어찌 된 일인지 그와 나는 제법 빠르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우리가 함께 한 첫 작업은 폐관한 온다라미술관의 소장품을 옮겨 쌓는 일, 그리고 그해 전주에서 개최된 동학백주년기념사업 행사에 쓰일 대형 걸개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와 아파트 지하를 얻어 3년여를 함께 창작하던 일 덕분에 나는 그의 삶에 대한 애정과 작품세계의 진중함을 충분히 새겨 흡입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학번으로, 같은 시기에 서울에서 학교생활을 했고 미술 작업 중에서도 같은 종류의 판화를 전공한 탓에, 삶의 환경조차 비슷하다고 느꼈던 나와 이상한 동질감으로 얽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던 때였습니다. 어쩌면 그 이전, 80년대 운동권시절을 함께 버티어 온 의식체계가, 민중미술에의 합의와 리얼리즘의 가치에 대한 동의가 그와 나를, 나아가 전북민미협의 모든 사람들을 식구처럼 한데 묶어 의지하게 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졸고, <농사 짓던 판화가, 숲속 바람 같은 삶을 추억함>, 전북참여연대 소식지 8월 호, 2010.

 

그런 이유일 것이다. 지용출이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뒤 나는 상주 아닌 상주가 되어 동료들과 슬픔을 나누었고, 1주기를 맞아 유작전을 치렀으며, 해마다 오월이면 퇴주잔을 옆에 놓고 술자리를 하곤 했다. 그리고 10. 작고 10주기를 맞아 잠시 잊고 있었던그의 작품세계와 삶의 발자취를 찬찬히 되새겨 볼 기회를 맞이하니 기분이 새롭다. 오래된 약속이자 기꺼이 유작 60여 점을 거두어 준 <전북미술관회>와 전북도립미술관의 애정과 노력 덕분이다.(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런 진지함에는 그러니까 부안 갯벌과 김제 붉은 땅의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 같은 것들을 읽게 만드는 알 수 없는 힘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밭둑의 풀잎과 처마에 매달린 마늘과 곧 쓰러질 것 같은 고목 둥치 어림에도 스스럼없이 눈길을 바짝 들이미는, 그래서 아주 낯익은 삶의 풍경들, 그런 것들이 적절히 반죽되어져 있으면서 충분히 스스로를 자제할 줄 아는 지혜로운 의식처럼 별로 번거롭게 떠벌리고 싶어 하지 않은, 고요한 그런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졸고, <농사 짓던 판화가, 숲속 바람 같은 삶을 추억함>, 전북참여연대 소식지 8월 호, 2010.

 

돌이켜 보면, 왕십리 토박이라 자처하던 그가 처음 발 디딘 땅이 곰소 갯벌이었다. 그리고 부안 읍내와 김제 황산을 거쳐 전주에 둥지를 틀기까지 또 몇 년이 흐른다. 서해로부터 전주성을 향한 진격 끝에 드디어 입성했음을 축하하노라고 놀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눈 밝은 사람이라면 그 몇 차례 이주 과정의 모든 것이 빠짐없이 작품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곰소항의 어물과 갯벌의 질퍽함, 김제 만경의 황토 바람과 소소한 들풀들, 여전히 기품을 잃지 않는 고목과 여염집 처마 끝에 매달린 시래기와 마늘단, 그리고 질경이까지. 생활의 고초와 예술의 고충 속에서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던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일기처럼 거기 고스란히 있다.

 

예술-작품은 결과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드러낸다. 예술가의 눈과 가슴을 통해서다. 이성(理性)으로 재단하기 힘든 삶의 바탕은 그렇게 우리에게 현상(現像)한다. 예술가가 읽어 준 시간과 공간은 또한 그때, 그 사물의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사물의 위치와 예술가의 위치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졸고, <판화로 읽는 전주의 숨결>, 2011. 11. 전북예총 소식지 <전북을 살다 간 예술가> .

 

다만 그렇게 조망된 어느 숲속, 들판과 길목의 풍경이 무심해 보인다고 해서 그 속에 켜켜이 쌓이고 또 묻어나는 사연 없을 리 없다. 화면 어디에도 오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미 우리가 살아오고 또 살아갈 시간이 흔적 없이 사라지거나 잊혀질 수 없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그의 작업이 점점 더 비워지고 넓어지는 것과 같은 속도로 삶과 예술이 치장해 온 부당한 무게와 너절한 담론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지용출의 화업(畵業)은 유지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림의 이력이 그의 살아온 내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새삼스럽다.

졸고, <유여(有餘)한 풍경의 전체를 보기>, 지용출 개인전 서문, 우진문화공간, 2007. 11.

 

그렇다. 삶의 행위와 예술의 실천이 이런 식으로 시공간을 뒤섞으며 한 호흡의 태도를 보여주는 일도 드물 것이다. 이건 그저 고인에 대한 예의로 그저 둘러대는 상찬이 아니다. 소위 스타 작가, 잘 팔리는 작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확실히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삶과 예술을 엿볼 수 있는 몇 개의 기록을 보자.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흙은 모든 삶을 포용하는 생명의 근원이며, 나무나 풀로, 때로는 들과 바람으로 변화한다. 그 땅에서 자란 들풀, 호박, 마늘은 분명 아름답다. 흙과 들풀, 호박, 마늘을 통해 시간과 역사 속의 변화와 불변을 표현하는 단색의 모노크롬이 주는 아름다움, 그것은 먹색이 주는 한국적 이미지와 정신성이다. <지용출, ‘작가의 글’, 전라도닷컴, 2002. 2.>

 

농사를 행복한 노동이라고 한 것은 노동의 대가가 순수하고 정확하다는 뜻이다. 뿌린 만큼 거두어들인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오히려 나를 행복하게 했다. (중략)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는 삶의 충실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농사일에는 어떠한 일보다 상위개념이라는 사치가 없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정직함만이 있다. 그것이 나는 가장 행복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지용출, ‘농사는 예술, 나는 행복한 텃밭을 가꾼다’, 문화저널 2010. 3월 호.>

 

역사 위를 걷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화려한 축제와 예향의 도시라는 이름 속에 감추어져 있는 전주의 참 아름다움과 역사적 진실에 대해서, 이곳에서 보고 자라난 이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에 숨어져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보고 싶었다. <지용출, 완산을 보다, 8회 개인전 서문, 2004.>

 

자필 진술에도 등장하지만, 그때도 참 어이없고 별스러운 사람이라고 타박했던 건 느닷없이 동양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박사 과정에 입문한 일이나, 금구 언저리에 땅을 사놓고 농사를 짓겠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게 된 때였다. 물론 본연의 일이라 할 작품 생산에 게을리 한 적 없고, 오히려 철학 공부와 농사-농부의 경험이 그림에 녹아들고 있는 중이었으니 딱히 나무랄 것도 아닌 일이었다.(하필 농사일을 나서던 중 사고를 당했으니 어쩌면 그것도 운명인가 싶어 오랜 시간 뒤에 혼자 주억거리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꼭 그만큼씩, 자신과 또 주변 삶에의 고민의 양만큼씩 형의 그림에는 절실함이 있다. 일상적인 풍경의 내면으로 숨어들어서 은근하게 그 접착력을 더해오는 절실함, 그것이 내 눈에는 모종의 희망으로 보인다. 앞서 얘기한 애잔한 감상의 흐느적거림을 다잡아 내심 모종의 굳은 결심이라도 한 양, 애착 어린 시선으로 바다를 보고 들판을 보고 삶을 본다. 그러고 보면 형이 말하는 풍경의 내면은 곧 자신의 내면이라는 말로 들린다. 자연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로 인해 이 한판 세상의 내면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래도 아직은 건질 게 남아 있고, 그래서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위해 한번 싸워볼 만하다는 것일 게다. 사람은 그것으로 산다.

졸고, <풍경의 내면, 내면의 풍경>, 전국민족미술인연합-미술연합통신 전시 리뷰, 1997. 6~7월 통합본, (지용출 판화 개인전-풍경의 내면/1997.4.30.~5.6. 나무화랑, 서울)

 

평소의 작풍 또한 그러하되 그려진-표현된 사물의 면에 비하여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 간결한 풍경의 틈새를 가로지르는 빈 공간들의 한가로운 호흡으로 보아 짐작하자면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는 막상 화면에 드러난 형태-나무와 집들에 주목하기보다는 여백을, 풍경의 전체를 보게 될 것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 풀잎과 풀잎 사이를 지나가는 공기 말이다. 보이지 않지만 있음이 분명한 길과, 그려지지 않았지만 당연하게 보이는 하늘과, 떠나기보다는 돌아오고 있음이 분명한 버스의 뒤꽁무니 어딘가를 흐르는 바람결의 자취, 넉넉한 전체로서의 풍경 말이다. 돌이켜보면 지용출의 작업 전반에 걸쳐 익숙한 일상의 사물이 중심으로 자리하지 않은 적 없다. 아니다. 낯선 사물의 일상을 바짝 들여다보고 또 그것들을 눈치 없이 화면의 중심에 끌어다놓기를 개의치 않았다. 부안 갯벌의 닻과 김제 밭둑의 마늘과 전주 인근을 둘러싼 고목이 한결같다. 그것이 그를 무겁게 했을 것이다. 진중한 의미와 지난한 역사를 갖추지 않고는 그림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시절을 지나오며, 갯벌과 밭둑길과 고목의 미세한 각질 하나하나에 삶과 예술의 가치를 실어내야 마땅하다고 여기며 잔뜩 힘이 들어간 붓질(각법 역시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이 간간하던 때를 떠올린다면, 이 전체로서의 풍경은 확실히 그의 말대로 가벼워졌다고 하는 게 맞는다.

졸고, <유여(有餘)한 풍경의 전체를 보기>, 지용출 개인전 서문, 우진문화공간, 2007. 11.

 

조금은 쓸쓸하고 그보다 조금 더 절실했으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티던 그의 풍경의 내면은 전주 생활이 안착되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제법 관조적인 여유를 찾는다. 어쩌면 거대 담론에 짓눌린 운동권의 때가 빠지면서, 지역 화단에 판화가 지용출의 이름이 간간이 오르내리고 단골 술집의 옆자리 손님들과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나누게 되는 시절의 앞뒤로 그러했다. 그런 식의 사물에 대한 솔직함은, 말하자면 작품의 방법론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때문이려니 미루어 짐작한다.

 

전주는 어떤 곳인가. 견훤이 도읍을 삼아 대업을 꿈꾼 곳. 동학군이 집강소를 차려 자치와 개혁의 표상을 세운 곳. 호남제일성. 무엇보다도 온전한(完山州, 全州) 땅이다. 수령으로 온 벼슬아치는 토박이 아전만 못하고, 아전들은 기생만 못하고, 기생들은 음률풍류만 못하고, 음률은 음식만 못하다 했던가. 소리와 맛과 멋으로는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곳이 또한 전주다. 그런 전주의 고고한 숨결이, 추상(抽象)‘~스러움이 한 폭 구상(具象)의 정경(情景)으로 그의 작품에 옮겨져 있다. 전통 부감법과 다초점의 미감으로 이루어진 그의 판화는 광활한 조망에 덧붙여 소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의 세세함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고지도의 판법과 채색을 응용하고, 위성사진을 살펴 덧대어주고, 산세와 물줄기의 앉음새를 꼼꼼히 익힌 다음 강조와 축약을 적당히 배려한 결과다. 관성묘를 묘사한 작품에서는 그 너머 기린봉까지 은은하고, 중바위 꼭대기로부터 흘러내린 기운이 진북사를 지나고도 한참을 넘실댄다. 그 이전 작품들이 일상의 사물 자체에 바짝 다가가 확대된 낱개의 표정을 담은 것이라 한다면 전주를 배우고 전주를 그리고자 한 시기의 작품들은 관조와 음미를 내세워 한발 물러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와 현재,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보고 함께 살리는 일, 쉽지 않은 조형의 눈을 그는 지녔던 것이다. (중략) 그의 말마따나 전주천의 고고한 흐름에 씻기고 닦여 온 전주를, 문명의 밑거름과 풍류를 간직한 전주의 질박한 호흡을, 우리는 그가 남긴 판화 속에서 새삼 되새기게 된다. 땅을 사랑하고 그 땅을 일구는 사람들에게 차마 눈길 거두지 못했던 사람. 전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전주를 끌어안고 그 깊은 체취를 제 몸에 새기려 했던 사람. 지용출의 삶을 통해 전주를 본다.

졸고, <판화로 읽는 전주의 숨결>, 전주문화원 소식지, 2011.

 

한편 다양한 소재와 기교를 보여주는 지용출의 수많은 작품 중 눈여겨볼 것은 고지도 판법을 빌려 온 전주 그림지도연작이다. 이 역시 제2의 고향이 된 전주에 대한 각별함과 더불어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난한 탐사의 과정, 관조의 공간을 창출하고 배치해내는 필()과 각()의 숙련을 조화시킨 결과라 할 수 있다. 감히 말하건대 전주 토박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든, 작은 것들에 눈길 주는 일이 행복하고 땅에서 나는 생명 그 질긴 역사를 가슴에 담을 줄 알았던, 숲속 바람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잠시 기대어 서서 세상 밖 맑은 바람 맞을 그런 나무, , 흙의 냄새를 닮은, 지용출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억합니다.

졸고, <판화로 읽는 전주의 숨결>, 2011. 11. 전북예총 소식지 <전북을 살다 간 예술가>.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판화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땀과 노동과 흙냄새와 사람을 사랑할 줄 알던 예술가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습니다. 나의 삶 역시 행복한 노동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요.

졸고, <농사 짓던 판화가, 숲 속 바람 같은 삶을 추억함>, 전북참여연대 소식지 8월호, 2010.

 

해원(解寃). 지용출의 49재를 치르며 붙인 말이었다. 이제 10년의 세월을 돌아 다시 마주하는 그의 작품 앞에서 한 번 더 되뇌게 될 말이기도 하다. 일상의 곤궁을 들어 잠시 잊었던, 아니 짐짓 한편에 내려놓았던, 판화가 지용출이 만들어 준 유여(有餘)한 풍경의 내면을 거닐며 중얼거리게 될 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정도 세월이면 다 풀었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되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10년 만에 다시 해원(解寃).

 

20200222-지용출판화전 원고-유대수.hwp
0.02MB